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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Apr 19. 2023

못난 직장인 육아로 도망치다

사람에게 오감 저 너머의 여섯 번째 감각이 있는 게 맞다면, 그 육감이라는 게 무의식의 영역에서 꿈틀대고 있다면, 나의 행동을 생존에 유리하도록 조정했을까?


나는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직원이라면 성별 막론하고 휴직 급여가 지급되는 마지막 하루까지 딸딸 긁어 쓰는 육아휴직을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 하루도 쓰지 않았다. 출산 휴가 90일을 지나고 업무에 바로 복귀했다는 이다. 옛날 어머니들이야 아이 낳은 다음 날 바로 밭일을 했다지만 권리와 의무의 경계가 확실한 공공기관 직원들 사이에서 나는 충분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일부는 일에 대한 열정이 과하다 했고, 또 일부는 승진에 눈이 멀었다 했고, 일부는 남편이 실업자라 그런 거라고 온갖 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대단한 책임감이 있어서도 아니고 승진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경제적 부분 역시 집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출금에 조금 허덕이긴 했으나 남편의 벌이로도 충당은 가능한 부분이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그냥 출산 90일 이후에 직장에 나가 일을 해도 될 만큼, 사람들의 잡소리에 신경쓰지 않을 만큼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넘치는 지나치게 건강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중에 육아휴직이 꼭 필요한 시기가 온다면 그때 쓰리라 아껴 두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몇 년 사이 모든 것이 무너졌고 내게 휴직이 꼭 필요한 시기가 왔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번째 육아휴직을 쓰고 복직 한 지 일 년 여덟 달 만에 사람에 치이고 일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육아라는 전쟁터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내게 허락된 일 년의 시간.

망가진 몸의 건강도 찾고, 그보다 더 뭉그러진 마음을 살살 펴 보려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가 매일 집에 있어서 마냥 좋은 아이들 얼굴도 더 많이 바라봐 주며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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