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리 Sep 17. 2022

온다 안 온다

아빠의 빈자리

아직 어린 똥이는 한 권의 공책을 쭈욱 쓰지 못한다. 이것을 쓰다가 저것을 쓰다가 쓰던 것을 어디에 놔뒀는지 잊어버리고 새 공책을 꺼내 쓰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쓰다만 공책이 네다섯 권을 넘길 때도 있다. 쓰던 것을 끝까지 쓴 다음 새것을 쓰라고 일러도 잘 되지 않는다. 안 되겠다 싶어 책꽂이에 있는 공책을 전부 빼냈다. 한 권씩 잡아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고 촤르르르 펼쳐 넘겼다. 이렇게 쓰던 공책인지 새 공책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공책은 오른편에, 뭐라도 조금 적힌 헌 공책은 왼편내려놓았다. 그렇게 열 권이 넘는 공책들을 다 확인하고 마지막 공책을 넘기던 순간 느슨했던 엄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공책 한 바닥을 가득 채운 작은 문들, 그리고 문 아래 적힌 글자......

온다. 안 온다. 온다. 안 온다. 온다. 안 온다. 온다.
아빠 나와라. 얍!

대체 언제 적었던 걸까? 왜 나에게 내색 한 번 하지 않았을까? 아이의 마음속에 아빠를 기다리는 문이 있다는 것에,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이혼에 이르는 과정까지 많이 아팠고 이혼 후 닥친 현실이 몹시 힘들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아빠의 존재를 훼손시키는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들의 자존감 저하로 이어질 것을 경계한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내 눈치 보지 않고 아빠에 대해 편히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 같이 살지 않을 뿐,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아빠가 있고 그런 아빠의 사랑 안에 살고 있다는 믿음이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단단하게 키우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입에서 아빠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자연스럽게 호응해주기도 하고 꽤 오랫동안 먼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때는 아빠랑 통화라도 한번 하는 게 어떻겠냐며 오작교 역할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이들 아빠의 요청에 따라 면접 교섭일을 따로 정하지 않고 부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진 것이 문제였을까? 석 달에 한번 혹은 한 달에 서너 번 질서없이 이뤄지는 아빠와의 만남이 똥이 입장에서는 기약 없는 약속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게 아니라면 길어봐야 4시간 짧으면 10분이 고작이었던 만남의 시간이 문제였을까? 이 역시 똥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아쉬움이 남을 시간이었다. 그럼 나한테 말을 하면 됐을 텐데 왜 말을 안 하고 이런 걸 그려놨을까? 그냥 똥이에게 물어볼까? 공책의 그림을 보여주며 아빠가 많이 보고 싶으냐 물으면 압박감을 느낄까? 그럼 그냥 슬쩍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를 꺼내볼까? 어렵다. 너무 어렵다. 이런 부분에 대해 조언을 구할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이 문제는 조금 묵혀두고 진지하게 원인을 찾아봐야겠다.


컴퓨터 바탕 화면에 흩어져 있는 파일들을 정리하다 올 초에 적은 일기를 찾았다. 저 일기를 보니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며 백 점짜리 엄마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던 내가 괜찮지 않은 나의 상태를 깨닫고 적당한 엄마가 되기로 마음 먹는데 까지, 똥이가 아빠와 떨어져 사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까지 반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부정기적 면접교섭이짧은 면접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똥이에게는 아픔과 슬픔을 이겨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매일매일, 매 순간순간이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의점과 놀이터(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