brunch

#72 스크래치

by 류임상

#1

버스에 타서 음악을 들으려고 에어팟 케이스를 열었다


#2

없다. 유닛이.


#3

잠깐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제 에어팟을 쓰고 책상 위에 두고 왔나...

그럴리는 없는데. 흠.


#4

혹시나 해서 '나의 찾기' 앱을 켜봤다.

허.

집 아래 길에 유닛 두 개가 나란히 버려져 있더라.


#5

하. 이거 참.

버스에서 내려서 한 정거장을 뛰어갔다.

(다행이다. 그나마 한 정거장이라)


#6

사운드를 재생시키며 두리번거리다 보니

생각보다 조금 더 위에 두 개의 유닛이 나란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7

줍자마자 서둘러 둘러보니

약간의 스크래치가 났다. 두 유닛 나란히.

소리는. 오케이. 다행이다.


#8

물건에 스크래치 나는 거 정말 싫어한다.

조심해도 어쩔 수 없이 스크래치가 나면

그 물건과의 관계가 대면대면 해진다.


#9

지금도 팟캐스트 들으며 계속 스크래치 난 부분을 만져본다.

아... 정말...@#$%@#$%

하면서 스크래치가 난 걸 잊기를 바라본다. 내가.


#10

사는 것도.

우리 인간관계도 비슷한 것 같다.

기억하기 싫은 일도

애써 외면하지 말고

가끔 만져가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되길 바라곤 한다.

아무렇지 않게 되길. 그렇게 되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71 어쩔수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