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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Jul 09. 2022

외부인의 시선에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지방의 문화사회학

책 '복학왕의 사회학'을 읽고

지방과 서울이라는 이 분할에서 어떤 문화가 발견되는가를 참고하고 싶다면  책을 읽어야   같다. 대구라는 지역에 한정하여 청년들의 삶을 분석하지만 지방의 보편적인 문화로 확대 해석할  있는 저자의 고찰과 문화, 인류, 철학적 연구를 통해 '가족의, 가족을 위한, 가족의 의한 사회' 특성을 제시한다. 바로, 2018 내가 읽은   지적 호기심 세포가 톡톡 터지는, 임팩트가 컸던  복학왕의 사회학 :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최종렬 지음, 오월의 , 2018) 이다.  


대구에 있는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최종렬 교수가 쓴 이 책은 연구보고서이다. 2017년 2월 <한국사회학>에 실린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 분석>의 반향으로 추가 연구를 진행한 보고서이다. 400쪽이 넘지만 어렵지 않고, 웹툰 복학왕만큼이나 재밌다. 책 말미 에필로그에 나오는 사회철학자들의 연구로 학술적으로도 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공부가 된다.


2010년 이후 청년담론이 쏟아져 나왔지만 지방대생의 이야기는 단순하게 소비되고는 했다. 인구감소와 인서울 대학 집중으로 정원 미달, 폐교 위기인 지방대, 취업할 곳이 없는 지방대생들과 같은 헤드라인이 간간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지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저자는 지금까지 지방대생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며 그렇기에 지방대생은 소수자라 말한다. 그래서 그는 지방대생이 자신의 삶을 서사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고자 대구 경북에 있는 3개 대학에서 6명의 재학생, 17명의 졸업생 그리고 부모 세대 6명을 인터뷰하여 지방의 문화사회적 특징을 분석했다.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문화적 역량이 필요하다. 나는 그러한 역량이 사회학을 공부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다고 믿어왔다. 되도록 많은 사회학 이론을 가르쳤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해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의미 있게 구성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21p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가 없다고 해서 바로 소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하려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자신의 서사적 정체성을 보일 수 없는 사람이 진짜 소수자다. 나는 지방대생이 자신의 삶을 서사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35p)  

이렇게 인덱스 스티커를 많이 붙이기도 오랜만인 책이었다. 아마도 나 역시 지방에서 나고 자랐고, 지방에서 지방으로 옮겨 대학을 나왔지만 내 인생의 답은 서울에 있다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래, 맞아!' 하면서 저자가 분석하는 글에 공감을 많이 했다.


성실이란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주어진 매뉴얼대로 하는 것이다. 영혼 없이, 어차피 나는 노력해도 성취를 이룰 수 없으니 성실하게라도 임하자는 생각이 지방대생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23p)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간다. 좋은 삶에 대한 지향 없이 자아 형성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좋은 삶에 대한 가치이념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만약 가지고 있다면 이 가치이념을 통해 자신의 자아,  가족 집단, 친구 집단, 시장 사회, 시민사회, 국가, 민족, 세계, 우주. 초월적 존재 등과 관련해서 가치 연관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고 했다. (35-36p)


지방대생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을 분석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성찰적 겸연쩍음이다. 도전을 해도 실패가 보이는 것 같고, 나보다 공부를 좋아했다 생각하는 애들도 안되고, 솔직히 공부 그렇게 하는 애도 안되니 내가 할 자신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 같으니 해봤자 안 되는 느낌을 겸연쩍게 말하는 학생들에게서 저자는 지방대생의 실천적 자아 이미지는 아직도 가족과 친구 안에 머물러 있는 '가족적 자아'를 지닌 사람이라 정의한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직업을 구해 늦지 않게 결혼해서 아이 한 두 명 낳아 기르며 가족을 삶의 제1의 우선순위를 두며 사는 것이 '남들'처럼 사는 '평범'한 그런 삶이 아닐까 대답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청소년기와 20대 초반 대학생활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내가 친구들이나 대학 동기들한테 어떻게 살아야 나답게 사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남들처럼 사는 게 좋지 라는 얘기로 귀결되는 대화들 속에서 간간히 답답함을 느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고만고만하게, 좋은 게 좋은 거로 얘기되는 이야기들이 어쩌면 내가 서울로 가야 하는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서 내가 확인한 건 이 '남들과 평범' 주의는 기준의 차이는 있지만 지방, 서울을 구분 짓는 특징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편적인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처럼 하나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빨리빨리 살자? 흠.. 조금 무서운 이야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방에서 가족은 구성원들이 서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가 그저 평범한 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자녀 역시 부모가 자신의 꿈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뒷받침해주지 못할 거라는 걸 안다. 서로 기대를 낮춘다. 그러다 보니 말 그대로 평범한 존재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학과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가족 같은 작은 공동체를 구성해서 그 안에서만 논다. (217p)


