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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Oct 19. 2022

편의점과 놀이터(하)

너로 인하여 나는 다시

"엄마? 엄마! 왜 그래? 괜찮아?"


이가 목석이 돼 버린 내 몸을 흔들었다. 괜찮았다. 어린 똥이가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후려쳤을 뿐.


"괘.. 괜찮아. 그때 기억나지. 똥이한테 얼마나 고마웠다고."


똥이 기억 속 그날, 나는 한 마리 짐승이었다.

한 집안의 며느리로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아왔건만 돈이 무엇인지 이혼과 재산분할 문제로 시댁 어른들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들었다. 한 때 가족이었던 사람들이 철저한 남이 되어 욕을 뱉어내는 상황을 맞닥뜨리자 모든 사고가 마비되고 울분만이 콸콸콸 솟아올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욕을 들어서가 아니라 버림받았다는 느낌, 혼자라는 외로움이 내게 참을 수 없는 패배감을 안겨준 것 같다. 집안 어른들까지 나서 이혼조정을 하던 아이들 아빠와 달리 이혼의 결정부터 실행까지 오롯이 혼자였던 내게 그 당시 시댁 어른들의 제 식구 감싸기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는 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아 주인에게 버림받은 짐승처럼 처량하고 처절하게 울었다. 그때 나는 울면서 무슨 말을 계속 내뱉었는데, 나조차 알아들을 수 없던 그 소리는 말이 아닌 부르짖음에 가까운 것이었다. 생각지 못한 나의 격한 반응에 시댁 어른은 '미친년'이라는 세 음절뱉고 전화를 끊어버렸고 나는  크게 울었다. 울며 생각했다. 이렇게 끝 간데 없이 비참해질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아이들이 있었지만 나쁜 생각도 눈물도 멈출 수 없었다. 고개를 처박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방바닥 위로 휴지 한 장과 전화기를 쥔 작은 손이 쓰윽 나타났다. 나는 콧물과 눈물과 침과 온갖 끈적이는 것들로 범벅이 된 못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엄마. 할머니가 나쁜 말 했어? 속 많이 상하지? 조금만 더 울다가 나랑 바람 쐬고 오자. 그럼 좀 나을 거야."


똥이의 말이 마비되었던 정신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정신이 드니 더 울 수가 없었다. 휴지로 얼굴을 대충 닦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곧이어 내 앞에 모자가 놓이고 두툼한 외투가 등을 감싸 안는 느낌이 들었다.


"다 울었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길 잃은 짐승 마냥 물끄러미 똥이를 바라보았다. 똥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기분이 안 좋을 땐 놀이터를 가면 나아지더라고. 같이 저기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에 가자."


아이들이 보든 말든 내 기분 내키는 대로 울부짖었던 나의 인격이란 것이 일곱 살 딸아이의 배려와 위로 앞에 한 없이 초라해졌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시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나사가 풀어진 수도꼭지 마냥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흘렀다.


"또. 또. 또. 운다. 뚝!"


대체 언제 챙겼는지 주머니에서 휴지를 한 움큼 꺼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아이의 고사리 같이 여리고 고운 손길이 엄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잠깐이나마 죽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비참하든 처절하든 내게는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있었고 그게 바로 내가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미안해. 아까 엄마가 막 크게 소리 지르고 울어서 놀랐지?"

"응..... 그래도 괜찮아. 엄마가 너무 속상해서 그랬겠지."

"미안해. 미안해."

"또. 또. 또 우네. 이제 놀이터 다 왔다. 놀 기분 아니면 여기 좀 앉아 있어. 나 노는 거 보면서."


말이 끝나자마자 놀이터에 있던 아이들 무리 속으로 사라진 똥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뛰고 달리며 한참을 그렇게 놀았다. 그리고 해 질 무렵 웃는 얼굴로 놀이터를 나서며 내게 말했다.


"어때? 내 말대로 바람 쐬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낫지?"

"응. 그러네. 똥이 말 듣기 잘했다. 고마워."

"히힛. 앞으로 기분 안 좋을 때 또 오자."


그날 이후, 아이들 앞에서 다시 그런 모습을 보인 적도 놀이터에 다시 갈 일도 없었다. 사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 일부러 피해 다녔다. 그렇게 피하다 보면 잊힐 줄 알았다. 나에게도 똥이에게도 없던 일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 밖의 상황에서 그날의 기억을 마주한 지금. 똥이가 그날 기괴하고 끔찍했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날의 기억이 똥이에게서 사춘기의 반항 혹은 청춘기의 저항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사랑스러운 똥이가 그 언젠가 내게 날 선 반항과 거친 저항을 할 때 나는 또 다시 괴로움 속을 허덕이겠지만, 그날의 똥이로 인하여 내가 다시금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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