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감수성을 존중한다는 것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상대방만의 예민함’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과 관계를 형성할 때 서로의 ‘발작 버튼’을 알고 있어야 작은 문제가 큰 갈등으로 번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상대방의 감수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은 예민한데 상대방이 무심하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섭섭함을 느끼는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과 비슷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건강하고 오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두 가지 경우에 특히 예민하다. 첫째, 편하다는 이유로 예의를 잃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둘째, 논리적이지 않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다. 불필요한 대화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느껴질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면, 비속어 사용이나 정의로운 행동 등은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오히려 사석에서는 인간다운 모습을 추구하며 사회적 잣대에 집착하지 않는 ‘느슨한 예민함’을 유지하고 있다.
나 스스로는 예민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을 대할 때 섬세하게 배려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하는 점은 상대방의 예민함을 아직 잘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전까지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벼운 농담을 즐기지만, 감수성이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그런 농담도 삼가려고 노력한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는 상대방의 감수성을 이해하기 전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러한 ‘예민함의 온도 차이’ 때문에 곤란한 경우를 자주 겪는다. 특히, 요즘처럼 남녀 갈등이나 사회적 논쟁이 많은 시기에는 서로 다른 예민함이 갈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러한 사회적 논쟁에 관심이 많지만, 그로 인해 남들과 다투거나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만약 본인이 이런 예민함의 차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자주 받는다면, 비슷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훨씬 이로울 것이다.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관계를 이어가면 결국 갈등이 생기고, 자신만 지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예민함의 정도와 기준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욜로족’임을 자랑으로 여기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사소한 단어 선택 하나에도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약속을 어긴 사실 자체에 예민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이유를 더 중요하게 본다.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이러한 예민함의 기준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능력을 키우는 것이 대인관계의 절반 이상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감도 지능이다”라는 말이 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는 단순히 위로되는 글만 찾기보다, 자신의 공감 능력을 학습과 경험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타인의 감수성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능력은 노력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