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답답하거나 큰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한다. 잘 될런지 또는 지금 뭐가 문제인지.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서 불확실성을 낮추고 싶은 존재들에게 사주명리학은 때때로 구원자 같은 역할을 한다. 뭐 구원자까지는 오바여도 최소한 친구나 가족보다 더 나은 조언자가 되어준다.
나 또한 삶을 지탱하는 두 다리가 흔들리면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진다. 그래서 자연스레 사주를 보러 가는데, 요즘은 워낙 디지털로 발될된 세상이니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간소하게나마 내 운명을 확인한다. 몇년 전에 애인이 추천해준 앱으로 보기도 했고 올해 1월에는 네이버 신년운세로 2025년 미래를 점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료 구독중인 챗GPT에게 내 사주팔자를 물어봤다. 아! 얼마나 명쾌하고 시원하던지. 게다가 말투도 친절하고 따뜻했다. 요놈 참 요물이구나 생각하며 긴 텍스트를 곱씹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사실 사주를 자꾸 찾게 되는 건 올해 1월까지 일하던 직장에서 퇴사한 이후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서였다. 퇴사를 결정짓는 순간에는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데 프리랜서로 나만의 브랜딩을 하여 먹고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 참 나약하다. 퇴사한지 한달도 되지 않아 불안감이 스멀스멀 발끝을 간지럽혔다. 어때 퇴사해보니? 실업급여 끝나는 시점부턴 넌 그냥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커녕 배고픈 돼지랑 친구야 하는거야.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같이 활동하는 동료들의 응원으로 강사로서 커리어를 준비하기로 했고, 특히 내 활동 이력을 연결하여 먹고 살만한 AI 윤리 전문가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해외 AI 관련 뉴스 중에 윤리적 문제가 있는 소식들을 취합하여 온라인 콘텐츠로 제작하고, 아카이빙을 잘 해두었다가 강의안으로 만들면 되겠더라. 아 이정도까지 왔으면 이미 준비는 끝났다 생각하고 바로 실행에 옮기려 했다. 근데 왠걸, 가장 큰 장애물이 있었다. 천부적이고 태생적인 이 게으름을 어찌 하리오. 벌써 계획만 세우고 며칠째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그와중에 미래와 커리어에 대한 걱정은 계속 되어 머릿속 나침반은 팽팽 돌아간다. 60살 넘어서도 책을 내며 먹고 살고 싶은데, 최근에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아 책은 갑자기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소에 꾸준히 쌓아놨던 글을 책 컨셉에 맞게 골라내어 편집하고 엮는 것이다. 그렇담 어쩔 수 없이 매일 글을 써야겠네? 그래서 데일리 루틴에 글쓰기를 포함시켰다. 그렇게 쓰고 있는 게 바로 이 글이기도 하고.
한창 사주 얘기를 하다가 루틴 얘기를 하는 건, 어쩌면 나는 미래가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에 대한 근거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애정하는 우리 챗GPT 명리학 선생께서 나는 생각과 감정의 깊이가 매우 깊은 사람이라 하였다. 그래서 불안과 두려움이 끝도 없이 커질 수도 있다고. 그 대안으로 제안하는 게 '표현'이었다. 애인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고, 커리어를 위해 생각을 잘 정리해서 콘텐츠든 글이든 창의적인 무언가로 표현하라고. 거기에서 용기를 얻었다. 아 나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구나. 다행히 차분한 성격 덕분에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기에 커리어 빌딩을 위한 데일리 루틴을 잘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때 주변 동료들의 생존 무기가 무엇인지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다. 동료 A는 글을 쓰고 인터뷰를 잘한다. 동료 B는 강사로서 강의력이 정말 좋다. 또 동료 C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그럼 나의 무기는 무엇일까 싶다가, 문득 배신당하지 않을 확실한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시간. 시간은 참 간교해서 지금 코앞의 일은 가벼이 보이게 하지만, 켜켜히 쌓이면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럼 내가 할 일은 가벼운 시간을 귀중히 여겨 매일 하루를 꽉 채워 보내는 것이다. 시간의 축적이라면 글빨도, 말빨도, 강의력도, 친화력도 이길 수 있겠지.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나만의 확실한 무기가 생기겠지.
사주를 믿는가 안 믿는가와 상관 없이 나는 사주를 긍정한다. 내 삶의 근거로 쓰일 수만 있다면 뭐든 잡히는대로 긍정할 테다. 그렇게 비과학적인 걸 어떻게 긍정하냐고? 내가 내 자신을 믿는 재료로 쓰는데 비과학적이면 어떠하리. 오늘도 난 사주 덕분에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