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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Oct 02. 2022

엄마는 코높이 학원 원장님

한부모 아이 교육

조용한 시골 동네에 몇 년 전부터 눈○○ 교습소 바람이 불었다. 유치원 아이들의 한글 떼기를 목표로 시작된 학습지가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수학, 국어, 영어, 한자, 논술 등으로 세분화되었고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우르르 교습소로 몰려갔다.  작년 똥이네 반 아이들 중에 교습소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똥이 포함 세 명이 전부였으니 눈○○ 교습소는 같은 반 아이들의 학습 공간이자 사교의 공간이었다.  명은 다른 동네에 살아서, 또 다른 한 명은 사교육은 절대 시키지 않겠다는 그 집 엄마의 분명한 교육 철학으로 인해 교습소에 다니지 않은걸 생각하면 남들 보기에 뚜렷한 이유 없이 교습소에 안 다니는 아이는 우리 똥이 뿐이었다. 한 동네에 살면서 이미 피아노 학원도 보내태권도장보내고 있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학습지 공부는 시키지 않는 건지, 몇몇 엄마들이 내가 아이를 교습소에 보내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똥이 엄마. 똥이 교습소는 왜 안 보내?"

"피아노 학원이랑 태권도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서요."

"그래도 기초가 중요해. 우리 애는 교습소 갔다가 피아노 갔다가 집에 와서 밥 먹고 미술 가. "

"아..... ."

"뭐 따로 시키는 건 없고?"

"네. 뭐... 전 아직 크게 필요를 못 느껴서요."

"그래. 뭐 똥이 같이 야무진 애는 알아서 하겠지 뭐."


어딘가 뒤끝이 묻어나는 상대 엄마의 반응에 할 말은 많았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저희 똥이 전혀 야무지지 않아요.  때문에 그래요. 똥이가 초등 6학년이 되기 전까지, 똥이와 빵이 몫으로 계획해 놓은 교육비는 월 70만 원이 다 예요. 똥이의 피아노 학원비와 똥빵이 태권도장에 내는 돈, 여기에 더해 2년째 갚아나가고 있는 전집 할부를 포함하면 지금 매달 70만 원 가까운 돈이 들어가거든요. 그 돈 안에서 1년 뒤 전집 할부가 끝나면 빵이 피아노 학원을, 그 1년 뒤에는 똥이 태권도를 그만두고 영어학원에 보낼 계획이에요. 피아노 학원에 왜 그렇게 집착하냐고요? 제가 음정 박자를 고루 맞추지 못하고 청음까지 안 되는 사람이라 제 능력으로 도저히 길러줄 수 없는 게 음악적 소양이겠더라고요. 그래서 피아노는 관둘 수가 없고요..... 태권도는요....'


뭐 이렇게까지 나의 사정과 계획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까..... 긴 설명을 필요로 하는 일에는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게 낫다는 걸 그동안 충분히 경험한 지라 그냥 의뭉스러운 엄마로 남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시간의 자유를 얻고 자녀 교육에 관한 책임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사교육은 엄마들에게 충분히 매력 있는 장치였다. 난 그 장치들을 두루 활용할 만큼 자금이 넉넉하지 못했을 , 경제적 여유가 조금 더 있었다면 교우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똥이를 그 교습소에 보냈을 것이다. 방과 후, 교습소에서 시간을 더 보낸 친구들은 그 나름대로의 추억과 관심사를 공유하며 단단하게 뭉쳐 갔고 똥이 역시 공부는 싫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교습소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교습소를 안 보내는 대신 집에서 연산 문제집 한 두장이라도 풀게 하려고 상을 펴 놓고 앉으면 똥이는 종종 교습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엄마. 눈○○ 말이야. 애들 학교 마치면 바로 거기 가서 공부하는데 못 하면 안 보내준대."

"이~~야! 다들 공부 천재 되겠네. 그런데 애들 배고프겠다."

"아냐. 거기 간식도 주고 자기 차례 아닐 땐 큰 공부책상 있지? 거기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그러는데 어제는 ○○이랑 ○○가 떠들다 선생님한테 혼났대." 


드디어 기회가 온 것 같았다.

똥이를 눈○○ 교습소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나는, 똥이에게 그곳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냐고 묻는 대신 눈○○ 교습소에 대한 우리 거취를 분명하게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부모가 노선을 분명하게 정해 놓은 일에 대해 형식적으로 자녀들의 의견을 구하는 건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혼란만 가져올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적인 사정을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아 아이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천지 차이니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똥이가 주어진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래? 우리 똥이는 공부에 집중 안 하고 이렇게 말을 많이 하니까 눈○○ 가면 혼 많이 나겠네. 똥이는 아무래도 눈○○못 다니겠고, 코높이 학원에 다녀야겠다."

"코높이 학원이 어딘데?"

"어디긴 어디야? 여기지. 엄마가 코높이 학원 원장님이잖아 몰랐어?"

"푸하하하하."

"웃지 마. 진짜야. 너 알다시피 우리 코높이 학원은 공부를 그렇게 많이 시키지 않아. 하루에 수학 문제지 한 두 장만 하면 끝나고 학교 숙제 있으면 숙제한다고 그날은 또 쉬어. 어때? 좋지?"

"음....."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한 발 더 나갔다.


"그나저나 자네. 제법 똘똘해 보이는데, 혹시 코높이 학원 다녀볼 생각 없나?"

"아..... 네. 저.... 마음에 들긴 하는데 일단 저희 엄마한테 한 번 여쭤보고요."

"자네 엄마는 이미 허락을 하셨네."

"아... 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똥이는 대화에 있어 배려와 센스가 넘치는 아이답게 다행히도 나의 농담을 적절히 받아쳐 주었고, 바로 코높이 학원 수강생이 되었다. 그날 이후 똥이는 엄마가 눈○○ 교습소에 자기를 보내지 않을 것임을 알아챈 모양인지 내게 눈○○ 교습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급하게 문을 열었던 코높이 학원은 떻게 됐을까?

코높이 학원은 예상했던 바와 같이 교과 공부에 그리 체계적이지 못 했고, 잦은 휴강으로 한 명뿐인 수강생이 떨어져 나갈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께서 매주 내어 주신 일기 숙제 덕분에 육하원칙을 이용 일기 쓰는 법, 야이기 구성요소(인물, 사건, 배경)를 동원 일기 쓰는 법,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며 일기쓰는 법 등 일기지도에 특화된 학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한 시간 동안 일기 한 줄도 못 쓰던 똥이 원생은 원장의 지도 아래 혼자서 일기 한 바닥 정도는 거뜬히 써내는 아이가 되었다.

제목: 빵이 혼자

아침에 집에선 빵이만 들떠 있었다. 왜냐하면 엄마랑 빵이랑 단 둘이 오복에 스마트팜 농장에 가기 때문이다. 누구 지금 나랑 장난치나? 나 지금 이럴 기분 아닌데..... 하여튼 다음에 엄마랑 나랑 둘이 가면 나도 빵이한테 자랑해야지 ㅋㅋㅋㅋ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 마음이 비롯된 까닭을 정확히 찾아낸 똥이의 일기를 보면서 똥이가 비록 공부는 좀 못 하더라도 행복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 공부 결국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자기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표현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소일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코높이 학원은 반쯤은 실패했지만 또  반쯤은 성공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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