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는 책가게를 열고나서_07

봄이 좋냐? 봄이 너무 좋다!

by 조아라

#달집태우기

요천로에서 정월대보름 행사로 거대한 달집을 태운다고 하길래 지인과 연을 사고 종이에 소원을 적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저녁 8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은 달집 주변으로 몰렸고 불길은 삽시간에 뜨거워졌다. 가까이에 갈 수 없어 작은 돌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감아 불 속으로 던졌다. 연은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날리는 시늉만 했지만 ;;


불 속으로 들어간 소원은 사실 내가 나에게 거는 주문 같은 것이다. (타이핑하는 지금 또 잊지 말자 또 다짐!)

나의 건강과 재능이 헛되지 않도록. 내가 나를 잘 볼 수 있도록.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과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진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온전히 내가 나로 살 수 있도록 비나이다 비나이다 2018.3.2


#3월 여행 -서울과 보성-

3월 초 서울에 일을 하러 간 김에 북촌 드로잉 모임에 참여했다. 북촌 이곳저곳 숨어있는 이야기도 듣고 그림도 그리는 시간을 보냈다. 털썩 길에 앉아 몰입하며 그림을 그렸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며 상쾌함을 느꼈다. 북촌의 골목을 둘러보니 남원의 작은 골목이 생각났다. 남원 구도심 드로잉 모임을 한번 열어볼까나~


3월 중순에는 전라남도 보성에 다녀왔다. 남원에서 만난 지인이 보성으로 가서 빵 집을 준비하고 있어서 응원 차(?) 놀러갔다. 지인이 정성 담아 차린 신선한 해산물이 가득한 밥도 먹고 유유자적 갯벌도 걷고 오래된 골목의 멋진 공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즐거움 가득한 페이지를 만들고 남원으로 돌아오는 길, 주유소에서 본 이 표지판은 참... 욕나온다. 욕나와-


당장 교체 바람!!


#유리창 닦기

막내가 군대 휴가 중 남원에 왔다. 극진한 대접을 해드렸고(!) 그 보답으로 막내 동생은 가게 유리창들을 안팎으로 닦아주었다. 봄 되면 닦아야지, 닦아야지 벼르던 유리창 닦기를 키 큰 동생 덕에 수월히 끝낼 수 있었다. 전역 단디 하고 가을에 또 와주렴 히히히


고맙다


#1년 반만에 스케일링

남원에 명성이 자자한 치과가 있다. 그곳에서 스케일링을 하려고 2월에 예약 전화를 했더니 3월 중순에 시간이 빈다고 했다. (어랏, 그렇게까지!) 하지만 시간을 잘도 흘렀고 스케일링하는 날이 왔다. 심호흡을 하고 치과문을 열었다. 사람이 가득하다. 약속한 시간에 갔음에도 한참을 기다려 치료를 받았다. 의사와 간호사, 접수원 전부 뭔가 이전 치과와는 다른 느낌이다. 세 관계가 아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 꼼꼼하게 치아를 보고 진단한 의사 덕에 나는 앞으로 이곳을 자주 올 것 같다. ㅠㅠ


#봄은 봄이다.

3월이 되자마자 낮기온이 촤라락 오른다. 하 - 이 얼마나 기다렸던 봄이었나 말인가! 그리고 3월 말이 되니 남원 곳곳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봄을, 꽃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설렜다. 친구가 놀러온다고 한 주말에 행여 꽃이 안 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평일 저녁에 요천로로 가서 벚꽃의 상황을 살폈다. 친구가 오기 전날 밤 피기 시작한 걸 보고 마음이 놓였다.



#화기애애 독서모임

겨울에도 간간히 독서모임을 열었지만 신청자가 없어서 진행을 못했다. 모임을 만들 때 신청자가 없으면 여러 생각과 억측(?)이 떠오른다. 너무 추워서 그런가? 홍보를 더 해야 하나? 시간을 잘 못 정했나? 여기로 오고 싶지 않나? 독서모임에 관심이 없나? 등등 하지만 신청자가 몇 번 없었다고 모임을 안 만들기엔 아쉬웠다. 타이밍이 안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해볼 수 있는 데까지 모임을 열어야지 생각할 때, 마침 페미니즘 책으로 독서모임을 열자고 제안한 지인 덕에 후다닥 공지를 열었다. 하나 둘씩 신청자가 늘더니 모임날 큰 테이블이 꽉 찼다.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를 읽고 나눈 그 자리가 참 재밌었다. 그리고 난 그 시간부터 페알못에서 벗어났다. 꺄호!



