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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Dec 02. 2022

향기 나는 똥은 없다

남의 이혼 이야기를 찾아 읽는 자의 변명

이혼을 했지만 이혼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는 싫었다. 죽은 자식 불알 더듬는 격 같기도 하고, 이미 다 끝난 결혼 생활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같아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바늘 가는데 실 가듯 한부모 양육과 관련된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혼이라는 글감이 따라와 붙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하고 나니 글 속에서 이혼을 언급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상한 건 이혼이라는 글감의 자리가 늘어날수록 다른 사람의 이혼 이야기를 찾아 읽는 일도 잦아졌다는 이다. 처음엔 관음증이 있는 사람처럼 몰래 찾아 읽었고, 그러다 라이킷을 누르고, 구독을 하다 어느덧 댓글까지 남기기 시작했다.


이혼을 경험한 사람 가운데는 교사, 공무원, 간호사처럼 소위 일등 신붓감으로 꼽히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있었고 공무원은 아니지만 나와 비슷하게 공공기관에 몸 담고 있는 이도 있는 것 같았다. 나보다 젊은 사람도 있는 듯했고, 나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사람도 있는 듯했다. 경제적으로 제법 안정돼 보이는 사람도 있고 경제적인 부분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직업도 나이도 경제적 여건도 다양한 그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 하나는 이혼에 이르기까지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조차 가늠할 수 없는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 같고 어쩌면 남의 이야기 같은 그녀들의 이혼 이야기를 읽어 온 몇 달, 나는 이혼과 이혼을 겪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들의 이혼 이야기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아름답고 행복한 이혼은 존재할 수 .

-아름다운 이혼을 찾는 건 향기 나는 똥을 찾는 것과 다름없달까? 굳이 구분하자면 치우기 쉬운 똥과 치우기 곤란한 똥이 있을 뿐.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이혼은 치우기 쉽고 치운 자리가 깔끔한 축에 속했다.


2. 이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젊고 예쁜 여자들도 이혼을 한다. 이혼은 내가 못 나서 하는 게 아니다. 이혼은 잘못된 결혼을 바로잡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자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나를 탓하지는 말자. 


3. 나는 여전히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남편이 외도를 한 것은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서 혹은 내게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외도는 결혼한 사람이라면 응당 지니지 않아야 할 나쁜 버릇 중 하나이며 나는 나쁜 버릇을 가진 남편을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 남편의 외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나 스스로를 못난 사람 혹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깎아내리는 일은 하지 말자.


4. 이혼은 불행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가족 중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양육자로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혼하지 않았다면 다른 힘듦이 나를 괴롭혔을 것이다. 이혼은 힘들지 않기 위해 혹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름 모를 그녀들의 이야기가 이혼 후 줄곧 나를 괴롭혔던 죄챔감과 자기비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주었듯, 나의 찌질한 이혼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삶의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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