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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언어처럼, 그러나 언어가 아닙니다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 감각이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에 관하여 #2

by 류임상



비유의 힘과 한계


예술을 언어에 비유하는 것은 매력적입니다. 언어가 문법과 단어로 의미를 만들듯, 예술도 형식과 요소로 의미를 만듭니다. 우리는 “예술의 언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절반만 맞습니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문을 닫아주세요”라는 문장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듣는 사람이 문을 닫게 하는 것. 언어는 목적지가 있는 화살과 같습니다.


반면 예술은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행위입니다. 좋은 시는 이미 존재하는 감정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이전에는 없던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혁신적인 그림은 우리가 이미 아는 세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세계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발명합니다.


더 나은 비유가 있습니다. 예술은 꿈입니다.


꿈은 논리를 따르지 않지만 의미가 있습니다. 꿈은 해석을 요구하지만 해석에 저항합니다. 꿈에서는 두 가지 모순된 것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면서 동시에 다른 누군가입니다. 장소는 집이면서 동시에 학교입니다.


예술도 그렇습니다. 로스코의 빨강은 슬픔이면서 동시에 기쁨이고, 고다르의 영화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이야기의 해체입니다. 예술은 의미의 확정을 거부하면서도 끊임없이 의미를 암시합니다.


언어로의 회귀?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생깁니다. 꿈도 일종의 언어가 아닐까요? 단지 다른 문법을 가진.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꿈의 상징, 은유, 전치는 모두 언어적 작동을 따릅니다.


그렇다면 예술을 꿈에 비유하는 것은 결국 다시 언어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정확한 표현은 이것일지 모릅니다. 예술은 언어가 자신의 한계와 만나는 지점입니다. 언어는 분절하고, 명명하고, 구분합니다. 하지만 예술 안에서 언어는 자신이 포착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려 애씁니다. 마치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듯, 언어는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지시합니다.


이것이 예술이 언어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입니다. 언어는 이미 분절된 세계를 다루지만, 예술은 아직 분절되지 않은, 감각과 사고가 뒤섞인 혼돈의 상태를 다룹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술은 언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예술을 사유하고, 공유하고, 기억합니다.


예술과 언어의 관계는 분리가 아니라 긴장입니다.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에게 저항하는 그런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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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경험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그것이 즉각적이면서 동시에 지연된다는 점입니다.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즉각적입니다. 마음이 요동치고, 눈물이 나고, 소름이 돋습니다. 이것은 실시간으로 일어납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나중에 옵니다.


전시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작품이 다시 떠오릅니다. 이번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며칠이 지나고, 일상 속에서 비슷한 색이나 형태를 마주칠 때, 그 작품이 기억납니다. 몇 달 후,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그 작품이 남긴 무언가가 당신의 판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을 2차적 사고(Second-Order Thinking)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1차 경험은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슬픕니다”입니다.

2차 사고는 “왜 나는 슬펐을까? 무엇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을까?“입니다.

3차 변형은 “이 질문을 하는 내가 예전의 나와 어떻게 달라졌는가?“입니다.


예술의 힘은 바로 이 3차 변형에 있습니다. 예술은 우리에게 감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을 바꿉니다. 그것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천천히, 조금씩.


어떤 책은 읽는 순간엔 별로였는데 10년 후에 다시 생각납니다. 어떤 영화는 본 직후엔 이해가 안 됐는데, 살면서 점점 더 자주 떠오릅니다. 이것은 예술이 시간차를 두고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예술 경험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감정 이후의 궤적을 추적해야 합니다. 지금 느낀 것이 3일 후, 3개월 후, 3년 후에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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