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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May 23. 2022

과제_하

결실의 맛

새로운 경험은 늘 우리를 일깨운다.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감각을 깨우고, 반복적인 삶에 길들여진 몸을 깨우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새콤하고 상큼하게 시작했던 일이라도, 끝 맛은 다를 수 있다. 달콤쌉싸레한 초콜릿, 새콤달콤한 딸기, 달콤 짭짤한 피자빵, 다양한 맛이 들어있는 음식들처럼....

PPT를 만들어 음성만 입히면 간단히 마무리될 줄 알았던 일이 각본을 짜고, 촬영을 하고, 프로그램을 녹화하고, 동영상 제작 툴을 구매해서 편집까지 하는 것으로까지 커졌다.

 새콤하게 나의 감각을 깨우던 일은 완성본이 나오기까지 수십 번도 넘는 편집 과정을 거치며, 쓰디쓴 좌절의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브이로그 형식으로 만들어진 초안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채 내 PC 휴지통으로 들어가고 간결함을 추구했던 두 번째 결과물은 세상으로 나오기 직전에 복병을 만나 주저앉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지치고 찌들어 갔다. 제발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동료들의 도움과 지금까지 나의 수고가 먼지처럼 날아가버린다는 압박감,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겠다는 욕심이 얽히고설켜 나를 조여왔다. 결과물을 기다리는 상사를 위해, 도움을 준 동료들을 위해, 무엇보다 나를 위해 하루빨리 종지부를 찍을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무리한 시간인 걸 알지만 미룰 수는 없었다.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소득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이 비상식적인 출근시간을 선택하는 것이 나았다. 얼른 이걸 끝내야 그동안 미뤄뒀던 일을 해치우고 편안하게 휴일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사무실이 주는 몰입감은 엄청났다. 3시간 만에 내 자존심과 능력이 합의점을 찾아냈고 최종본이 만들어졌다. 결제권자의 싸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 이상은 나의 능력 밖이었기에 나는 완성된 영상물에 '최종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의 '최종본'은 실제로 최종본이 되었고, 내 손을 떠나 세상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길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앞으로는 뭐든... 적당히 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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