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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Sep 08. 2022

나는 호흡한다 고로 여행한다

나의 첫 제주도 자전거 종주 일기

 어찌 보면 준비기간은 꽤 길었다. 자전거로 제주도를 돌면서 인적 없는 해변에서 수영도 하는 환상(!)적인 꿈을 꾼 마음의 준비 시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말이다. 그 꿈을 꾸게 된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5년은 더 된 지인들과의 수다에서 한 지인이 자신은 휴가 기간을 좀 길게 잡고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타며 수영도 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는 얘기가 내 환상의 시작임은 분명히 기억난다. 그 이후 '언젠가'라는 기약 없는 부사에 기대며 구체적인 결심의 마음을 점점 끌어올리고 있다가 작년, 브롬톤 자전거를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무려 내 첫 중고차 가격보다 비싼 자전거를 당근으로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올여름 나의 자전거로 제주도 종주를 하겠다는 구체적인 다짐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


결심이 빠른 실행이 되기까지에는 무엇보다 타이밍이 좋았다. 나는 직장생활도 쉬고 있고, 대학원은 방학이었으니 일정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고, 같이 갈 선생님이 직업인 친구도 여름 방학 때 보충수업이 없다고 하여 방학기간 서로의 일정 맞춰보고 교통편만 끊어놓으면 제주도 자전거 종주 준비의 90%는 확정된 셈이었다. 그래도 7,8월은 제주도를 찾는 사람이 많으니 6월에 교통편을 픽스해야 했다. 자전거로 제주도를 종주하는 기간은 4일, 차로 제주도를 여행하는 기간 3일을 잡아 총 6박 7일로 하고, 나는 내 자전거를 갖고 가고 친구는 제주도 자전거 렌탈샵에서 종주 기간에만 빌리기로 했다. 일단 빨리 가는 것은 비행기니 얼추 시간 맞춰 제주도 공항에서 볼까도 싶었지만 비행기 요금이 그 시기에는 너무 올라 있었다. 종주 기간에 짐을 맡길 곳도 필요하고 종주가 끝나고 차를 빌려 여행한다고 했을 때 제주도 렌터카 비용이 비싸져 차라리 차를 갖고 배편으로 간다는 기 경험자들의 글들을 보고 배편을 알아보았다. 올 5월에 진도항에서 첫 출항하는 산타모니카가 제주도까지 2시간이면 간다고 하여 마침 친구가 작년에 예약한 차를 올봄에 받아 번갈아 운전하면 되겠다 싶었다. 배편으로 가서 무료로 운영되는 공영주차장에 친구 차를 두고 그 차 안에 남은 짐을 두고 자전거 종주를 하면 될 것 같았다. 오호! 배 삯도 비행기, 차량 렌탈비를 합친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었다. 교통편은 배편으로 정했고 일정은 나와 친구의 일정이 아닌 배의 자리가 비어있는 날짜에 맞췄다. 7월 말에 가려고 보니 이미 만석이었고 8월 3일부터 예약이 가능해서 8월 3일 오전 8시 출항 편으로, 오는 것은 7일째인 9일로 예약을 완료했다. 산타모니카호의 요금표는 사람이 앉는 자리별로, 차량 배기량별로 달랐는데 약 50만 원 정도로 예약과 결제까지 하여 2022년 8월 3일-9일 제주도 일정을 최종 확정했다. 6월에 일정을 정하고 7월에는 이사한 친구 집에 가볼 겸 숙소 예약을 할 겸 친구 집에 가서 하루를 보내며 일사천리로 숙소들을 정했다. 자전거를 타는 키로수에 맞춰 지역을 보고 그 지역에 예약이 가능한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곳으로 잡았다. 모텔, 호텔, 게스트하우스 등 다양하게 잡았다. 친구나 나나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는 데 힘들어하지 않고, 이건 꼭 있어야 해, 꼭 없어야 해 하는 것들이 그다지 없어서 야놀자 앱으로 사진 보고 리뷰 서너 개 보며 오래 고민하지 않고 결정했다. 이로써 제주도 자전거 종주 준비의 99%가 되었다. 곱씹어 기록해보니 '가보고 싶다'라는 마음에서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기까지 고려하고 결정할 사항이 많다. 예상하고 이동하고 확인하고 물어보고 보고 또 보면서 나에게 맞는 게 뭔지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했기에 후회가 없다. 특히 이 일정은 정말 행운이었구나 싶어서 뿌듯하기까지 하다(^_^)  