#영업시간 고민

책가게 오픈하면서 일요일과 월요일을 정기휴무일로 정했는데 날이 따뜻해지면서 구도심 곳곳에도 사람의 발걸음이 제법 많아졌다. 날 좋은 주말에는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오기도 하고. (깜놀!) '어랏, 책가게에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토요일만 아니라 일요일도 열까?' 하는 생각을 시작으로 '주5일 영업할 게 아니라 주6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사람이 많은 곳에 프리마켓도 참여해볼까?' 라는 점점 무리한 생각까지. 아니다, 아니다. 나는 다 할 수 없다. 마음을 다시 잡는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할 때 알아차리는 것. 책가게를 준비할 때도 그렇고 오픈하고 운영하면서도 번번히 이렇게 조바심이 날 때 워-워- 진정시킨다. 이익을 내는 게 힘들지만 적어도 내가 볼 손해를 내가 선택할 것. 책가게 정기휴무는 주 이틀, 일요일과 월요일로 다시 정해본다.


#하루짜리 전시를 준비하다

이 건물은 100여년 된 옛 역무원 합숙소이다. 일제시대 때 만들어져 1999년까지 역무원들의 숙소 겸 연수원 공간으로 쓰임을 하고 그 후 2009년까지는 그곳에서 역무원의 밥을 해주는 분의 집으로 그 쓰임을 다 했다. 이후에 철도청에서 경매로 건물을 처분했고 지금은 사유지가 되었다.

'우와! 이런 건물이 왜 이곳에 있는 거야?' 하는 엄청난 임팩트가 있는 이 건물을 알게 된 건 페친을 통해서였다. 서울에서 한번 뵌 적 있는 분이었고 그 이후로는 페이스북으로 그 분의 일상을 보았는데 최근 남원시 구도심 공간을 아카이브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건물을 탐방하신 사진을 올린 걸 보고는 꼭 한번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페메로 연락을 드렸고 다음에 가게 되면 알려달라고 부탁드렸다. 얼마 후 합숙소에 간다고 하셔서 냉큼 따라가서 보았다. 공간의 이야기가 엄청났다. 일제시대, 한국전쟁 등 굵직한 근현대사적 일상을 담고 있었다.



낡았지만 대단해보였고, 비어있지만 가득한 느낌을 받았다. 헐린다고 하니 아깝다는 기분, 헐리기 전에 이 공간을 봐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여기서 뭔가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페친과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분이 책가게로 와서 헐리기 전에 이 공간을 기억하기 위한 기획전시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재밌을 것 같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할지는 대략난감.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다가 전시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도중에 문득 일과 공간이란 주제로 표현해보자 싶었다.


3월30일 전시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주. 공간을 청소하고 정비하고, 책가게 SNS에 홍보하고, 전시할 아이디어를 그려보고 만들었다. D-DAY 금요일, 오전부터 부랴부랴 짐 싣고 가서 손을 움직여 디스플레이를 완성했다.

예상보다 많은 시민이 와서 공간을 기억하고 간 덕분에 하루짜리 전시는 3일 간 전시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 공간을 헐리는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간-작품-사람이 연결되어 만든 힘, 그 시너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입병났다

어릴 때부터 피곤하면 입가에 벌겋게 여드름마냥 뭔가 난다. 가게 오픈하고 나서 비타민 B-C-D 를 보약처럼 매일 챙겨먹은 덕분에 요 몇개월간 조금 무리해도 안 난다 싶었는데 이런이런, 전시 준비에 가게 일에 신경을 너무 썼나보다. 3월 마지막 밤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입가에 쫘악- 윽... 오랜만에(?) 보기 싫은 내 얼굴이 되었네.



봄 기운 듬뿍 받은 한달, 꽃한테 고마움을 느낀 한달을 보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따스한 봄을 맞이한다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쁜 이 기분을 잘 기억해놔야지.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 봄을 충분히 즐기리라. 입병을 주의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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