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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May 26. 2023

자동적 사고와 방어기제

휴직일기_2023.05.15.

"말 걸어오는 사람 없나?연애도 좀 하고 해야지."

"없는데? 아! 맞다. 70대 정도 돼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랑 할머니 한 분 계셨다."

"좀 젊은 남자 없냐고!!"

"여기 복지센터라서 회원이 거의 할머니 할아버진데?"

"니 또 누구랑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 푹 숙이고 그렇게 다니는 거 아니가?" 

"어. 당연하지. 조심해야 한다."

"?"

"제비가 작업하는 거면 어떡해?"

"제비는 돈 많은 사모님들 꼬신다. 걱정 마라."

"아니! 옛날에 경찰청 사람들 보면 제비가 공사장 함바집 아줌마 꼬셔서 힘들게 모아 둔 돈 다 빼먹고 마지막 장면에 그 아줌마 애들 부퉁 켜 안고 울면서 끝나잖아. 함바집 아줌마가 돈이 많아서 접근했겠냐고!! 무조건 조심해야지!"

"아이쿠. 언제 적 경찰청 사람들에, 언제 적 제비냐며.... 어찌 애가 그런 생각을 다 하노?"

"몰라!! 암튼!! 멀쩡하고 제대로 된 남자가 나 같이 애 둘 딸린 이혼녀한테 왜 접근하노? 다 목적이 있는 거지."


나의 외로움을 걱정한 친구와의 대화는 늘 경찰청사람들 속 함바집주인과 제비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연애라는 단어가 투입되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함바집주인과 제비가 등장하는 영상과 함께 사람에 대한 의심, 순수한 사랑에 대한 불신, 파국에 대한 확신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사진출처: 나무위키, 경찰청 사람들 설명자료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의식적 노력 없이 저절로 떠오르는 인식을 일컬어 자동적 사고라 다. 

자동적 사고란
어떤 자극이 주어질 때
의식적 노력 없이도
저절로 떠오르는 인지의 연속적 흐름이다.

자동적 사고는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생성된 신념 및 가정을 반영하기 때문에, 왜곡된 신념을 가진 사람의 경우 사건에 대해 극단적이거나 부정확한 인식을 하게 된다. 


이혼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재혼 가정을 이룬 일반인 여성, 드라마 촬영 중 만난 상대 배우의 끈질긴 구애 끝에 새 가정을 꾸린 싱글맘 여배우, 알콩달콩 공개 연애 중인 싱글맘 방송인까지 조금만 살펴보면 한부모 여성들의 사랑에 대해 참고할만한 사례는 허다하다. 매스컴이 아니더라도 엄마 친구의 딸, 친구의 친구, 대학원 동기의 여동생 등 즐겁게 연애하고, 재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충분히 많다.


그런데 왜 그 연애를 나라는 사람에 한정하면 파국의 상황이 그려지는 걸까? 경찰청 사람들의 짜임새 있는 구성현실 검증능력을 마비시킨 걸까? 아니라면 과거에 만났던 남자들과의 나쁜 기억이 내 팔자에 멀쩡한 남자는 없다는 이상한 신념을 만들어낸 걸까?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고 있던 중에 아는 동생에게서 이혼에 대한 조언을 바란다며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말이 아는 동생이지 부부동반 모임을 같이 하던 계원 중 한 명이라 내게 연락을 한 것도 연락을 한 목적도 참 이상했는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언니 연애 생각은 없어요?"

"응."

"외롭지 않아요?"

"음..... 가끔."

"난 이혼해도 또다시 누군가한테 사랑받고 싶은데. 언니는 그런 생각 없어요?"

"음... 난 좀 겁이 나."

"사람이? 아님 또 실패할까 봐?"

"사람을 보는 내 눈이 틀렸다는 걸 너무 뼈저리게 느꼈잖아. 그러고 나니 내가 또 실수를 하게 될까 봐 겁이 나."


예기치 못한 질문에 툭하고 튀어나온 그 말이 외로움과 연애에 대한 내 솔직한 심정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연애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던 함바집 아줌마의 절규는 연애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고자 작동된 방어기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외로움의 크기가 더 커져서 실수라는 것도 모르고 누군가를 잡아채기 전에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렵겠지만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내는 연습, 좋은 사람을 알아채는 훈련을 시작해 보기로 했. 당장 고개를 들고 다니는  어색하고, 누가 좋은 사람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모르는 건 사람 앞날이라 나의 휴직일기에 사랑이야기가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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