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버리고 놀이터로 가라 #2

삶 전체를 예술로 만드는 법

by 류임상

#4 당신의 일상이 곧 전시장이다


아침 7시, 알람이 울립니다.

당신이 선택한 알람음은 무엇인가요? 기본 벨소리? 좋아하는 노래? 새소리?


이것이 당신 하루의 첫 번째 ‘감각 설계’입니다.


출근길 지하철.

이어폰을 끼고 스포티파이를 켭니다. 어떤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하나요? 업비트? 재즈? 클래식?


이것이 당신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큐레이션’입니다.


회사 책상.

모니터 배경화면은 무엇인가요? 가족 사진? 좋아하는 풍경? 미니멀한 단색?


이것이 당신의 ‘시각 환경 설계’입니다.


점심시간 인스타그램.

어떤 계정을 팔로우하고, 어떤 피드를 저장하고, 어떤 릴스에 좋아요를 누르나요?


이것이 당신의 ‘일상 아카이빙(Daily Archiving)’입니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자기의 테크놀로지(Technologies of the Self)』에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구성(Construct)’한다고요.


당신은 매일 당신의 삶을 큐레이팅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예술’이라고 인식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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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시 기획자에서 경험 설계자로


20년 전, 저는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소장품을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하며, 캡션을 쓰고, 도록을 만들었습니다.


제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관객들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게 만들자.”


하지만 10년쯤 지나자 의문이 들었습니다.

관객들은 정말 ‘이해’하러 온 걸까? 아니면 ‘느끼러’ 온 걸까?


전시장을 관찰했습니다.

사람들은 작품보다 작품 앞에서 찍은 사진을 더 오래 봤습니다.

캡션보다 옆 사람과의 대화에 더 집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천천히 감상하지 않고 빠르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했습니다. “제대로 안 보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대로 안 보는 게 아니라, 다르게 보는 거였습니다.


사람들은 미술관을 지식의 전당이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시 기획 방식을 바꿨습니다.


기존 방식:


- 작가 연대기순 배치

- 상세한 작품 해설

- 조명은 작품에만 집중

-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새로운 방식:


- 감정의 흐름에 따른 배치

- 최소한의 학술적 텍스트와 최대한의 작품 해설 인터페이스

- 공간 전체의 조명 설계

- 음악, 향기, 온도까지 고려한 총체적 경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연간 관람객 21,000명이던 미술관이 150,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7배입니다.


사람들은 작품을 ‘공부하러’ 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각’을 경험하러 온 겁니다.


#6 Architecture of Possibilities - 가능성의 공간을 설계하라


요즘 저를 ‘Art Experience Designer’라고 소개합니다.

번역하면 ‘예술 경험 설계자’ 정도 되겠네요.


무엇을 설계하느냐고요?

결과물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을 설계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전통적 큐레이터의 사고:

“이 전시를 보고 관객이 A를 느꼈으면 좋겠다.”


경험 설계자의 사고:

“이 공간에서 관객은 A도, B도, C도 느낄 수 있다. 그중 무엇을 느낄지는 관객이 선택한다.”


저는 이것을 ‘Architecture of Possibilities(가능성의 건축)’라고 부릅니다.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좋은 건축은 특정 기능을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허용’한다”고 했습니다.


예술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보세요”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양한 가능성의 공간을 열어두었을 뿐입니다.


카펫을 깐 건 앉을 수도 있게.

스크린을 낮게 설치한 건 아이들 눈높이도 고려해서.

센서를 넣은 건 인터랙션의 가능성을 위해.

텍스트를 최소화한 건 선입견 없이 느끼게 하려고.


이것이 Architecture of Possibilities입니다.


결과가 어땠냐고요?


3개월 예정이었던 전시가 6개월로 연장되었고,

재방문율이 40%를 넘었습니다.

평균 재방문율이 5%인 걸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죠.


사람들이 댓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또 왔어요. 올 때마다 다른 느낌이에요.”

“처음엔 사진만 찍었는데, 두 번째는 한참 앉아있었어요.”

“아이 손 잡고 왔다가 제가 더 감동받았어요.”


같은 공간, 같은 작품인데,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같은 사람이 다시 와도,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가능성의 건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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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3가지 질문


그렇다면 어떻게 일상을 예술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까요?

제가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 세 가지 질문을 나눕니다.


질문 1: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감각하고 있는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회의실에서, 카페에서.

잠시 멈춰 서서 물어보세요.


- 지금 들리는 소리는?

- 지금 보이는 색은?

- 지금 느껴지는 온도는?

- 지금 맡아지는 냄새는?


일상은 둔감함 속에서 흘러가 버립니다.

의도적으로 감각을 깨울 때, 평범한 순간이 특별해집니다.


질문 2: “이 공간은 나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가?”


카페에 들어갈 때, 서점을 지나칠 때, 사무실에 앉을 때.

그 공간이 당신에게 주는 ‘느낌’을 의식해보세요.


- 이 조명은 어떤 기분을 만드는가?

- 이 음악은 왜 이 공간에 어울리는가?

- 이 가구 배치는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가?


공간 경험을 의식하면, 당신도 자신의 공간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질문 3: “나는 어떤 경험을 만들고 싶은가?”


당신이 만나는 모든 순간, 당신은 설계자입니다.


- 친구와의 저녁 약속: 어떤 장소, 어떤 분위기?

- 주말 아침: 어떤 음악, 어떤 조명, 어떤 향기?

- 퇴근 후 집: 어떤 옷, 어떤 차, 어떤 책?


이 모든 선택이 곧 당신이 설계하는 삶의 경험 입니다.




저는 미술관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미술관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위대한 작품을 보존하고, 연구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역할은 누군가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예술은 미술관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미술관은 예술의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점이어야 합니다.


https://youtu.be/jSzBIcSweHc?si=l69kVS39YX4MCEBe


저는 AI로 음악을 만들고 그 위에 영상을 입히며, 간단한 이야기를 만듭니다.


주 1회, 2~3분짜리 작업을 발표하죠. 55,000명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I’m_sang’을 운영합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큐레이터가 왜 음악 유튜브를요?”


제 대답은 이겁니다.


유튜브도 전시장입니다.


아니, 어쩌면 미술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경험하는 공간입니다.

3분짜리 AI 음악을 출퇴근길에 듣는 것, 그것도 하나의 ‘예술 경험’입니다.


10년 전 제가 기획한 한 전시는 2개월간 2만 명이 봤습니다.

지금 제가 만든 음악은 일주일에 2만 명이 듣습니다.


어느 것이 더 예술적인가, 가 아닙니다.


예술이 어디에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것을 만들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증명하는 게 지금 제 일입니다.


미술관에서 느낀 그 감동을, 당신의 일상으로 가져오세요.

전시장에서 경험한 그 특별한 감각을, 당신의 삶에 적용하세요.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여는 순간, 햇살의 각도를 의식해보세요.

출근길에 이어폰을 끼는 순간, 오늘의 사운드트랙을 선택하세요.

저녁에 집에 돌아와 조명을 켜는 순간, 공간의 분위기를 설계하세요.


당신은 그 전시의 큐레이터이자, 유일한 관객입니다.

박물관을 버리고 놀이터로 가라는 말은, 예술을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예술을 박물관 밖으로, 당신의 삶 안으로 가져오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일상 전체가 하나의 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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