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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Oct 07. 2019

데칼코-마니 씁쓸하다

영화 [기생충] 리뷰  

검은 바탕에 깐느 영화제에서 최고되는(!) 월계수잎의 있어 보임을 느끼며(?) 영화 [기생충]을 아주 심혈을 기울여 보았다. 이야기는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시작되었을 때 코 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나왔다. 슬퍼서 흐른 건 아니었고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도 강렬히 느낀 씁쓸함이 눈물로 나온 것 같다. 게다가, 그 씁쓸함은 혀 끝에서도 느껴졌다.  


생계 수입원이 변변찮은 가족, 그러니까 사회복지가 필요한 가족인 아버지 기택, 어머니 충숙, 남매 기우 기정네가 살고 있는 동네가 있다. 연립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면도로에는 작은 소형차와 영업용 트럭이 무질서하게 주차되어 있고, 누군가는 사람냄새 나는 동네, 구도심 정취가 있는 동네라 사진찍어갈 그곳에서도 반지하 거실 창문을 훤히 까고 사는 기택 가족이 다른 동네로 일하러 가는 영화다. 그 다른 동네로 말할 것 같으면, 관리인이 붙어야만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주택이 아닌 저택이 모여있는 곳이다. 사람 냄새는 안 나지만 매우 고급스럽고 향기로운 돈 냄새로 관리될 것 같은 동네다. 큰 벽에 가려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주택 앞 도로에는 다양한 크기의 CCTV가 지나가는 행인을 감시하고 있고 이 동네 어느 2층집에서 박 사장, 부인의 자녀 고등학생과 어린 남자 아이 그리고 개 세마리가 살고 있다. 이 두 동네와 두 집안이 가정교사, 가정부, 자동차 기사 일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대화를 조명하는 이야기인 줄 알다가 또 다른 가족을 만나면서 영화는 하나의 장르를 뛰어넘는다.  





#데칼코마니 

나는 영화를 보자마자 데칼코마니가 떠올랐다. 영화 속 두 가족의 삶들이 왜 비슷하게 느껴졌을까? 


#계급 

나름 빈곤의 형태를 부단히 애쓰며 묘사한 것 같은데 조금 갸우뚱한 부분은, 반지하집에 있는 창은 실제 그곳에 사는 사람은 가리려 한다는 걸, 나의 가난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걸 간과한 건 아닐까 하는 부분이었다. 베란다 삼아 바라보며 고기를 즐겁게 구워먹을 수 있는 가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의 반지하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고 아무튼 영화 속 기정이 폭우로 역류하는 변기 위에 초연히 앉아 자신의 비밀박스를 꺼내는 장면이 왜 그렇게도 슬프던지, 지금 생각해도 코 끝이 찡하다. 


#기생충 

영화 제목이 영화를 분.명.히 말해준다. 기택네가 박사장네에 기생하는 거라고 보여지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물질적 숙주는 그러할지라고 결국 숙주는 기택네로부터 큰 영향을 받으니까. 물고 물리는 관계, 거기서 오는 복잡성 - 어느 하나의 이유만으로, 결과값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영화. 사람 사는 거, 거기서 거기라고 결코 간단히 말하지 말아야겠다.  


#연기력 

나는 단연 배우 이정은의 연기가 이 영화의 맥을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핫소스로 블랙코미디의 정점을 찍고 이제 '그 다음은?' 하고 묻는 관객의 기대에 200% 부흥하는 연기를 이정은이 만들어주었다. 디렉팅을 뛰어넘는 리얼리티를 갖고 있는 배우 이정은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은 영화였다. 꼭 주연으로 한자리 꿰차시길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화감독 봉준호 

배두나의 팬이라 보았던 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괴물', '설국열차', '마더', '옥자'까지 그의 필모를 어쩌다보니 따라갔다. 특히 괴물은 두 번이나 극장을 찾아 볼 정도로 재미있게 보았다. 봉준호 영화감독은 씨네필이고 싶은 내게 선생님 같은, 배우고 싶은 존재이다. 그의 행보를 계속 응원하고 싶고, 틈틈히 배우고 싶다. 

 

#여혐 코드 

영화를 보고 마음 속 가득 박수를 치고 나와 트위터를 뒤적이며 다른 감상평들을 보았는데 이 영화에서 여혐 코드를 발견한 분들의 글을 보게 되었다. 봉 감독의 영화에서 여자 캐릭터들을 돌이켜 보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봉준호 감독도 알아주면 좋겠다. 이 참에 새로운 영감을 받아 여성 버디 무비를 만들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보네. 여혐 코드로 말미암아 봉 감독님을 비난하는 트윗에 지금 한창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데 왜 찬물을 끼얹느냐는 식의 댓글, 대댓글을 다는 걸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뭘 그런 것까지 신경쓰며 영화를 보냐고 하지만 세상은, 사회는 뭘 그런 것까지 신경쓰는 것으로부터 변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나는 지나치게 예민하 지적에 냉소하지 않으리, 새로운 의견이라 생각하리라.  


#문화자본 그리고 조국 

이 영화의 열풍이 사그라들고 법무부장관인 조국 뉴스가 온갖 사회 이슈를 덮으며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회 인사의 딸이 받은 크고 작은 교육 혜택의 (확실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뉴스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나는 조국이 아닌 그 자식이 법무부장관 후보인가 헛갈릴 정도였다. 카더라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는 많은 뉴스들을 손 끝으로 확인하면서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그 자식이 잘못했다가 아니라 살고 있는 땅과 계급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이었기에 영화 기생충을 보고 느꼈던 코 끝과 혀 끝의 씁쓸함이 조국 뉴스를 보면서도 비스무리하게 느낀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뭐? 라고 내 안에서도 물을 수도 있겠다. 그게 그러니까 어떤 감각을 만들어주는 것 같은데 설명할 단어를 못 찾겠네. 



 

이 영화를 보고 친구와 나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영화 속 은유장치가 너무나도 많고 또 그걸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나의 영화로 가족, 사회, 계급,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다니! 좋은 시간을 이 영화 덕분에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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