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이월하지 않는 2월을 보냈다
#2월의 첫날
신기한 날이었다. 12시에 맞춰 책가게 오픈 후 공지 글을 SNS에 올리니 지난번 근처 중간지원조직과 약속한 간담회 형식의 미팅이 시작되었다. 사회 첫 출발학교라는 이름으로 남원시에 사는 20대, 사회초년생들 대상인 프로그램인데 이 날은 남원에 청년이 운영하는 공간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세 팀이 30분 간격으로 책가게를 방문했는데 중간중간 지인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세번째 미팅 때는 책가게에 처음 방문한 손님과도 함께 이야기하기도 했다. 마침 그 손님도 서울에서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청년이라며 나누는 이야기가 궁금했다며 각자가 처한 상황과 고민을 공유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우연의 시간이었기를... 세 번의 미팅이 끝나자마자 지인들이 시간차로 다녀가며 커피도 주고 생강청도 갖다주며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따금씩 손님도 계속 오셔서 책을 보고 사가셨다. 나는 미팅하랴, 응대하랴, 환대하랴 정신이 없었다. 기분 좋은 정신없음이랄까? ^^ 책가게에 이렇게 사람이 끊이지 않고 온 적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오후 5시가 넘을 즘 본래의(?) 한산함을 찾은 공간을 둘러보니 작년 11월의 어느 날 책가게에 방문하는 이 한 명 없었던 책가게에 놀러온 지인의 걱정어린 말이 생각났다. 정말 괜찮은 거냐고 거듭 물어봤었는데... 오늘 놀러왔었다면 그런 걱정 안 했을텐데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무튼, 2월의 첫 날은 참 신기한 날이었다.
#입춘방 그리고 달집태우기
2월 4일은 설명절 첫날이자 입춘이었다. 작년에 봄을 간절히 기다리며 쓴 입춘방을 올해 것으로 교체해줄 겸 오랜만에 붓을 잡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입춘도 2월 4일이었네!) 나만 적을 게 아니라 명절을 맞아 고향에 오거나 여행하는 분들이 책가게에 들렀다가 원하면 입춘방를 써볼 수 있게 이벤트로 준비했다. 책가게 SNS에 공지 글도 올리고 입춘방 뜻을 적은 테이블 위 작은 입간판도 만들고 문방사우를 놓으니 준비 끝. 설 명절 동안 지인도 와서 쓰고, 손님들도 간간히 써갔다. 붓을 들고 글자 하나 하나 조심스레 쓰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진심으로 나에게 남에게 '입춘대길 건양다경'하는 한 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2월 19일은 정월대보름. 남원 곳곳에 달집태우는 행사를 했다. 소도시에서 이런 전통행사는 무척 중요하다. 많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날이기 때문에 시장이나 시의원, 마을 단위의 청년, 부녀회 등이 총출동한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인사 말씀이 끝날 때즘 가는 걸 선호한다. (ㅋㅋ) 오전에 비가 왔지만 기름을 뿌린 나무는 잘 탔다. 함께 간 지인들 각자 소원을 적은 종이를 돌로 묶어서 활활 타오는 달집 속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던졌다. 부디 내 소원을 불님(!)이 보시겠지? 올해도 부디 무사히 즐겁게 보내게 해주소서!