제주도 일정은 8월 3일부터였지만 나는 8월 1일부터 시작했다. 친구와 친구 차가 있는 지역인 아산까지 서울에 있는 내가 가기로 했고, 8월 3일 제주도로 출항하는 시간은 오전 8시였기 때문에 아산에서 진도항까지 4시간을 잡으면 새벽 3시에는 출발해야 하지만 그렇게 무리한 밤 운전으로 제주도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타기에는 무리에 무리를 더하는 꼴이라서 이참에 안 가본 진도 여행을 1일 추가하기로 했다. 그래서 8월 2일 아침에 아산에서 진도를 출발하려면 여유 있게 8월 1일 내가 아산으로 기차 타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평일 퇴근시간에 용산역에서 아산역까지 무궁화호를 타는 거지만 자전거를 접고 타면 가능하다고 하여 기차 자리를 예약했다. 짐을 싸고 8월 1일 일찍 집을 나섰다. 기차 타기 전에 용산역 근처 브롬톤 매장에서 정비를 받기 위해서였다. 사고 정비를 한 번도 안 해서 바퀴에 바람은 넣었지만 혹시나 싶어서 가봤는데 매장에 손님이 꽤 대기를 하고 있었다. 스탭이 앞서 정비 중인 자전거가 있어서 바로는 안된다고 했다. 자전거를 맡기고 다 되면 연락을 주는데 하루 정도는 걸린다고 했다. 내가 상상한 계획과 달랐지만 빠르게 정비는 포기했다. 자전거 매장까지 짐을 싣고 자전거를 타고 왔을 때 별 문제는 없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고, 혹시나 종주 시 펑크가 나면 제주도에도 자전거 수리점은 있으니까 그때 고민하자 싶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용산역 도착.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 용산역 주변을 조금 배회하고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배회하면서 타피오카가 들어간 밀크티가 먹고 싶어 공차를 찾았는데 없어서 주변을 보는데 길가에 메가커피가 있길래 키오스크로 보니 버블티가 있었다. 자전거도 많이 탔으니 맛없진(?) 않겠다는 생각으로 주문하는데 옵션 중에 우유를 두유로 바꿀 수가 있어서 좀 놀랐다. 나는 여러 이유로 우유가 아닌 두유로 먹으려고 하는데 선택할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다. 그래서 여기도 당연히 없겠거니 생각했던 내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라 기억이 난다. 메가커피도 길거리에 많이 보이는 프랜차이즈 기업이니 소비자의 취향을 빠르게 반영할 수 있나 싶기도 하고... 암튼 여행길에는 여러모로 새로운 시각으로 익숙한 풍경을 보기도 하니, 음료 옵션을 바꿀 수 있는 것에도 새롭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버블티를 원샷한 후 무궁화호에 내 몸과 자전거를 실었다.


