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교토 여행
직장 생활 4년 차.
연차의 99%를 여행으로 소진하는 프로여행러.
이번에는 나 홀로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9.25~29
나 홀로 교토 여행
예상했던 것보다 입국심사가 훨씬 빨리 끝난 탓에 계획에도 여유가 생겼다. 간사이공항의 입국심사는 까다롭기로 유명해서(특히 에어비앤비 숙박의 경우) 입국심사가 최대 2시간까지도 지연될 수 있다는 후기도 본 지라, 나는 입국신고서부터 천천히 디테일하게 작성했다. 나는 제법 입 소문이 나 있는 호스텔에 묵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렇게 숙소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캐리어와 짐을 맡기고, 카메라와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배는 고팠지만 일단 뭐라도 먼저 구경하고 싶었던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찾은 곳이 혼자서 저 멀리 뚝 떨어져 있는 명소, '후시미 이나리'였다.
한국인들에게는 여우 신사로 더 잘 알려진 곳.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나온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게이 한 선을 타고 후시미 이나리 역에 내려 도보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익숙한 신사가 나온다.
신사를 올라가는 길에는 다양한 노점들이 있는데, 간단한 군것질 거리들을 판매하고 있다. 당고부터 게살 구이까지 종류들이 다양하니 배를 채우기도 좋다. 그 노점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가게는 자몽?처럼 보이는 과일 주스 가게였다. 사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일본 유명 관광지에 가면 항상 그 과일 주스를 팔고 있었다.
후시미 이나리는 입장료가 없다. 일본 대부분의 관광지가 입장료가 제법 센 편인데, 이 곳은 입장료가 없다고 해서 꽤 놀랐던 부분. 또한 정해진 관람시간 없이 365일 24시간 개방되니, 관광객들에겐 매우 후한 명소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밤에 가면 조금 무섭다고들 카더라...)
붉은 주 칠을 한 도리이는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천 개가 넘는 도리이가 산 정상까지 이어져있다고 하니, 괜히 순례길 코스라 불리는 게 아니다. 기모노를 입고 올라오는 관광객, 현지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이 명소를 한층 더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화려한 문양과 색을 가진 기모노와 이 곳의 도리이는 뭐랄까, 찰떡궁합이었다. 어떻게 셔터를 눌러도 예쁜 사진이 나왔다. 한국의 한복도 그렇지만, 일본의 기모노 또한 참 아름다운 전통 의복이다. 화려하면서도 정도가 지나치지 않고 절제된 모습이 일본의 정체성과 잘 맞닿아있다.
색도 색이지만 흐트러짐 없는 배열과 도리이 사이사이에 보이는 녹음들은 환상적이었다. 체력과 시간만 받쳐준다면 끝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짐의 무게와 체력 방전 탓에 끝까지 가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관광객들은 도리이 길 입구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적하게 도리이 길을 즐기고 싶을 경우 관광스팟에서 조금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제법 괜찮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 새벽부터 이 곳을 방문하는 사진가들도 꽤 많다고 한다.
화려하다. 눈이 황송할 정도로 강렬하고 매혹적인 색채였다. 무엇보다도 여태껏 사진으로만 봐 왔던 아름다운 도리이들 속에서 걷고 있자니 '내가 정말 여행을 오긴 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도리이의 화려함에 취해, 그리고 관광객들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덕분에 혼자서 방문한 첫 명소였지만 외롭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이때까지는.) 단숨에 나의 시선을 앗아간 여우 신사는 교토의 명소들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교토 여행의 첫 단추로 완벽했던 후시이미나리.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신사에서 나 또한 주변 사람들과 나의 안녕을 빌고 왔다. 다음에도 꼭 다시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교토의 관광 스팟이다.
신사를 내려오는 길에 비가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바로 우산을 펼쳤을 테지만, 이번엔 무슨 패기였는지 우산을 가방에서 꺼내지조차 않았다. 여행이니까 뭔가 색다른 기분을 내보고 싶었나 보다. 처음에는 용감한 여행자 마인드였지만, 나중에는 변덕스러운 교토 날씨에 못 이겨 우산을 펴지 않게 되더라. 번외로 하는 이야기지만 교토 날씨는 정말 변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