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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May 15. 2022

나와 이것의 분리

일 못 하는 자의 변명

"수고하셨어요.
취지는 좋고, 전개 방식도 맞아요.
하지만 국장님이 원하시는 건 조금 더 동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나와서 이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죠.
아직 기한이 많이 남았으니, 우리 조금 더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새로 오신 부장님은 멋진 분이셨다. 일주일 가까이 공 들여 만든 교육자료를 이렇게 세련된 방식으로 돌려보내시다니........ 부장님의 세련된 화법 덕분인지, 지난 일주일 동안 마음을 다잡아 온 덕분인지 충격은 크지 않았다. 허무함, 좌절감 같은 부정적 감정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것보다 멋진 상사와 일하고 있다는 뿌듯함, 지도와 조언을 통해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 같은 긍정적 감정들이 더 컸다. 그것과 더불어 짧은 시간 안에 타인의 조언을 발전적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변화된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마저 들었다.
 
지난 연말, 한 달 넘도록 초과 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만들어낸 자료가 휴지통으로 들어갈 뻔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허탈함, 서운함, 야속함 등이 뒤섞인 눈물을 한바탕 쏟아냈다. 소속기관에서 보고한 지출 내역, 인력 및 시설 활용 내역 등의 기초자료를 토대로 사업 운영에 소요된 비용과 운영 방식 등에 대한 통계를 작성하고 그에 대한 분석자료를 만드는 일을 맡았는데, 소속기관 보고 자료 자체에 오류가 많고 그 보고조차 누락한 기관들도 있어 기한 내에 일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원자료 수집이 완전히 끝나고 부장님께 수집된 자료에서 발견된 오류들에 대해 보고를 드렸지만, 부장님은 이와 관련하여 특별한 지시나 언급이 없으셨다. 원 자료 자체의 오류로 인해 제대로 된 통계자료가 나오지 못할 것을 예상했지만 부장님의 지시 없이 자료 작성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한 달 넘게 새벽 출근을 이어가며 외롭고 치열하게  업무를 진행했다. 원자료의 오류를 하나하나 찾아내고, 작성 기관에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원자료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된 자료의 발간을 위해 부장님께 최종 보고를 드렸다. 통계분석자료의 구성과 전년대비 개선사항, 발간 부수 및 배포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원자료에서 발견된 오류 중 대부분을 정정했으나, 일부 기관의 비협조로 끝내 정정하지 못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발간은 없었던 일로 합시다.
오류가 있는 자료라면 발간하지 않는 게 맞을 것 같네요."


부장님의 입에서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나왔던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왜 지금에서야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건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한 달여 동안의 노력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 허탈하기도 하고, 절망감마저 들었다. 나이 마흔이 다 된 여직원이 펑펑 우는 걸 본 부장님은 적잖이 당황하셨고, 결국 내게 사과까지 하셨지만 마음은 달래지지 않았다. 나는 그 일로 큰 상처를 입었고, 한동안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기필코 기한 내에 이것을 해낸다'는 오기와 성취욕구에 휩싸여 '이것(과제)'의 목적과 본질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것'과 '나'를 동일시 함으로써 '이것'의 성패에 따라 '나'의 자존감이 영향받도록 했다. '이것(과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허탈함, 야속함, 좌절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불러오게끔 만든 것이다.


통계분석자료 작성의 목적은 사업운영에 참고할 정확하고 객관적인 데이터의 제공에 있다. 오류가 있는 통계자료는 그 역할을 다 할 수 없고,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자료라면 굳이 배포될 이유가 없었다.

다시 말해, 그때 나를 온갖 부정적 감정에 몰아넣고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던 것은 부장님의 말이 아니라, '이것'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나'와 '이것'을 동일시 한 의 미숙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 부장님의 지시로 교육자료 제작을 맡았을 때 '이것'의 목적과 방향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회사 업무의 대부분이 '내'가 아닌 '이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되새겼다. 덕분에 나는 과제를 끝낼 즈음에 아주 분명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조직이 주목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이것'이며, '나'와 '이것'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나'와 '이것'의 동일시는 '이것'에 대한 조언을 객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더 나아가 '이것'의 성공 혹은 실패를 '나'의 성공 혹은 실패로 여겨 나의 인격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것'이 성공하면 '내'가 성공한 것 같은 자만심이 생길 우려가 있고, '이것'이 실패하면 '나'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이것'과 떨어뜨리는 작업은 사회 안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맡고 있는 '내'가 상처받지 않고 온전하게 다른 역할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보호장치이다. 한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뒤늦게라도 보호장치를 잘 입은 덕에 편안하게 휴일을 즐기고 있는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또다시 '이것'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달릴 마음의 준비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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