쓰고 보니, 여행의 시작은 한강이었다


밤 10시가 넘어 역에 내려 자전거를 타고 친구 집에 도착. 자전거에서 시작해 자전거로 끝난 하루를 보내고 8월 2일 진도로 출발했다. 육지 운전은 내가 하기로 하여 친구 차에게 잘 부탁한다고 인사도 했다. (애칭은 흰둥이다 ㅎㅎ)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충청도에서 전라남도로 가는 길, 휴게소에서 우동도 먹고 조금 쉬었다가, 남도의 평야를 보며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진도 도착. 마침, 구름이 좀 걷혀 날이 좋아져서 바다 수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샤워장, 화장실이 있는 해수욕장이 많지는 않았고 드문드문 있었는데 그중에 가계해변이라는 곳이 괜찮을 것 같아 그곳으로 갔다. 가족단위에 사람들이 꽤 있었고, 바닷물은 투명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깨끗했고 남해라서 그런가 짜지 않았다. 수면에 떠있는 해조류를 장난감 삼아 친구랑 바다수영을 즐기고 숙소로 갔다. 아침에 배를 타는 진도항 근처에는 숙박할 곳이 없어서 읍내를 알아보다 잡은 대동모텔. 사실 모텔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는데 읍내인데도 불구하고 선택 가능한 숙소가 별로 없었고, 나처럼 제주도로 자전거 종주 가는 사람이 깨끗하다고 남긴 리뷰에 결정한 숙소였다. 정말 리뷰대로 깔끔했고 읍내 중심부에 있어서 돌아다니기도 좋았다. 그래서 이 믿음으로(?) 같은 건물 2층에 대동다방도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 여유가 안되어 갈 수는 없었다. 숙소에서 쉬었다가 맛있는 고등어 김치찜을 저녁으로 먹고 읍내 구경도 잠시나마 하고 숙소로 돌아와 친구와 내일 일어날 시각을 정하고 (오전 6시) 일찍 잠에 들었다.


진도가는 길. 남도의 푸른 숲들이 멋있다.
바다수영 전용 앞머리라고나 할까...


8월 3일 진도항에서 제주항으로 가는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고 제일 먼저 밖의 날씨를 확인했는데 구름 조금의 날씨라 이만하면 자전거 타기에는 괜찮지 하는 안도감으로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8시에 출발하는 배라고 해도 차량을 선적하는 마감시간은 7시 20분까지라 조금 서둘러야 했다. 6시 30분에 숙소에서 나와 진도항까지 30분 정도 걸려 도착. 여유롭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랏, 배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몰라 비상등 키고 슬금슬금 가다가 바닥에 색칠이 여럿 그려진 라인 중 하나를 따라 대기를 했다. 제주라고 적혀있지 않아 뭔가 불안하던 차, 흰둥이 앞에 있는 차도 우리와 같은지 운전자가 내려서 여기저기 묻더니 라인에서 빠져나갔다. 친구가 차에서 내려 확인을 하니 불안함 예감이 맞았다. 아직 임시 항구라 그런지 작게 표시된 임시 간판을 제대로 못 보고 지나쳤던 것이었다. 그래도 친구가 차에서 내려 여기저기 물어보고 차를 뺄 수 있게 해 준 덕에 무사히 차를 빼고 제주도 가는 줄에 서서 산타모니카에 차를 실었다. 배 규모는 크지 않았고 차도 어림짐작 수십 대 정도 실을 수 있었는데 차를 싣고 빼는 순서가 흥미로웠다. 먼저 차를 실었다고 먼저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앞서 주차된 차량의 간격을 보면서 주차 지시를 해주었다. 차량 선적실에는 10명 정도의 남성들이 일사불란하게 차가 주차되는 즉시 바퀴마다 고정하는 줄을 걸었다. 수십대라고 해도 바퀴는 4개씩이니까 고정하고 풀 줄만 해도 꽤 될 터, 서로 손과 발이 맞는 것이 중요한 일처럼 보였다. 운전하면서도 배에 차량을 싣는 경험은 처음이라 그런지 무사히 주차하고 나오는데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타는 곳으로 올라가니 파리바게트가 한가운데 자리하며 맞이해주고 있었다. 8시 각종 안내 방송과 함께 배가 움직였고 그제야 유리창 너머로 배에 차를 싣느라 못 봤던 팽목항의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을 안 떠올릴 수 없었다. 부디 그곳에서는 편히 지내고 있기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제주도로 가는 바닷길, 추자도를 경유하길래 객실에서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추자도는 아주 작은 섬인데 옹기종기 마을이 귀엽게 모여있는 인상을 받았다. 사람보다 배가 많은 느낌이랄까. 낚시하러 사람들이 내린 거 보니 뭔가 포인트들이 많은 곳일 수도 있겠다. 섬에 작은 산이 있는데 등산로가 보였다. 지도 앱을 보니 폐교를 살려 캠핑장을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문득 낚시도 하고 캠핑도 하며 며칠을 보내면 재밌겠구나 싶었다. 또 그 언젠가 여기를 오게 될 수도 있으려나 ^^;  


