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상했던 뉴욕은 이런 곳이 아니었어!

One-Way to New York

by 김아영

여행자들이 여행지를 선택할 때에는 보통 그 여행지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 심리가 자연스레 작용하기 마련이다. 프랑스 파리하면 예술과 문화, 음식이 떠오르고 반짝거리는 에펠탑이 상상되듯이 내겐 뉴욕이 그런 존재였다. 내 머리 속 뉴욕은 트렌디하면서도 늘 화려하고 바쁜 도시였다. 아직도 뉴욕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달디단 색색깔의 컵케이크와 수트를 빼입은 금융인들의 월 스트리트, 그리고 미드 오프닝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물론 그런 뉴욕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주입된 것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미드덕후였던 나는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이 매그놀리아 컵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꼭 먹고 마리라 다짐했었고, 가십걸의 블레어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앞에 앉아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고 꼭 가봐야겠노라 다짐했었다. 일종의 동경이었지만, 어쨌거나 내 상상 속의 뉴욕은 거대하고 화려한 세계의 중심도시였다.


숙소 앞 뉴욕 타임즈 본사. 그 이름만으로 위엄이 넘치는 모습.

우리의 숙소는 뉴욕 42st-Port authority bus terminal station 지하철 역 근처의 엘리먼트 호텔이었다. 호텔 근처에는 이렇게 뉴욕 타임즈 본사 건물이 있었는데, 지나다닐 때마다 그 압도적인 아우라에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뭘 그렇게 호들갑 떠냐고 할 수도 있는데, 무려 뉴욕타임즈니까! 다른 곳은 몰라도 꼭 보고 싶었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뉴욕은 내 예상 밖으로 정신 없고 시끄러운 도시였다. 특히나 타임스스퀘어 부근은 Chaotic 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혼돈 그 자체였다. 정신 없이 바뀌는 신호들과 워낙에 많은 횡단보도에 어느 방향으로 건너야 할 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거기다가 무단횡단은 일상이어서 섣불리 사람들만 보고 따라 건너다가는 차에 치일 수도 있다. 신호등은 아직 "기다리시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식으로 거리낌 없이 휙휙 지나다니는 무서운 사람들. 우리 일행은 아무리 여행자 보험을 들었다지만 객지에서 위험한 짓은 하지 말자고 몇 번을 중얼거렸다.


터미널 앞, 줄줄이 서있는 뉴욕의 옐로 캡(택시)들.


뉴욕의 골목은 번잡하고 지저분했다. 그리고 정형화된 고층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모습이 마치 빌딩숲 같이 느껴진다. 크고 네모난 건물들이 반듯반듯, 높게 솟아있다. 터미널 앞 골목에는 뉴욕의 옐로 캡, 그러니까 택시들이 이렇게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택시비가 비싼 탓에 우리는 주로 지하철과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했다. 간간히 버스터미널 주변을 지나다니다보면 싸움이 일어난 현장을 목격할 수도 있다. (험악한 주먹 다짐에 괜히 눈 마주쳤다가 불똥 튈까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역 근처에는 의외로 젊은 노숙자들이 꽤 많았다. 그 중에는 커플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지나다니다보니 문득 영화 <택시 드라이버>가 떠올랐다. 로버트 드니로가 택시 안에서 바라봤던 뉴욕의 거리가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를까? 아니면 비슷할까.



뉴욕도 한 줄 서기를 한다. 난 서울만 하는 줄 알았는데. 하하


뉴욕의 첫 인상은 솔직히 말하면 정말이지 별로였다. 현대적인 도시라 그다지 낭만이 있는 지도 잘 모르겠고, 거리는 항상 너무 시끄럽고 사람도 많아 혼이 쏙 빠졌다. 우리가 자주 이용했던 교통 수단인 지하철은 편리했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뉴욕은 내게 너무 컸고, 또 무심했다. 9일 일정 중에 하루를 제외한 8일동안 우중충하고 비가 내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심지어 뉴욕에 도착한 당일은 비가 억수 같이 내렸다.) 내가 상상했던 뉴욕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연말 시즌이라 한창 들떠있을 때였는데! <굿모닝 에브리원>, <비포 위 고>, <비긴 어게인>, <인턴>,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등등등. 영화에서 본 뉴욕의 모습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연말의 우중충한 뉴욕은 내게 쓸데없는 잡념만 안겨주었다. 물론 겨울이니만큼, 맑고 쾌청한 뉴욕만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뉴욕은 유럽의 여타 도시와는 많이 다른 느낌을 주었다. 중세 건물이 많이 남아있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유럽 도시를 여행할 때 느꼈던 여유가 사라졌으니 인상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마법처럼 닫혀있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 첫 순간은 이 성당을 보았을 때가 아닌가 싶다. 뉴욕 한 가운데에 록펠러 센터를 마주보고 서 있는 뉴욕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우스웠다. 사방이 높은 빌딩으로 둘러쌓인 부지에 세워진, 고고하게 솟아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조화였는데 묘하게 뉴욕답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언뜻 부조화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면으로 보니 조화스럽게 보였다. 실로 기묘한 경험이었다.





이 김에 방향을 돌려 좋았던 점을 얘기해보자면, 뉴욕은 혜택이 많은 도시다. 뉴욕의 패스트푸드 점(파이브가이즈라던가)을 가면 콜라 종류만 열 댓개가 되고, 무한리필이 가능하다. 또한, 뉴욕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세계적인 예술 작품들을 두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 혹여, 미술관을 찾지 않더라도 겨울에는 4시 반이면 해가 지기 때문에 밤이 드리운 뉴욕의 밤하늘을 구경하면 된다. 이 밤하늘에는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장관이 펼쳐진다. 고개만 들면 반짝이는 야경들. (어쩌면 반짝거림보다는 번쩍임에 가깝다.) 온갖 화려한 모델들이 커다란 전광판 안에서 공작처럼 포즈를 취한다. 그래서 타임스 스퀘어 부근은 늘 밝고 깨어있다. 다만,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구분이 없고 여행객들과 인형탈이 가장 많은 장소이기도 하다.



밤이 내린 뉴욕은 낮보다도 훨씬 아름답다. 뉴욕에 불이 켜지면, 그 시간이야 말로 여행자들이 상상하던 뉴욕다워지는 시간이다. 시끄러운 잡음들과 사이렌 소리,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에 위태롭게 서서 바라본 풍경. 뉴욕을 제대로 즐기려면 어둠이 깔려야 한다. 낮의 뉴욕도 좋지만, 밤의 뉴욕은 황홀하면서 동시에 쓸쓸하기도 하다. 밤은 뉴욕의 마법에 걸리기 딱 좋은 시간이다. 저 소란스러운 풍경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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