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차 프로듀서가 AI를 세션맨으로 고용했을 때

AI 시대, 창작자의 도구상자

by 류임상

#1 완벽한 기타 솔로가 머릿속에서만 울릴 때


22년 동안 음악을 만들어온 한 프로듀서가 있습니다. 작사도, 작곡도, 보컬도 모두 직접 해내는 베테랑이죠. 그런데 그에게도 넘지 못하는 벽이 하나 있었습니다. 머릿속에선 화려한 블루스 기타 솔로가 흐르는데, 손가락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으시죠? 마음속엔 완벽한 이미지가 있는데, 기술이 따라주지 않아 결국 포기했던 순간들. 그렇게 세상에 나오지 못한 멜로디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래서 그는 선택했습니다. Suno AI를 세션 기타리스트로 고용하기로요.


#2 이건 '날 것의 생성'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작업 방식을 보면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버튼 하나 눌러서 음악을 뽑아내는 게 아니었거든요.


작사: 100% 본인이 직접. 22년간 쌓아온 언어 감각으로 써 내려간 가사들.

보컬: 100% 본인 목소리. AI의 도움 없이 직접 녹음.

작곡: 90% 본인이 직접. 멜로디 구조는 그가 설계했습니다.

편곡/연주: 여기서 AI가 90%를 차지합니다. 그의 손가락이 닿지 못하는 부분을 AI가 연주해준 거죠.


그는 AI를 '완벽한 세션맨'으로 고용한 겁니다. 스튜디오에서 전문 기타리스트를 섭외하듯이, 다만 그 연주자가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이었을 뿐이죠.


nim2me_extreme_close-up_shot_tiny_concrete_staircase_macro_le_6e49e2de-4217-4cc9-a179-6ae540668c12_2.png


#3 "이걸 내 음악이라 불러도 될까요?"


앨범 발매를 앞두고 그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AI를 썼다고 밝히는 순간, 내 22년 커리어가 'AI 딸깍이'라는 비아냥으로 끝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는 레딧의 Suno AI 커뮤니티에 세 가지 선택지를 물었습니다.


1. 정공법: "AI와 협업한 앨범입니다"라고 당당히 밝힌다.
2. 은유법: "AI 도구의 도움을 받은 프로젝트"라고 부드럽게 표현한다.
3. 침묵법: 굳이 말하지 않는다. 음악은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하니까.


어떤 선택이 맞는 걸까요?


#4 두 가지 관점이 부딪치다


댓글창은 순식간에 토론장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의견은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었어요.


"결과가 모든 걸 증명한다" (실용주의 진영)


"사람들은 당신이 어떤 플러그인을 썼는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음악이 좋으면 그만이에요. 10%의 AI가 섞였다고 해서 당신 음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당신의 팬이 될 수 없어요."

이들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드럼 머신을 쓴다고 해서 그게 프로듀서의 음악이 아니게 되나요? 신시사이저를 쓴다고 해서 창작자성이 사라지나요? AI도 결국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는 겁니다.


"투명성이 신뢰를 만든다" (원칙주의 진영)


"Suno 특유의 질감은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나중에 '속았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느니,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선구적 프로듀서로 포지셔닝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요?"

이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봅니다. AI 사용을 숨기다가 나중에 드러나면 신뢰가 무너지지만, 처음부터 공개하면 오히려 혁신적인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거죠.


nim2me_extreme_close-up_shot_tiny_concrete_staircase_macro_le_6e49e2de-4217-4cc9-a179-6ae540668c12_3.png


#5 가장 본질적인 질문


그런데 토론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댓글은 이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포지셔닝의 문제입니다."


당신이 '연주가'로서 팔릴 건가요, 아니면 '경험을 설계하는 아트 디렉터'로서 팔릴 건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니 퀸시 존스도 'Thriller'의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수십 명의 세션 뮤지션이 연주했죠. 그런데 우리는 그 앨범을 퀸시 존스의 작품이라고 부릅니다. 왜일까요?

그가 누구를 언제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6 창작자에서 경험 설계자로


AI 시대의 창작은 이렇게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창작자 = 직접 실행하는 사람
현재: 창작자 = 선택하고 배치하는 사람


22년 차 프로듀서가 AI 생성 기타 솔로 중 하나를 선택해서, 곡의 그 지점에 배치하고, 전체 서사 안에서 의미를 부여했다면—그것이 바로 창작 행위입니다.

손가락의 속도가 아니라, 의도와 취향이 창작자를 정의하는 시대가 온 거죠.


nim2me_extreme_close-up_shot_tiny_concrete_staircase_macro_le_e347fb49-2b8e-45b1-867b-0b3bc511af4b_1.png


#7 우리는 모두 과도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전기 기타가 처음 나왔을 때도, 신시사이저가 처음 나왔을 때도, Auto-Tune이 처음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건 속임수야, 진짜 음악이 아니야."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모두 표준이 되었습니다.


AI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은 "AI를 썼느냐 안 썼느냐"가 중요해 보이지만, 결국 중요한 건 다른 질문이 될 겁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했고, 왜 그것을 그 자리에 놓았나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창작자입니다.

아니, 어쩌면 더 정확히는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Art Experience Designer)'

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손가락이 닿지 못했던 멜로디들이 AI를 만나 비로소 노래가 되는 시대.


중요한 건 누가 연주했느냐가 아니라, 그 음악이 듣는 이에게 어떤 떨림을 남기느냐는 것 아닐까요.

22년 차 프로듀서의 고민은 우리 모두의 고민입니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모든 사람이 마주한 질문이죠.


여러분이라면 이 프로듀서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nim2me_extreme_close-up_shot_tiny_concrete_staircase_macro_le_6e49e2de-4217-4cc9-a179-6ae540668c12_0.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노래가 AI라는 것을 알았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