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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영 Feb 16. 2023

내가 사랑한 모든 개들에게

그저께 아침이었다.


한 시간 정도 걷고 돌아와 아침을 먹으려는 생각으로 물 한 잔만 가볍게 마시고 집을 나섰다. 매번 그랬듯 한강으로 향하다 갑자기 이른 아침 조용한 골목길이 걷고 싶어져 방향을 틀었다. 그러곤 한 3분이나 지났을까, 강아지 한 마리가 목줄을 땅에 질질 끌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표정만 봐도 아직 어리다는 것과 사람을 잘 따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위에 다른 사람이 보이질 않아 우선 목줄부터 잡아 들고 두리번거리며 기다려봤으나 아무도 따라오는 이는 없었다. 이름표는 없었어도 목줄이 있으니 보호자가 있겠지 싶어 발견 장소의 주소가 드러나는 사진을 포함해 몇 장 주위 사진을 찍고 당근에 글을 올리려 앱을 열었다. 웬걸, 앱을 열자마자 보이는 어떤 글에 방금 만난 강아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어딘지 조금 이상했다. 보통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 글에는 '제발 연락 부탁드려요'라던지 '사례하겠습니다', '목격하신 분 알려주세요'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간절함이 담기기 마련인데 이 글에는 강아지가 산책 중 탈출했다며 '얼른 돌아오렴'이라고 쓰여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싸했지만 어쨌든 얼른 돌아오길 바란다니 여기까지는 그냥 보호자의 완곡어법 정도라 생각했다. 곧바로 방금 찍은 사진과 함께 아이를 찾은 것 같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같은 말 대신 '네, 몇 살이구 온순해서 사람을 잘 따르고 어쩌구'하는 말을 남겼다.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반응이었지만 당장 내가 보호하고 있다 하니 일단 소개(?)부터 시켜준 건 아닐까 애써 이해해 보며 또다시 댓글을 남겼다. 지금 바로 찾으러 오셔도 되고 아니면 어차피 나는 운동하러 나왔으니 내가 좀 산책시키다가 30분 정도 후에 아이를 발견한 이 자리에서 봐도 괜찮다고. 그 사람은 30분 후에 보자고 했다. 알겠다는 답을 남기고 이제 다 해결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방금 처음 만난 강아지와의 본격적인 산책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보호자는 '잠시만요. 망원이 아니라 합정동이네요? 언제 거기까지 갔지 ㅋㅋ'라는 댓글을 추가로 남기더니 곧 그간의 대화가 댓글로 남겨져 있는 원글을, 강아지가 집을 나갔다고 애초에 본인이 올렸던 그 글을 삭제해 버렸다. 보호자와 연락할 길이 없어진 나는 당황해 얼른 보호자분을 찾는다고 글을 올렸지만 한동안 댓글은 달리지 않았다. '얼른 돌아오렴'이라는 말에서 왠지 모를 싸함이 느껴졌던 데엔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분명 보호자와 연락이 되긴 했었으나 이제는 안 되는 상황에 이 아이를 유기견으로 봐도 되는 건가 판단이 잘 서지 않은 채로 산책 아닌 산책을 더 하다가 칩 인식을 해보려 동네 동물병원을 향했다. 다행히 등록된 칩이 있어 보호자의 연락처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몇 번을 시도해도 받지 않았다. 보호자 번호도 개인정보이다 보니 내가 함부로 넘겨받을 순 없었고 병원 측에서 계속 연락을 시도했는데 몇 번을 걸어봐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키우던 강아지가 없어졌으면 본인한테 걸려 오는 전화는 뭐든 받아야 하는 상황 아닌가? 점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져 왔다.


도저히 보호자와 연락이 되질 않아 구청에 연락했더니 구청 측에서는 취할 방법이 없다고 구조단체에 연결을 해주겠다고 했다. 구조단체는 병원 측을 통해 연락을 줬고 일단 구조팀이 온다고 하니 나는 병원에서 기다림을 이어갔다. 그사이 초조한 마음에 다시 당근을 열어보니 보호자가 새로 글을 올려 본인 번호를 공개해 놓았더라. 웬일인가 싶어 얼른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이제는 이상할 것도 없었다. 받지도 않을 번호 올려놓으면 뭐 하냐고 조금 날 선 댓글을 남겼지만 그에 더 이상 댓글은 없었고 전화도 한동안 받지 않았다. 구조팀을 기다리는 동안 계속 연락을 시도한 끝에 보호자와 겨우겨우 전화 연락이 닿았다. 지금 어디냐고 물어와 어디라고 얘기했을 때 '아 거기요..'라며 떨떠름한 목소리가 들려올 즘엔 거의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은 이 아이를 키울 자격도 마음도 없는 사람이구나.


