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고향
부산에서 이십여 년을 자라고 생활했던 나의 애인은 항상 서울의 겨울이 춥다고 말한다. 패딩을 입지 않으면 바깥에 나갈 수 없을 만큼 추운 서울의 겨울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추운가, 하는 마음에 수많은 서울의 겨울을 돌이켜 생각해보았으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많지 않았다. 고향이 서울이 아닌 사람에게 서울의 이미지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작 여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왜 서울의 이미지가 없을까 퍽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올해도 겨울이 왔다. 추석을 세고, 며칠 지나지 않아 추워진 날씨에 꺼내보지도 못한 가을 옷이 아깝기만 했다. 두꺼운 가디건을 걸쳤고, 목폴라를 꺼내 입었다. 항상 겨울엔 목이 휑한 것이 영 보기 좋지 않아 목도리를 하고 다녔지만 갑자기 찾아온 겨울에 장롱 깊은 곳에 숨겨둔 머플러를 꺼내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겨울 채비를 겨우 갖춘 어느날, 우연찮게 마스크 사이로 큰 숨을 들이마셨다. 마스크 사이로 찬 공기가 갑자기 밀려들어왔다. 생경한 느낌에 어두운 골목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겨울 냄새가 났다. 차가운 공기와는 또다른 겨울 느낌이 나는 공기였다.
그때 알았다. 나에게 서울은, 이런 공기의 냄새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익숙하지만 생경한, 고요하지만 반짝거리는.
서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언제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봄. 여의도에 만개한 벚꽃이 생각났다. 이곳저곳에서 사오월의 여의도를 보러 오는 탓에 항상 바삐 지나쳤던 기억이 났다. 벚꽃엔 향기가 별로 없다. 여름. 나는 여름에도 겨울을 그리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안 그래도 모멸찬 서울에게 여름을 갖다붙이고 싶지가 않았다. 가을. 떨어진 은행을 어떻게 하면 밟지 않을까 고민하다보면 언젠가 나무의 노랗고 빨간 빛들이 죄다 사라져 있었다.
그래서 겨울을 골랐다. 겨울이 오면 찬 냄새를 맡는 것이 좋았다. 아마도 곧 눈이 올 거라는 기대였겠지. 여름에 첫눈이 왔다면 아마 덜 외로웠을 것이다. 은지에게 서울이 고향 같기를 바라는 마음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