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노 마키코 씨에게,

독후감 -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

by 아이귤


미야노 마키코 씨에게,



안녕하세요 미야노 씨, 요즘 그 세상 날씨는 어떤가요. 나쁜가요? 그래봤자 독일의 겨울날씨 만큼은 아닐 것 같은데요. 하하. 그리고 보니 저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독일의 음습한 겨울 날씨가 올해 유독 견디기 힘드네요. 관절염으로 욱신거리는 제 손가락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네, 맞아요. 최근에 저는 건선 관절염 진단을 받았답니다. 완치는 불가능하고, 이유도 모르면서 그저 상태에 따라 약의 양을 조절하며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래요. 미야노 씨가 말하는 ‘불운’이죠. 저는 이미 일어난 일의 원인을 찾거나 그 순간의 감정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는 거고, 그게 더 커지지 못하도록 다음 단계에서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찾는 게 언제나 더 시급하죠. 어떤 ‘불운’이 있어도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내어 안심하는 것이 ‘불행’해지지 않는 저만의 방법이랄 수 있겠네요.


그런데 재밌는 게 있어요. 앞일을 전혀 알 수 없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적어도 평생 관절염을 앓아야 한다는 사실 한가지는 확실해진 거잖아요? 그런데 그 확실한 사실 때문에 인생이 더 막막해진 것 같아요. 해결책이란 게 결국 문제를 제거하거나 우회하는 방법을 찾는 일일 텐데, 제 앞길에 그야말로 우뚝 서 있는 이 병은 제거도 우회도 불가능하니까요. 완치는 커녕 약을 먹고 운동을 하며 노력을 해도 병세가 어디로 튈 지 모른다니요, 저는 이렇게 우연과 운에 의지해야 하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미야노 씨는 암이라는 압도적인 불운 속에서도 자기자신을 잃지 않고 기록을 남겼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미야노 씨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넘어지지 않고 계속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저도 과연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의 제게는 그저 막연하기만 합니다.


미야노 씨가 연구한 학자 구키 슈조는 ‘(운명이란)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우연에 휘말리면서 그 우연에 대응하는 와중에 자신이란 무엇인지 발견해내고 우연 속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죠. 제 관절염이 오십 년 가까이 알아 온 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을 기회를 준 것일까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적화된 사람으로 살아온 저에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견디는 법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요.


미야노 씨, 그러나 지금의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제거도 우회도 할 수 없고, 심지어 예측도 불가능한 ‘불운’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아 함께 걷는 일이 어떤 것일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병으로 제 삶의 흐름이 끊긴 것 같은 이 순간에서, 어느 방향으로 걸어나가야 할 지 몰라 그저 망설이고 있네요.


다시 편지를 쓰지요. 앞으로도 반복될 독일의 우울한 겨울처럼 호전과 악화를 반복할 이 병을 제가 제 인생의 기본값으로 완전히 받아들일 날이 오면요.




2025년 12월,

아이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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