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젠더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계속해서 젠더를 넘어서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계급, 인종, 지구적 불평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계속해서 젠더로 다가가야 한다.
젠더 관계는 사회 구조 전체에서 중요한 구성 요소고,
젠더 정치는 우리의 집합적 운명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다.
- R.W.코넬 『남성성/들』
코넬은 『남성성/들』에서 남성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젠더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성은 젠더 실천을 기반으로 하고, 젠더 실천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종, 지역, 계급 등의 사회 요소가 씨실과 날실처럼 수없이 교차하는 중에 젠더는 그 과정의 집합체로 드러나기도 하고, 때론 그 과정 자체를 엮어내는 바늘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2030 남성들의 정치적 우경화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여성/페미니즘과 정치 영역의 전문가들의 평이 주를 이루는데, 이들 중 청년 세대가 경험하는 사회적 문제와 안티 페미니즘 관점을 엮어 설명하는 경우가 드물다. 청년 남성의 정치적, 일상적 실천 행위는 관계 안에서 조성된다. 인간 개별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회 속 한 인간과 그 사회 전체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와도 연관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청년 남성이 경험하는 소위 '사회적 문제'를 젠더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수도권 비장애인 이성애자 대졸자 청년 남성의 삶을 가정해서는 극우화든 안티 페미니즘이든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새로 들어선 정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지난 정부에서 노동 시간의 부족으로 인한 낮은 임금, 청년 세대의 나이 범위 확장 등 청년 정책은 매우 납작하고 일방향적으로 흘러왔다. 동시에 청년 당사자 참여의 기회는 점차 줄어들었고,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정책 아이디어 공모전과 현금 지급성 사업에 집중 투자해왔다. 예를 들어 최근 경기도는 신혼부부에게 100만원의 결혼 지원비를 지급하는 사업을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업의 배경이 되는, 청년이 경험하는 젠더화된 사회 문제를 파훼하는 시각은 부재하다. 왜 청년 신혼 부부는 늘 수입과 저축과 지출의 굴레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가? 일터는 서울에 있지만 집터는 경기도에 두어 출퇴근 시간만 하루에 4시간을 써야 하는가?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았던 정부의 정책이 어째서 계급 상승의 '기회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으로 여겨지는가? 신혼 부부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남편의 육아 휴직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가? 더 나아가 계급, 지역, 소비 등과 이어지는 청년 문제에 왜 젠더화된 공간과 관계의 문제는 누락되는가?
P.S. 사회운동으로서 청년정책(참여)과 페미니즘을 모두 경험하고 실천하고 있는 나는 지금 당장 어떤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미리 공부하고 준비했다면 벌써 뾰족한 답을 찾았으려나. 하지만 "Better late than never"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부터라도 고민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