알록달록 귀여운 추자도 전경

 추자도를 지나고 1시간 정도 지났으려나 드디어 제주항 도착! 선원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고 각종 안내방송이 나왔다. 차를 갖고 온 사람은 차량 선적실로 내려오라고 하여 친구와 나는 흰둥이에 타서 대기하다 선원이 주는 신호에 맞춰 배에서 나왔다. 우리를 맞이하는 이 날의 날씨가 가히 어메이징, 판타스틱 써머 페스티벌 느낌이었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나포함) 제주 도착을 기념하는 하늘 사진을 엄청 찍었다.


배에서 나와 제주의 첫 행선지는 친구가 예약해놓은 자전거가 있는 렌탈샵으로 향했다. 마침 근처에 무료 공영 주차장이 있어서 자전거 종주를 하는 동안 이곳에 주차를 해놓았다. 나는 자전거가 있었지만 친구와 렌탈샵에 같이 갔다. 친구의 자전거 조작법, 주행 시 주의사항이나 안전수칙을 함께 들었다. 스탭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자전거 잘 타는 사람도 안전장비 잘 안 갖추고 타다가 심하게 다치기도 하고, 우리처럼 종주를 하겠다고 이 쨍쨍한 날씨가 호기롭게 나갔다가 몇 시간도 안돼서 포기하고 오는 사람도 많다며 겁을 주는 것인지, 응원을 해주는 것인지 애매한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안전교육을 철저히(?) 받고 드디어 자전거 종주 준비가 끝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가 피부를 마주할 일 없게 중무장을 하고 짐 정리를 하고 자전거 바퀴 바람을 확인하고 자전거길을 확인했다. 자전거 렌탈샵은 제주시 시내에 있었고 그 기준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기로 했다. 첫째 날 숙소가 있는 모슬포항 근처까지 자전거로 61km. 오전 11시를 넘겨 4개의 페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주 환상 자전거 길이 드문드문 끊겨있기도, 상태가 안 좋은 구간도 있지만 그래도 여행자들이 많이 찾다 보니 나름 파란 라인 와 이정표는 찾기 쉬웠다. 그 길을 따라 제주 시내를 벗어나고 해변길로 접어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땡볕 아래에 자전거를 타니 땀이 엄청나게 났다. 비로소 종주를 하는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바다와 하늘의 풍경이 너무 멋져서 넋 놓고 페달을 밟았다. 첫 휴식에 장소인 편의점에 들러 챙겨간 텀블러에 든 물을 한숨에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바로 산 음료도 한 숨에 다 마시고. 경기도에 살다가 얼마 전 제주로 와서 편의점을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편의점 사장님은 이 날씨에 종주를 하는 우리를 신기하게 보시며 응원해주셨다. 종주 기간 종종 음식점에서도, 귤가게에서, 숙소에서 만난 분들이 응원해주셨는데 참 감사했다 *^^*

바닷길도 좋았고, 밭길도 좋았다.

