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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Jun 05. 2023

감정 떠안기

휴직일기_2023.05.22.

하루에 서너 시간씩   동안 준비해 온 시험을 치렀. 답이 한 눈에 보일 정도로 쉽고 명확한 문제도 있었지만 어렵게 느껴지는 문제도 제법 있었다. 찾아보면  두 주, 이틀을 준비하고 합격했다는 후기도 있는두 달이나 준비해 놓고도 답을 확신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사 시험장을 나서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운전면허시험 합격 점수가 중요하지 않듯 독학사 시험의 점수가 향후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학위 취득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했어야 하는 걸 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 버린 탓이었다. 앞으로 칠 청소년상담사 시험의 기준점, 모의평가, 나란 사람의 능력치 등등 내가 이번 독학사 시험에 부여한 의미는 많고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의미를 부여해 봐도 시간이 흐르면 그 의미가 지니는 가치는 옅어지거나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수능, 임용고사, 첫 월급, 첫 집 등 등 인생에 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랬으니까.... 독학사 시험도 기왕 잊힐 사건이라면 조금 일찍 머릿속에서 덜어내기로 했다. 아니 발표일까지만이라도 덜어내기로 했다. 스무날, 딱 그만큼만 느림보 굼벵이처럼, 기타 치는 베짱이처럼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란 여자!

어김없이 매일 가던 북카페로 출근 도장을 찍고 말았다. 고인 물도 이런 고인 물이 없었다. 가는 곳도 만나는 사람도 정해져 있는 나란 고인 물이 북카페로 들어서자마자 향한 곳은 지난 휴직기간에 읽었던 책,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앞이다. 대체 이 책은 비 오는 날 생각나는 막걸리, 시장에 들어서면 먹고 싶어지는 소머리국밥처럼 삶이 힘들어 육아로 도망친 시기에 꼭 읽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란 말인가?


이미 두 차례나 완독한 경험이 있던 책이라 편하게 책장을 넘기는 중, 한 단락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왜 우리는 어쩔 줄 모르고,
불편해하고, 못 견딜까요?
상대방의 감정을 내 것처럼 떠안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이 때론 잘못되었어도 그 사람 것이에요.
그 감정이 나를 향한다며 지나치게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가 이유도 없이(이유를 추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불편해하지 말라 오박사님의 조언이 담긴 페이지였다. 아이의 감정을 내 것으로 떠안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이 화를 내거나 안절부절 못한다는 구절을 보며 나도 모르게 회사 동료 S의 감정을 내 것인 양 떠안고 힘들어했던 기억 떠올랐다.

 S는 매사에 의욕이 넘치고 승진에 대한 욕망도 큰 친구였다. 그 친구는 종종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까칠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런 행동을 보이는 시기가 내게 새로운 프로젝트가 부여되거나 내가 상사로부터 업무상 칭찬을 받는 시기와 대체로 맞물렸기에 S의 그런 행동이 나를 향한 것이라 오해한 적이 많았다. 오해를 했다고 해서 S를 붙잡고 나 때문에 화가 난 것이냐고 물어본 적은 없지만 S가 잔뜩 예민해져 있을 때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S의 눈치를 살피며 좌불안석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S가 예민한 날이 많다 보니 내가 칭찬을 받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날도 그 많은 날들 중에 하루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S의 예민함이 나에 대한 경쟁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지만 무엇이 정답이건 간에 중요한 건  감정 S가 만들어낸 S만의 이라는 사실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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