찾으러 오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의 정황을 봤을 때 정말 찾으러 올 것인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라 구조팀은 구조 팀대로 기다리기로 했다. 7시 반에 일어나 11시가 다 되어 가도록 물밖에 마신 게 없는 나도 더 이상 안 되겠어서 근처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카페에서 아침이라도 먹고 오겠다고 병원에 얘기해 두고 목줄을 손에 꼭 붙든 채 밖으로 나갔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보고 손가락 하나를 허공에 휘휘 저으며 아는 척을 해 왔다. 헤드폰을 끼고 한쪽 귀만 겨우 내놓은 채로 다짜고짜 '제 강아지 데리고 어디 가시냐'며 경계하던 그 사람은 잃어버렸던 본인 강아지를 다시 만나는 순간에도 손길 한 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내가 쥐고 있던 목줄을 건네받으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반가울 것도 다행일 것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고 나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존재가 반갑지도 다행이지도 못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당황스러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무슨 말이든 뱉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했던 한 마디에 그간 사정도 모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며 참아왔던 분노가 솟구쳤다. 


그 사람은 망원에서 합정이 멀어서 오지 않았다고 했다. 본인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나 잠시 언성을 높였던 것 같다. 어이가 없어 하던 말을 끝내지 못했던 것도 같다. 나중에 다른 분이 달아 준 제보성 댓글을 보니 이 보호자는 전에도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고 글을 올린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상습적으로 있는 일이라 무덤덤한 반응이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습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아니면 이미 강아지의 행방은 밝혀졌고 누군가가 맡아주고 있으니 마음 편히 생각했던 거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간의 정황을 보면 그런 이유도 아닌 것 같았다. 그냥 그대로 길거리에서 목줄을 넘겨주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고 병원도 어차피 코 앞인 마당에 병원에 사정도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시 일단 들어가자고 걷는데 그 사람은 뭐라고 더 말을 했던 것 같다.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복잡한 마음에 뭐라고 말하는지 들려오지도 않아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병원에 들어가는 길에도 그 사람은 내 손에 쥐어진 목줄을 넘겨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사람은 끝내 '찾아줘서 고맙다', '다행이다' 같은 말도 하지 않고 병원을 떠났다. 감사하다, 수고했다는 말은 병원에서 같이 아이를 봐준 간호사 선생님과 나 사이에서나 오고 갈 뿐이었다. 다행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지만. 병원에서 인사를 마치고 나오니 앞서가고 있는 그 둘이 보였다.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았던 그 강아지는 목줄을 잡아당기면서 걷는데 그대로 끌려가며 신난다는 듯 두 팔을 벌려 비행하는 시늉을 하며 뛰어가던 그 사람의 뒷모습,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차도로 내려가는데도 제지를 하는 둥 마는 둥 몇 번을 그렇게 놔두던 모습을 뒤에서 몰래 지켜봤다. 신호가 바뀌어 둘은 횡단보도를 건넜고 이제 나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야 했다. 병원에서 목줄을 넘겨주던 그 순간까지도 너무 정신이어이가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 했는데. 그렇게 멀어지던 뒷모습을 보니 분하고 화나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무기력한 마음이 밀려와 금세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원래 가려던 카페에는 내 반려견도 아니고 카페 크기에 비해 덩치가 조금 있어 통제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가도 되겠냐고 미리 양해를 구해 놓은 상태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혼자라도 가서 아침이나 싸 가려 카페에 들러 혹시 기다리고 계셨을지 모를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동안 항상 보던 사장님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장님이 계셨는데 그냥 누군가에게든 이 더럽고 복잡한 기분을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포장된 샌드위치를 건네주며 사장님은 아침부터 고생하셨다고 드립백을 하나 넣어뒀다고 하셨다. 격려와 위로가 담긴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수고에 대한 격려와 위로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가졌어야 할 마음 하나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해 괜히 애꿎은 곳에서 맴돌고 있는 감사와 위로와 배려의 마음들이 마음 아파 또 목이 메었다.


벌써 7-8년은 더 된 어느 날, 내 옆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는 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탄이는 행복할까?' 궁금했다. 항상 마음의 형태로만 가지고 있던 의문이 하나의 완벽한 문장의 형태로 떠오르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행복을 바란 적이 있던가 생각했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불행을 바란 것도, 누군가의 행복에 함께 행복해할 줄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그 적극적인 마음은 또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종류의 사랑은 이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러니 나와 함께 지내는 탄이, 쩨리, 삼탄이 뿐 아니라 내가 이름 불렀던 모든 생명체들, 인간의 언어로 지어진 세상이 혼란스러울 수많은 이름 모를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오늘도 적극적으로 바란다. 그러한 바람 속 고민, 반성, 실천의 이어짐이 이틀 전 기억을 어서 달랠 수 있기를. 


지난 여름, 이틀 전의 그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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