첫 휴식이 끝나고 친구와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중간지점을 찾다가 협재에서 먹기로 했다. 식사는 친구와 그때그때 각자 검색해서 이거 어때, 저거 어때 하면서 정했다. 둘 다 무난하게 먹는 편이라 식성이 잘 맞았다. 점심시간이 지나 도착한 협재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차도 많아서 자전거 길은 무용지물. 요리조리 인도로 갔다가 도로로 갔다가 긴장 속에서 주행을 하다가 식당에 도착. 물회를 먹었는데 순식간에 내 위 속으로 들어갔다 ㅎㅎ 텀블러에 물을 채우고, 자전거를 정비하고 다시 출발, 판포포구에서 막간 다이빙을 즐겼다. 예전에 다른 친구와 흐린 날에 이곳에 왔을 때 적막한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다이빙 스팟으로 너무 유명해져서 그런가 깊은 물속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수영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친구는 조금 더 놀다 가겠다 하여 나 먼저 숙소로 출발했다. 오르락내리락 하염없이 자전거 길을 따라가다가 멋진 노을에 잠시 샛길로 빠졌다가 그렇게 3시간을 더 달려 숙소로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넘었다. 총 7시간 넘게 걸린 첫날의 라이딩에서 느낀 점은 내 자전거, 브롬톤은 오르막길에는 정말 아니구나 하는 점이다 ^^; 평지의 주행감은 좋은데 조금 경사가 있는 언덕에는 전혀 힘을 못 써서 그 덕(!)에 나의 허벅지 근육들이 들고일어날 수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무사히 첫날 라이딩을 마침에 안도하면서 기분 좋은 뻐근함을 느끼며 뒤늦게 온 친구와 첫 라이딩 수다를 떨고, 둘째 날 계획을 공유하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이 하늘들은 보며 달리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종주 기간 내 흡입한 음식들


둘째 날은 오전 9시 넘어 숙소에서 나와 근처 카페에서 맛있는 카페인과 당을 몸에 가득 채우고 출발했다. 모슬포항 부근부터 산방산을 지나 남원읍까지 가는 62km의 길이었는데 초반부터 오르막에 오르막이 계속되는 길에 숨이 가빴다.  오르막에 취약한 브롬톤을 끌고 계속 오르려니 극한의 체력을 시험하는 듯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자주 쉬었다. 그래서 큰 바퀴의 자전거를 빌린 친구가 앞서 가다 내가 안 보이면 기다려주었다. 함께 길가에 푸드덕 앉아 말없이 물 마시고 하늘을 보며 숨을 들이켜는 그 쉼의 순간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선명히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쉬고 달리기를 반복하며 수평선과 지평선을 보고, 오름과 산을 보고, 간간히 부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꼈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과 마을의 멋진 풍경에 압도됨을 느끼며 잠시 멈춰서 사진도 찍도 다시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저 멀리까지 어느 세월에 가지?'와 '벌써 이만큼이나 온 거야!' 하는 생각의 전환이 종주 내내 계속되었다. 힘든 운동을 힘든데 왜 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힘드니까 하는 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힘들면 아무 생각 없이 그 순간에만 몰입할 수 있으니까. 그 몰입은 내 안에 무기력을 없애고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양분이 되어준다. 다른 이유들도 많겠지만 난 이 이유가 가장 크고 좋다. 둘째 날도 바다수영을 안 할 수가 없는 날씨였기에 중문을 지나 바위틈에 만들어진 해수욕장인 황우지 선녀탕에서 많은 사람 틈에서 첨벙첨벙 다이빙도 하고 물고기도 구경하며 신나게 놀았다. 어느 해수욕장을 가던 사람이 많았는데 제주도 초성수기 시즌을 반짝이는 날씨와 즐기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터라 그것마저 내게는 드라마 속 풍경이었다. 수영으로 젖은 몸은 자전거를 조금만 타면 금세 말랐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둘째 날 목적지인 숙소에 도착하니 첫째 날처럼 해가 진 저녁에 도착했다. 씻고 나오니 이미 인근 대부분의 식당은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이틀째 편의점 간식거리로 저녁을 해결했다. 아무래도 셋째 날은 오늘보다 일찍 출발해서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서 저녁도 먹고 동네도 돌아보자며 친구와 다짐을 하며 잠에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셋째 날은 맛집, 빵집이 가득한 월정리로 향하기 때문이다.  


