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라 Jul 07. 2022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달라는 말

내가 사랑하는 영화 이야기

도대체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2017년 개봉 후에 입소문을 타고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다는 것만 알았지 (폭풍의 여진이 2022년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인지는 모른 체, 2018년 9월 어느날 자기 전 누워서 넷플릭스를 탐험(!)하다가 만났다. 아뿔싸, 첫 장면부터 빠져서 끝날 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허우적 거리다 내리 세 번을 연속해서 보았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한 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득, 떠오르면 보는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aka. 콜바넴)'이다.  


https://youtu.be/Z9AYPxH5NTM


모든 장면이 찬란하다. 모든 음악이 아름답다. 그리고 모든 대사가 밝다. 이 영화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를 실제로 만나 이렇게 멋진 영화를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1983년, 이탈리아 크레마 근처 시골 마을에 있는 가족 별장에 여름 방학을 맞아 온 17살 엘리오의 강렬한 첫사랑 이야기로 줄거리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엘리오의 사랑을 너무도 찬란하고 아름답게 그려내어 두고두고 여운을 느끼게 만들었다.  


#엘리오, 엘리오, 오! 엘리오

 영화의 주인공 엘리오는  일곱살 독서와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다. 대학교수인 부모와의 지적 대화도 나누고,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어를 하는 언어능력자에다가, 술도, 담배도, 수영도 좋아하는 감수성 높은 소년. (참고로 이탈리아는  당시 17 이상부터 , 담배를 하는 것이 합법이라고 한다.) 그런 소년에게 올리버라는 아버지의 학문을 도와주러 미국에서 날아온 대학원생을 만나면서 그가 가진 감수성의 모든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그의 작은 터치에도 심장이 요동치고, 아버지와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기울이고, 그가 보이지 않으면 애타게 그를 찾고, 자신을 봐주지 않는 그가 원망스럽고.. 하지만 그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날아갈 듯 기뻐하고, 서로의 이름으로 서로를 불렀을 때는 황홀하기까지  엘리오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강렬한 부러움이었다. 본인을 하나의 온전한 우주 속 인격체로 대하는 부모와 지내는 것도, 방학  찾아갈  있는 살구나무 가득 열리는 수영장 있는 별장을 가진 것도, 음악을 들으면 악보에 음표를 적을  있는 능력도, 술먹고 흥겹게 같이   있는 친구들도, 그리고 다시   계절의 사랑을 나누는 모든 장면  엘리오가 부러웠다. 그리고 너무 사랑스럽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엘리오를 연기한 배우를 인터넷에 검색하며 자동적으로 배우 티모시 샬라메에 빠지게 된다.


음악 듣고, 책 읽고, 자전거 타고, 수영하는 너의 모든 모습을 좋아해!


누구나 청소년 때 한번쯤 꿈꿨던 일상을 사는 그 시절 엘리오를 연기한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 복숭아가 되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매튜 매커니히 아들 역으로 나와 열심히 연기했는데 편집이 너무 많이 되어 슬퍼했던 배우가 이제는 한국 기자들한테 손가락 하트를 요청받는 월드스타가 된 것이다.


#가족영화

이 영화가 수작인 퀴어영화로 분류되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이상적인 가족영화로 더 크게 분류하고 싶다. 엘리오의 멋진 세상을 만든 토대가 된 것은 그의 부모 덕분일 것이다. 엘리오가 사랑을 사랑으로 자신의 감정을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가 갖고 있는 가정환경 덕분이다. 영화 속 부모의 대화, 특히 아버지의 대사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영화 막바지, 엘리오가 올리버와의 이별 여행 후 돌아와 상심에 잠겼을 때 아버지가 그에게 해준 대사는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서 필사까지 했었더랬다. 실제로 이 대사로 성소수자들이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하기도 했는데,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말을 영화로나마 듣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적인 가족이지만, 어딘가에 분명 있을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절절한 첫사랑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특별함이, 멋짐이 배가 되었다.


#공간의 힘

영화 속 배경은 이탈리아 북부 크레마라는 지역이다. 실제 그 곳에서 많은 장면을 찍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감독의 집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영화를 위해 낡은 별장을 빌려 방, 욕실, 마당의 살구나무, 수영장까지 전체적으로 리모델링을 했는데 전과 후의 사진을 보니, 영화에서 모든 분야가 중요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미술감독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감독도 인테리어에 관심이 영화 작업을 쉴 때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도 활동한다고 하니 영화 속 장소나 공간, 조명에 얼마나 중점을 두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여름의 빛깔이 이리도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자동적으로 이 영화가 떠올려지고.


#각색의 힘   

로맨스 감수성이 얼마나 깊고 가득하면 이렇게 각색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원작인 '그 해 여름'도 찾아 읽었지만 감흥이 기대보다 낮았다. 영화를 먼저 보고 기대가 너무 커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번역의 문체가 내가 읽기 어려웠던 것일수도 있겠지만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문법으로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 각색의 힘이 영화가 개봉된 해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이유기도 할 것이다.  



너무도 완벽한 사랑와 주변인의 구도가 지나치게 환상적이어서 현실감은 없을지언정 본디 영화라는 게, 꿈이라는 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한번 아니 여러번 더 보게 되는 그런 영화. 멋지다 그 이상의 표현을 붙이고 싶은 이 영화 덕분에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달라는 말이 내게는 사랑을 대신할 가장 강렬한 말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2022년 6월 일하고 공부한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