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염치도 없지. 얼마 전 일하던 조직의 (전) 상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전에 업무 관련 물어볼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도 된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무언가 잘 몰라서 그러겠거니 싶어 전화를 받았다. 전화한 요지는 이렇다. 지금 사안이 급한 것이 있는데 본인이 실무를 어떻게 할지 모른단다. 그래서 원래 하던 내가 대신해줄 수 있겠냐는 거다. 더불어 당장 내일 그 업무를 배우러 가도 되겠냐고 묻더라.
전화를 끊고 적잖이 놀랐다. 사실 실무의 특정 기능이나 방법에 대해 물어볼 줄만 알았는데, 아예 일을 해달라고 전화하다니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돈도 안 주고 해 달라는 말과 함께.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어 일단 알겠다고 했지만 바쁜 하루 시간 쪼개가면서 일을 대신해주고 있노라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본인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미리 배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돈을 주고 해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순간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나이가 이제 70에 가까워져서 전자기기를 잘 다루지 못하신다. 함께 살 때는 그럴 때마다 나에게 방법을 물어보는데, 때론 친절하게 가르쳐 드리기도 하지만 때론 짜증 가득 섞인 말로 모른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곤 곧바로 다음 날 후회하고. 늘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 경험이 꽤 쌓이다 보니 전 직장의 상사에게 분노했던 마음이 일견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가 온라인 실무를 잘 못하는 건 게을렀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중년에게 컴퓨터를 이용한 실무는 접근성도 낮고 허들이 높다.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UI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일을 대신해주었다.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며. 누군가는 돈도 안 받고 해주는 바보 같은 선택이라 하겠지만, 한 번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메일을 보냈다. 앞으로는 이런 부탁이라면 들어드릴 수 없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