#물 샌 벽 보수
1월에 책가게 안쪽 공간에 물이 샜었다. 그 후로 책가게 열 때마다 전기 히터랑 난로를 동시에 틀어서 벽을 말렸다.(전기요금 폭탄, 빵!) 말린 벽지에 얼룩이 생겨 집에 있는 벽지용 페인트를 가져와 칠했다. 사다리에서 오르락내리락 페인트붓으로 슥삭슥삭 벽을 칠하며 억울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다짐했다. 내가 건물주가 된다면 건물을 신경쓰는 건물주가 되리라... (ㅠㅠ)
#독서모임
2월의 책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였다. 실은 이 책의 원서를 몇 년 전 일본 여행 간 지인분께 사달라 부탁해 갖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에도 관심이 있고, 일본어 공부도 함께 될 것 같았지만 몇 쪽 읽지 못하고 책장에만 꽂혀있었다가 결국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한국어 책으로 열심히 읽었다. 그래도 원서가 무용지물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한국어판으로 읽으면서 일본어 문장을 찾아읽는 재미를 알았으니까. 헤헷
독서리뷰 #03.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이 책을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한 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미니멀리즘을 찾으며 집에 있는 물건을 버리니 행복한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자기계발 에세이다. 읽는 도중 저자가 사랑해마지 않는 한 기업가의 에피소드를 대입해서 물건 줄이기를 긍정하는 문단과 몇몇 인용구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책을 순식간에 읽는 사람이었나 라고 착각할 정도로 후다닥 책을 읽었다. 일본어 번역물에 익숙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책의 내용이 내가 지금 갈급하고 있는, 아마도 지금 내 안에서 비우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년 전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 ‘물건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 책은 환경운동가의 대기업, 대량 유통 시스템이 물건소비를 조장하여 인간들은 물건에 둘러쌓여 살게 되고 그로 인해 지구가 고생한다는 사회고발성 내용이 주된 맥락이었다면 이 책은 집 안의 많은 물건을 줄였더니 환경에 도움도 되고, 스트레스도 없어져 개인이 행복하게 되었다는 자기고백적 맥락이 주를 이룬다. 두 권 같이 읽으면 잠시동안은 필요한 물건일지라도 사기 망설여질 것 같긴 하다. 나는 해보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하는데 큰 방해요소가 없다면 서둘러 해보는 사람이라 이 책을 읽고 행동으로 옮겼다. 많은 옷과 그 옷이 담긴 수납장을,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니 기분이 홀가분하고 좋다. 조금 더 버려보고, 애초에 버릴 것을 들이지 않는 연습을 더 해보고 싶어졌다. 저자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란, 자신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소중한 것을 위해 줄이는 사람 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란, 나와 맞는 물건을 찾아가는 사람, 나를 위한 시간의 가치를 기꺼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10년 넘게 챙겨보면서 느꼈던 비슷한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가 있었는데, 특유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주의가 이 책에서도 중심 축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구조적 노력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미디어에서 그런 문제를 풀어가는 서사는 지극히 개인의 각성과 행동,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끼리의 연대에 무게중심이 크다. 정부나 사회의 각성을 외치기 보다 개인의 행동에 큰 초점을 맞추는 것일테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찾았고 시도해보니 내 생활이 행복하게 바뀌었으니, 여러분도 꼭 시도해보시길’ 이라는 일본식 자기계발 서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나도 그 서사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다만,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개인만이 조절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닐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풋살모임_팀명 고민
나의 일상에서 일요일은 풋살하는 날이라는 좋은 루틴이 자리잡았다. 처음 몇 주는 풋살하고 난 다음날 근육이 쑤셨는데 이제는 안 하면서 쑤실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어느날 쉬는 시간이었는지, 점심을 먹던 자리였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데 아무튼 임시 팀명이 구기종목 치고 너무 부드러운 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sunday morning 이라고 하면 어쩐지 일요일에 모여 브런치를 먹어야할 것 같은 한갓진 느낌이긴 하다, 그래도 팀명이 꼭 강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이름 자체로 괜찮은 것 같다 등 이야기를 하다 누군가가 선킥 sun-kick은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던졌는데 오홋, 괜찮은 것 같다. 선데이모닝, 선킥 - 나는 둘 다 괜찮은데 어쩌지... 급하게 정할 필요 있으랴- 좀 더 생각해보고 3월이나 4월에 투표로 결정해봐야겠다.
#공부모임_도공디공회
2월의 도공디공회는 책 '넥스토피아'로 두 차례 만나 공부했다. 내가 발제를 맡았기에 거듭 책을 읽었다. 좋은 글도 만났고, 건축물 비평은 이렇게 하는구나 라는 것도 알았다. 내가 상상했던 공간의 이미지를 누군가는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서 좋은 영감도 받았다. 관심있는 주제의 책을 매개 삼아 자료를 찾고 또 찾아 책의 내용을 보충하고, 안 나온 내용을 추가, 정리해 글로 적어 말로 전달한 시간, 무엇보다 내게 남는 공부였다.
#동절기 단축영업 끄읏!
2월 마지막날 영업을 마치는 동시에 두 차례 겨울방학과 한시간 일찍 닫던 동절기 단축영업 기간을 종료했다. 3월부터는 본래 내가 정한 화요일부터 토요일, 정오부터 저녁 8시까지 열어야 한다. 저녁 7시까지와 저녁 8시까지라는 한시간 차이를 크게 실감했던 기간이었다. 한시간 일찍 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다양한 요리도 해보고 뒹굴거리는 시간도 오래 갖는 등 나만의 여유시간을 한시간 이상 느낀 것 같았다. 내가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겨울이었다. 이번 겨울은 다행히 걱정한 것만큼 춥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난방값은 좀 덜 나오겠지 안도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벽에 물새는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벽 말리느라 전기요금 걱정은 줄지 않았다. (-_-) 책가게 열고 두번째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는데 뭐랄까, 조금 아련한 기분이다. 시간이 참 빨리도 잘도 간다.
#2월의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