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내 인생의 손해’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
누군가는 말한다. "임신은 여자의 희생이다. 그러니 마땅히 배려받아야 한다."
이 말, 겉보기엔 자연스럽고 맞는 말처럼 들린다. 물론 임신은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변화를 동반하며, 사회와 배우자의 배려가 필요한 시기다. 이건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이 '배려'가 '요구'를 넘어 '유세'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임신을 마치 ‘남자의 아이를 낳아주는 희생’으로 표현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당당히 요구하는 여성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우리의 아이'를 낳는 것이지, '남자의 아이'를 대신 낳아주는 게 아니다.
아이는 두 사람의 합의와 사랑 속에서 탄생하는 존재이지, 어느 한쪽의 전리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성들은 아이를 자신의 신체적 고통과 교환하는 대가로 간주하고,
그로 인해 무제한의 배려와 감정적 면죄부를 요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부'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여성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를 가진 소수가 점점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이들이 임신과 출산을 ‘희생’으로 포장하면서도,
그 희생이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본질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선택은 근본적으로 자발적인 행위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닌, 본인의 결정이다. 그런데 그 결정을 내린 뒤,
마치 피해자이자 영웅인 듯 행동하고, "내가 이만큼 희생했으니 응당 보상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드러낼 때, 나는 묻고 싶다.
과연 그런 사람이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가?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생’이 아니라 ‘책임’이다. 보상심리가 자리 잡은 채 출산과 육아를 시작한 사람은, 아이가 자라면서도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라는 투정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과연 정서적으로 건강할 수 있을까? 이건 단지 육아의 문제만이 아니다. '희생'을 자산처럼 쥐고, ‘보상’을 요구하는 그 순간부터 부모로서의 자격은 의심받게 된다.
물론 남자들도 잘해야 한다. 함께하는 부부로서, 배려와 지원은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이런 균형은 '권리와 책임'이 함께 갈 때 성립한다.
임신을 특권처럼 휘두르고, 남성을 일방적인 채무자로 몰아가는 여성에게는
어떤 남자의 노력도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출발점이 ‘같이’가 아니라 ‘너는 나에게 빚졌다’는 인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희생’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희생은 조용하고, 책임감은 소리 내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단지 ‘힘든 일’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지 않도록, 우리는 부모 됨의 본질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배려는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을 만한 태도를 가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