진심 퐁당 빠지고 싶었다


제주도 종주 셋째 날은 아침 8시에 출발했다. 남원읍에서 성산일출봉을 지나 월정리까지 62km가량. 첫째 날의 첫 장거리 주행의 힘듦과 둘째 날의 오르막 지옥에 이어 이날은 맞바람의 지옥이었다. 길은 한적하니 너무 좋았다. 나의 허벅지는 어느 정도 오르막에도 적응하고, 내 몸 모든 땀구멍에서 나오는 땀줄기도 적응하면서 자전거와 한 몸이 되어 앞을 보며 달렸다. 당근 재배가 한창인 시골 밭길로도 일부러(!) 방향을 틀어 탁 트인 구좌읍의 풍경을 한껏 보았다. 여기까지는 평화로운 라이딩이었고 성산일출봉에서부터 맞바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성산일출봉을 지나 월정리 가는 해안도로의 바람은 1km가 10km를 압축해놓은 것 같았다. 고지가 코 앞인데 마음처럼 갈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마음을 다독이며 틈틈이 심호흡하면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바다와 여름 구름을 보게 해 준 대신, 제게 맞바람을 준 것이겠지 하며 내 기분과 기분을 상쇄하며 달리니 월정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가 있는 때에 도착하여 제대로 된 첫 저녁식사를 맛있는 태국 식당에서 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솜땀과 공심채 볶음을 주문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친구도 태국 음식을 좋아하고 본인이 주문한 음식이 너무 맛있었기에 둘이 일심동체로 여긴 또 와야겠다고 계획(!)했다. 이렇게 저녁이 있는 종주의 하루를 마쳤다.  


구름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페달을 열심히 밟았던 것 같다


제주도 종주 마지막 날! 일출을 보러 월정리 해수욕장으로 나갔다. 수평선 위로 이글거리며 얼굴(!)을 내미는 태양께 무사히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게 해 달라 빌었다. 해변에 개장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은 일찍부터 나와 일하고 있었고 그 틈에 파도소리 들으며 일출의 윤슬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네 번째 완전 무장을 하고 빵집을 들러 맛난 빵과 커피를 먹고 김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마지막 날은 다른 날에 비해 달리는 거리가 짧아서 바다 수영을 여유 있게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친구와 상의해서 김녕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김녕 해수욕장은 예전에 왔을 때 지나가기만 했었는데 여름 성수기에 스노클링의 성지일 줄은 몰랐다. 방파제 근처 무리 지어 스노클링 강습을 받으며 눈에 보이는 신기한 물고기에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나와 친구도 완전무장을 해제하고 수영복을 입고 그 풍경 속에 뛰어들었다. 맑은 바닷물 속 니모 친구들이 내 수경 앞을 지나갔다. 깊이도 적당히 얕은데 있고, 또 크게 팔을 저으며 수영하기 좋게 깊은 곳도 있고 물과 하늘은 맑고 무엇보다 열대어들까지! 어린 시절 가족여행 포함 내 평생 바다수영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가졌다. 인류애와 물고기애가 합쳐져서 자연과학에 경이로움을 가졌다고 하면 조금 넘치는 표현인 것 같기는 하지만, 원래 첫 경험의 환희에는 경이로움이 따라오는 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



