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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Sep 09. 2022

아이들이 떠났다

명절 풍경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면 혼인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졌던 인간관계의 축 하나가 떨어져 나간 데 대해 적지 않상실감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나 조용했던 시골 마을에 사람 소리가 담을 넘고, 한복 차림의 낯선 꼬마 손님들이 들어서는 명절이 되면 그 상실감은 가슴 한구석을 시리게 파고든다.  


매년 명절이나 연말연시면 빠지지 않고 가던 할머니 댁인데, 아이들 할머니이혼 후 년 동안, 식당 문을 열어야 한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구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오지 않기를 바라셨다. 아이 아빠도 일손을 도와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보러 오지 않았고 그렇게 단출하게 두 번의 명절이 지났다. 사람 좋아하고 사랑 고픈 아이들이 나 때문에 쓸쓸한 명절을 보내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하지아이 아빠와 시어른에게 아이들과 명절을 함께 해 달라고 강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명절 풍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 그리고 달라진 현실에 걸맞는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만의 명절 풍경을 그려나가리라 마음먹었다. 찾아올 이도 찾아갈 이도 없는, 그리하여 언제 어디든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명절! 이번 추석에는 차례를 간단히 지내고 캠핑을  떠나려고 일찍이 이름난 캠핑장을 예약했다. 부쩍 차가워진 밤바람을 막아줄 텐트도 하나 주문하고 새로운 명절 풍경의 시작점이 될 추석 연휴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 아이들 아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번 추석은 애들 데리고 본가 간다. 지난달에 애들 봤을 때 똥이한테 말해놔서 애들은 알 거야.

아이들에게서 전혀 들은 바 없는 소리였지만, 텐트까지 사놓고 캠핑 가는 날만 기다리던 나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만큼 황당한 소리였지만 아이들 아빠에게는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빠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나의 엄마 자질에 대해 평가할 정보를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아이 아빠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대신, 저만치서 일기 숙제를 하고 있는 똥이를 불렀다.

"똥아~! 너 이번 추석에 할머니 댁 가기로 했다며?"

"아.... 엄마. 그게....."

내 표정을 살피며 말을 잇지 못하는 똥이를 보니,  엄마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냐고 다그쳐서는 안 될 일 같았다. 캠핑 계획을 입 밖으로 꺼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하는 식으로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될 일도 아니었다.

" 갔다 와. ○○언니랑 □□도 보겠네? 좋겠다."

"응. 맞아. 아빠가 추석 때 ○○언니네도 온다고 같이 놀래."

"엄마가 맛있는 빵 사 줄 테니 갈 때 할머니 선물이랑 같이 들고 가. 할머니께 엄마 대신 인사도 전하고."

"응!! 엄마 고마워."

똥이가 내 품에 쏙 들어와 안겼다. 이번 추석이 내게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윽고 찾아온 추석 연휴, 아이들은 돌고래 함성을 지르며 아빠를 맞았다. 나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는 당부와 함께 아이들을 차에 태워 보냈다. 차창 밖으로 한참을 하늘거리던, 코스모스 같이 고운 손들이 내 머릿속 새로운 명절 풍경을 깨끗이 닦아내주고 있었다.


'잘 가라 이것들아. 제발 몸도 마음도 상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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