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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Oct 08. 2022

저 이혼했습니다

이혼을 고백하는 방법

"○○아. 나 휴직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언니....?"

"응?"

"혹시.... 그것 때문에 휴직하는 거야? 나 ○○과장님한테 들었어. 언니 이혼했다고..... 힘들었지? "

"참 빠르네. 벌써 거기까지... 너한테는 내가 직접 말했어야 하는데. 남의 입으로 먼저 듣게 해서 미안하다."

"아... 아니야. 걱정 많이 됐는데 먼저 말 꺼내기도 그렇고 신경만 쓰고 있었어."


휴직을 며칠 앞둔 작년 봄의 어느 날, 다른 지사에 근무 중인 동기와 주고받았던 말들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사나 어미까지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순간 우리 사이를 감돌던 공기는 어제 일인 양 생생하게 느껴진다. 휴직은 개인의 의사로 결정될 부분이었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영향받을 부서원들을 생각하면 온전히 개인의 문제도 아니었다.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하는 자격시험 사업이란 코로나로 인하여 더 많은 주의와 준비를 필요로 했고 시험일자가 축소되고 수험인원이 줄어드는 것에 반해 담당 직원들의 업무 강도는 높아져 갔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사라는 말로 부서원들에게 휴직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어 자리를 비우는 것이라고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부서원들이 공감해주기를 바라서도 아니요, 휴직 일자를 앞당기겠다는 술수도 아니었다. 그냥 그게 그 혼란의 시간을 함께 보내온 동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부서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내게 일어난 사건들을 간략히 말하고 오후에 부장님을 찾아가 사정을 말씀드리고 휴직을 신청할 것이라는 계획도 전했다. 억눌려 온 감정들이 일시에 솟구쳐 올랐는지 차분하게 시작됐고백이 눈물바람으로 끝이 났고 동료들은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큰 산을 넘은 기분이었다. 이제 휴직 개시일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은 이야기를 속에 담아두기가 오죽이나 힘든 일인가? 동료들은 말로 글로 저 멀리 있는 동기나 친한 선배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퍼다 날랐고 이야기는 사람을 거쳐 갈 때마다 조금씩 색을 입었다. 그렇게 현란한 색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른 나의 이혼 이야기가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굳이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이혼 사실이 알려진다고 해서 바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한참을 고민해서 내린 나의 결정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돼 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나의 사연이 인정 넘치는 누군가의 술안주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훌륭한 먹잇감으로 쓰일 생각을 하니 서글프기도 했다.  꼴이 철창 안에 갇힌 원숭이 같다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휴직은 빠른 속도로 처리됐고 나는 씁쓸함과 서글픔을 안고 회사를 벗어났다.


짧은 휴직이 끝나고 어느덧 돌아온 복직 시기, 복직 신고도 할 겸 인사도 드릴 겸 회사를 찾았다. 부장님과 부서원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일어서려는데 우리 부서 앞을 지나시던 옆 부서 부장님이 나를 보고 발걸음을 돌리셨다.


"어. 반가워요. 이제 좀 괜찮아요?"

"아.... 네. 괜찮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지만 그냥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혼을 한 게 괜찮냐는 건지, 아이는 이제 괜찮냐는 건지, 회사에 돌아올 준비가 됐냐는 건지 아니면 이 모든 의미를 다 내포한 말인지 불분명한 가운데 분명한 것은 나의 이혼을 아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나의 이혼 사실은 얼마나 많이 그리고 널리 퍼져나갔을까? 인사를 마치고 회사를 나오는데 앞으로 이 건물 안에 있는 수 백 명의 사람들을 마주칠 때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나의 이혼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마법 안경 같은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둘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면 아는 사람들에겐 애써 모른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나름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낯빛을 하며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안경이 있기 만무한 법.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이런저런 추측을 하는 게 싫었던 나는 회사 복도를 지날 때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고개를 푹 숙여 나를 지켰다. 최대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무채색의 옷을 입고 벽처럼 바닥처럼 그렇게.....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숨길 게 있어서도 아니었다. 마니토를 추측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이혼을 아는 사람을 추측하는 한심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 투명 인간처럼 살아갔다. 더러는 편하기도 했고 더러는 외롭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 일 년이 가고, 또다시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준비를 위해 매일 같이 들여다보는 거울 속에서 많이 늙었지만 또 아직 많이 젊은 여인을 보았다. 바짝 말라 생기를 잃어버린 그 여인을 보며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처럼 이혼을 고백하는 선언문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여러분들의 축하 속에 맺었던 부부의 연을 2021년 1월로 끝맺게 되었습니다. 숱한 고민 뒤에 내린 결정이므로 지나친 염려와 걱정 대신 따뜻한 격려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와 ○○의 엄마 ○○올림

비혼 선언도 하는 마당에 이혼선언은 왜 못하랴?

이 김에 이혼 선언문을 확 찍어 돌려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다 그 돈이면 거울 속 그녀에게 예쁜 옷이라도 한 벌 선물할 텐데 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이혼이라는 단어 앞에 제법 당당해졌지만 주위의 시선에는 아직 작고 초라한 존재임을 실감하며 가야할 길이 한참 남았다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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