world peace and inner peace. binaida-binaida.
김녕해수욕장에서 바다수영 최고였다



이 즐거운 수영 뒤에는 강렬한 태닝이 따라왔다. 하루에 60킬로를 달렸지만 완전무장 덕분에 얼굴과 몸이 타지 않았던 나는 두 시간 남짓 김녕해수욕장에서의 경이로운 바다수영으로 수영복과 애플 워치가 가려준 곳 외 모든 피부가 초콜릿빛으로 변했다. 비건 선크림을 많이 발랐지만 자외선은 매우 강렬했나 보다. 작년 바다수영 때 탄 자국도 아직 남아있는데 이 역시 내년에도 남아있겠구나... 조금 따갑고 벗겨지긴 해도 이 또한 즐거운 여름의 증거라고 생각하자. 수영을 만끽한 후 다시 페달을 밟았다. 차르릉차르릉- 체인이 경쾌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제주도 시내로 달리는데 앞서 가는 친구가 도로가에 있는 귤가게에 들어가길래 나도 같이 들어갔다. 귤도 사고 본가에도 황금향을 보내는 효도를 시전한 친구를 보니 대견했다. (나는 둘째 날 도로가 귤 가게에서 효도를 시전함) 귤가게 사장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유라시아 바이크 여행기를 들려주면서 응원의 카라향 주스를 서비스로 주셨다. 정말, 세계 곳곳에는 나보다 앞선 선험자들이 많이 사신다. 겸손하게 살아야 할 이유다. 암 그렇고 말고. 사장님이 주신 카라향 주스는 그 어떤 과일주스에 비교할 수 없는 달콤 새콤 상콤의 콤보였다. 제주도 자전거 종주 마지막을 장식해주는 맛, 감사히 잘 마셨다. 카라향 주스 파워에 힘입어 제주 시내 자전거길을 따라 힘차게 주행했고, 초록빛이 반짝이는 벚나무 길을 따라 처음 자전거 종주를 시작한 곳으로 무사히 도착했다!! 친구 차, 흰둥이 앞에서 각자의 자전거와 함께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것으로 자전거 종주가 끝이 났다. 내가 자전거랑 짐들을 정리하는 동안 친구는 빌린 자전거를 반납 시간 내 갖다주고 왔다. 연신 우리가 완주를 하다니 대단하다, 뿌듯하다 하며 기쁨을 나누고 오랜만에 흑돼지를 구워 먹으며 제주도에서의 첫 자전거 종주를 마무리했다.



2022. 08. 03~06 3박 4일 간 제주도 자전거 종주 234km 완료. 나에게 박수 짝짝짝!


이번 제주 자전거 종주를 완주하는데 가장 큰 기쁨이자 고마웠던 것은 바로 눈앞에 펼쳐진 풍광, 이 풍광을 만들어준 날씨에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몇 차례 제주 여행을 왔을 때 이 정도로 체류 기간 내내 좋았던 적은 없었다. 날이 좋았다가도 비가 오거나 바람이 엄청 불어서 제주도는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구나를 몸소 깨달아서 사실 날씨 운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비가 조금만 와도 탈 수 있으니 많이 오래 내리지는 말기를 하는 기대 아닌 기대를 가졌었는데 일주일 내내 첫날의 어메이징 판타스틱 써머 페스티벌 느낌 그대로 이어주었다. (마지막 날 서울로 오는 길은 그야말로 대-폭우 속에서 몸과 마음이 홀딱 젖었지만 ;;)


지미봉 오름도 참 좋았다


일정 중 남은 3일 동안은 다랑쉬 오름에 올라 제주도 자연에 감탄하고, 특색 있고 개성 있는 공간들을 돌아보며 친구가 운전하는 흰둥이로 제주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우리가 자전거로 갔던 길을 지날 때는 다시금 감회에 젖기도 하였다.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기도 하면서 내가 지나온 길을 눈에 두고두고 담았다. 누가 알아주는 게 아닌 내가 아는 것이니 내가 남긴 흔적을 잘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앞으로 이리저리 헤매겠지만 지금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도 조금 얻었다. 함께 땀을 공유한(!) 친구에게도 무사히 완주한 기쁨을 나눌 수 있어서, 매번 앞서 나를 기다려주어 고마웠다. 이번 종주로 오랜 친구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몸은 힘들어도 끊임없이 실없는 농담 주고받으며 정말 많이 웃으면서 같이 다녔다. 이번 제주도 첫 자전거 종주는 이후 내 일상에서 이따금식 나의 뇌와 가슴에서 예고 없이 튀어나올 멋진 사진첩이 될 것이다.  



(끝)






*보너스 영상_자전거 탈 때 모르고 찍은 몰아치는 나의 숨소리와 심장소리. 생생한 이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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