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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Sep 06. 2018

나는 어느 가족인가

내가 되는 가족영화를 보고 나서

'어쩜 이리도 한결 같을까-'


보고 싶었던 영화 '어느 가족'을 보고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전 가족 영화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를 본 후 들었던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묘한 기쁨 같은 기분이 또 들었기 때문이다. 엔딩크레딧이 나올 때 인상깊었던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도 한결 같았다.


영화 어느 가족을 간추리면 이렇다.


직업은 일용직 건설노동자이나, 좀도둑 생활이 더 익숙한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세탁일을 하는 노부요(안도 사쿠라)가 이 영화에 나오는 가족의 부모를 자청한다. 하지만 이들도 법적으로 남남인 사이. 이 둘은 어느 주차장 차안에 방치되어 있는 아이를 데려다 쇼타라 이름 붙이고 좀도둑을 가르치며 키운다. 이들이 사는 집은 남편이 죽고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하츠에 할머니집. 하츠에 할머니에게는 남편의 전 부인 자식의 자식인 아키가 있다. 아키와 노부요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이 가족 안에서는 자매다. 이렇게 다섯이서 여느 가족처럼 밥 해먹고 이야기하고 치고 박고 싸우며 지내다 어느 가족에서 방치된 유리가 들어오며 새로운 가족생활이 시작된다.   



[일본판_예고편]


#01. 따뜻하면서도 우울하고, 기쁘면서도 슬픈  

내 세계에서는 만나기 힘든 면면을 마주하면서 애처로왔다. 버려진 아이 둘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아이를 따뜻한 마음으로 키우는 부모도 그렇고, 외로운 노년 생활에 가족을 만들어 사는 할머니도, 자신을 찾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며 몸을 파는 여자를 보면서 왜 그렇게 사는 걸까 하는 내 걱정이 그들에게 전혀 쓸모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영화는 허구였지만 내게는 허구가 아니었다. 분명 내 주변에도 있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하고 남을 영화였다. '과연 내 세계에 만날 수 없는 걸까, 만나기 싫은 게 아니고?' 하는 내 속마음을 바로 마주해야 한 영화였다. 그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슬픈 영화였다. 영화 속 가족은 행복한데 말이다.


#02. 릴리 프랭키 & 키키 키린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페르소나였다. 오사무 역의 릴리 프랭키와 하츠에 역의 키키 키린. 같은 감독의 이전 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자식과 친구처럼 지내는 장난기 많은 연기를 펼쳤던 릴리 프랭키가 내 눈에 들어왔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자식보다 아는 것은 없어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식에게 다 주려는 따뜻한 아버지의 연기를 담백하게 펼쳤다. 예술계 N잡러답게 자신을 표현하는 기술이 날로 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하츠에 역의 키키 키린은 여든이 넘어서 그런가, 영화 속 할머니 역을 본인이 다양하게 해석해서 표현하는 데 귀재다. 이번에는 평소 끼고 있던 틀니도 빼고 꾀가 많은 할머니 역을 표현했는데 그 모습이 재밌으면서도 아련했다. 그녀가 나왔던 영화 '앙: 단팥 인생이야기' 를 보며 어찌나 울었는지 모른다. 본인은 슬픈 연기를 하지 않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울게 하는 재주가 있는 연기자다.  


#03. 먹방 영화

영화에서 가족들은 모이기만 하면 먹고 또 먹었다. 식구(食口)라는 단어가 일본에도 있는 것일까. 문득 봉준호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용의자 박해일을 보며 '밥은 먹고 다니냐?'는 대사며 가족영화(?) '괴물' 마지막 장면 속 추운 겨울 집안에서 송강호와 아들이 밥을 먹는 장면처럼 먹고 산다는 절실함을 이 영화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계절마다 나오는 일본의 대표음식이 영화의 무게만큼 묵직하게 다가왔다.


#04 가깝고도 먼, 가족이라는 이름

어느 가족이나 희노애락의 스토리가 있을 터. 마냥 행복하기만 한 가족이 어디 있을까. 이 영화에서 속 가족이 오히려 지나치게 이상적일 수 있다. 불우한 환경이지만 타고난 따뜻함으로 뭉친 사람들이니까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테다. 이 이상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훔쳐보며 나의 가족과 그 안에서 나의 모습을 돌아보니 마음이 답답하기도, 후련하기도 그렇게 기분이 왔다갔다 하면서 본 영화. 그러게... 가족이란 뭘까?



남 보다 못한 가족이 많다고 해도 역시 남는 건 가족뿐이라 믿는 세상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던 믿어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관계를 찾았다면 노력은 그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으리라. 가족 '같이' 와 남 '보다' 의 차이는 내가 어떻게 관계를 대하냐와 무시무시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피는 물보다 당연히 진하고, 사람은 연결될수록 강할테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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