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건 2022년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던 2021년 가을, 우울해하던 나에게 친형은 헬스 대신 러닝을 권유했다. 무거운 돌덩이를 드는 것보다 숨이 찰 때까지 뛰는 게 정신 건강에는 더 좋더라 하며. 집에 있는 추리닝과 낡은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며칠 후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달리기 영상으로 도배 되었고 2022년 어느 쌀쌀한 가을 주말 아침, 서울시청 광장 앞 도로 위 출발선 앞에 선 나 자신을 발견했다.
집 앞 하천을 열심히 뛰던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달리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멀리 보라는 옛 성인들의 인생 조언처럼 달리기도 지금 당장 기록에 욕심을 내면 금방 지치고 힘이 빠진다. 처음 1km가 제일 중요하다. 컨디션 좋고 날씨 좋고 오늘 좀 속도 내볼까 싶으면 얼마 못가 걷기 일쑤다. 턱 아래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뱉으며 땡기는 배를 부여잡고 터벅터벅 걸을 때 내 자신이 얼마나 싫던지. 그 느낌은 원대한 목표를 세워놓고 정확히 삼일 전의 나로 돌아가는 매년 1월 3일의 나 같달까. '역시 난 글러먹은 놈'이라는 자기혐오까지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전략의 수정이 시급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천천히 정말 천천히 달리기로. 어차피 주변에는 포기하는 사람들이 90%일거고 나는 완주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헬스장이 가장 붐비는 시기는 1-2월과 여름이라 하더라. 매일 헬스장은 못가도 일주일에 2번 매주 가는 놈이 더 건강해지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삶의 속도와 닮아 있는 달리기의 묘미는 손목 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즘 러닝이 대세가 되면서 K-직장인들의 습관이 러닝 문화를 선도한다. 역시 취미는 장비 빨이지. 프로 선수들이 하는 모든 장비를 빠르게 사두는 사람들은 러닝 세계에 입문하면서 기록 측정용 스마트 워치를 구입한다. 러닝 전용 워치도 있지만 대부분 스마트 워치를 겸사겸사 사는데, 나는 훨씬 이전에 사서 착용하던 스마트 워치로 러닝 앱을 켜고 달린다. 이 요망한(?) 기계는 달리기와 관련된 여러가지 정보를 측정해서 실시간으로 띄워주는데, 그중 하나가 심박수다. 어느 운동에서나 그렇지만 초보자와 숙련자는 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심장은 다르게 뛴다. 이미 튼튼해진 숙련자의 심장은 적은 횟수의 펌핑만으로도 초보자의 심장보다 더 많은 피를 온몸에 보내준다. 그러니 같은 달리기 속도라 하더라도 스마트워치에 표기되는 심박수는 숙련자보다 초보자가 훨씬 더 빠르다. 나도 그러했듯 대부분의 러닝 입문자는 심박수에 관심을 두지 않지만, 사실 오랜 기간 재밌게 달리기 위해서는 꼭 연습해야 한다. 일정한 심박수로 뛰는 것. 달리기가 삶과 닮아 있다고 말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먼 거리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뛰려면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자부심 느끼면서 실제로 실력이 쌓이는 것을 보여주는 숫자. 그 숫자가 눈에 보여야 러닝이 즐겁고 몸과 마음이 튼튼해진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10km 마라톤을 뛰고 왔다. 활동하는 단체 동료들과 함께 달렸는데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마냥 즐겁더라. 기록은 중요하지 않아서 찾아보지도 않았다. 천천히 바뀌어가는 풍경, 함께 뛰는 사람들의 숨소리, 등뒤로 주르륵 흐르는 땀방울. 마지막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며 또 한 번 체감했다. 아, 인생과 달리기는 참 닮아 있다고. 아주 오랫동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꾸준히 함께 뛰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