이 책을 읽다 보니 나 역시 왜 그리 서울, 서울 했었을까 했던 이유는 그때의 내가 가진 문화적 역량 때문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청소년기 나에게 문화적 자극을 준 건 티비 속 연예인들이고 그 티비 속 연예인들은 서울에 있으니까. 유튜브 세상인 지금 내가 중학생이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부모가 더 많은 세상을 내게 보여주었다면 가능했을까? 하지만 나의 부모는 자식 세 명을 먹여 살리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삶을 사셨다. 저자가 인터뷰한 부모들의 이야기에서 나의 부모가 겹쳐 보였다. 대학 때 1년 휴학을 했었다. 해외로 가고 싶지는 않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 집에서 1년 머무르며 서울 생활을 해보았다. 그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카페 사장님을 보면서 그 분과 같은 나이었던 나의 아버지를 많이 생각했었다. 커피를 내려 주시며, 자신의 해왔던 일과 문화생활 이야기를 종종 다정하게 해 주었는데 나의 아버지로부터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는 대화라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는 한편으로, 나의 아버지가 조금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었고...     


지방대생 부모에게는 가부장적 핵가족이 규범적으로 막강하게 살아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구조적으로는 가부장적 핵가족을 실천하며 살아가기 힘들다. 가부장적 핵가족은 중산층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지방대생 부모는 결코 중산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핵가족에서 성별 노동 분업은 규범적으로 강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기 않다. 사실은 가모장의 절대적인 희생이 필요하다. 지방대생 부모는 특유의 성실주의 집단 스타일을 통해 가부장적 핵가족 규범을 실천한다. (344p)


잘 살고 싶다는 욕망, 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것은 지방대에서 인서울대로, 인서울대에서 아이비리그로 이어지는 서열에 따라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스펙을 수단으로 활용하여 얻는 상위의 목적을 계속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수정할 수도 있는 삶을 살아가는 주체성을 가지고 있냐는 말일 것이다. 자신이 가진 선천적인 기질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이 노력하면 바꿀 수 있는 성격이 무엇인지도 알면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 지를 아는 것.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느냐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일 테다. 그러면서 삶의 방식을 체득하면 위기나 실패를 겪어내는 힘을 만들어줄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 속에서 생기는 문화는 사회문화적 자본을 많이 만들어내고 느슨한 공동체 속에서 건강한 삶을 영유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런데 강한 가족주의는 이런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마이너스가 된다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냈다. 지방대생에게 최고의 가치는 가족의 행복이다. 현재는 부모에게 최대한 손 벌리지 않는 것이 가족의 행복을 구성하는 길이다. 앞으로는 어떻게든 평범한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다. 이러한 가치는 성찰적 겸연쩍음을 통한 방식으로 추구한다.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으로는 주변의 습속이 있다. 절대 목적 수단 범주를 통해 자기 계발에 나서지 않는다. 지방대생은 이러한 가족주의 코드를 특유의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로 실천한다. (36p)

이렇게 볼 때 지방대생은 김홍중의 생존주의 세대 코드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최고 가치는 생존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난다. 김홍중의 생존주의자에게 생존은 "경쟁에서 낙오되지 말자"는 것인 데 반해, 지방대생에게 생존은 "가족 안에 머물자"는 것을 뜻한다. 생존주의자는 낙오되지 않게 전력을 다해야 하지만, 지방대생에게 생존은 오히려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지금처럼 가족 안에 살면 되는 것이다. (56p)
정말 문제다. 지방의 열악한 삶은 단지 사회구조적 차원의 서울 중심주의만은 아니다. 문화적으로 보수주의적 가족주의 언어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문화적으로 보수주의적 가족주의 언어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요즈음 지방분권에 대한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정치경제적 자원의 재분배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가족이나 유사 가족 안에 갇혀 가족주의 언어 또는 기껏해야 지역주의 언어를 쓰는 가족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서는 결코 지방분권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도 지방인들은 가족 밖 너머의 이러한 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374-375p)


이 책의 저자는 10년 넘게 지방에서 살았지만 그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철저하게 외부자의 시선을 견지하며 지방대생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울과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계명대에 교수로 부임한 2005년 첫 해, 신입생 환영회에서 벌어지는 노골적인 성상품화(!) 같은 놀이 풍경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본인이 살았던 문화와 너무도 달랐기에 크게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 것 같다. 너무 측은하고 안타깝게 보며 고쳐야 한다고 서술하는 문단을 읽으면 지방 출신 독자로써 '겸연쩍기'도 하지만. 아마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연구가 후속으로도 나오길 바란다. 특히 경기도 대학생들의 이야기는 지방과 서울 그 가운데에서 어떤 기능을 할 것 같고,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문화를 종합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된다. 청년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깊게 할 수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심층적인 해석을 덧붙일 수 있고, 정확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지방대생과 그 부모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방에서 살았던 나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풀리기도 하고, 나의 부모도 더 이해하게 되었다. 직접 부모와 함께 대화를 해봐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나의 형제들과도. 가족으로써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개인 대 개인으로 얘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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