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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Sep 14. 2022

2022년 8월 일하고 공부한 일기

나는야 도시 지역 공간 탐방가  

#제주 여행 

오랜 준비(?) 끝에 제주도를 자전거로 돌았다. 엄청난 행운의 종주 일기는 여기서 (요약: 나는 호흡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여행기) 확인해주시길.

격렬한 자전거 종주 후 여행은 다양한 지역과 공간을 돌아보며 제주를 만끽했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은 매력적인 섬이다 보니 하루에 세 곳 이상은 방문한 것 같은데 나는 주로 책과 빵, 커피를 검색해서 한정적인 시간을 활용했다. 빵집과 카페는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한국의 인구 대비 점포수로 보면 제주도가 1위가 아닐까 싶을 만큼 지도에 빼곡했다. 그래서 그런가 맛도 상향 평준화된 느낌, 어디를 가도 무난 이상으로 맛있었다. 그만큼 자영업이 치열한 것 같기도 하고. 


책방 투어는 총 세 곳을 방문했는데 첫 번째로 소규모 서점 오픈의 붐을 이끈(!) 종달리의 소심한 책방은 더 이상 소규모 서점이 아닌 확장 이전하여 종달리의 필수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인터뷰이로 참여한 책도 책장에 꽂혀 있어 반갑고 희망적인(?) 마음으로 책들이 있는 공간을 마음껏 보고 내가 읽고 싶은 책도 발견하여 책을 샀다. 두 번째로 들른 책방은 책약방이라는 무려 24시간 무인 책방이었다. 3명 들어가면 가득 찰 공간에 그림책들이 사람들의 눈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매 방법은 카드 결제기 옆에 안내되어 있었고, CCTV는 없는 진정 인간의 양심을 믿는 책방이었다. 구매한 영수증들이 창에 가득 붙여져 있는 장면이 인상적인 곳. 나도 덕분에 나무를 그린 그림책 한 권 샀다. 

세 번째는 송당리에 서실리 책방. 5평 남짓 공간에 인문, 사회, 예술 서적들이 자유롭게 꽂혀 있었다. 오랜만에 읽고 싶은 음악 서적을 사보았다. 이 책방이 검색되어 간 송당리는 여러 번 제주 여행에서도 못 가본 곳이었다. 목가적인 분위기에 있을 거 다 있는 (빵집, 카페, 책방 *^^*) 걷고 싶은 길이 쭉 이어진 동네라 내게는 참 좋은 곳이었다. 


책방을 돌아보며 다음 제주 여행에서는 도서관, 미술관들을 둘러보고 싶어졌다. 


종달리, 송당리는 6개월씩 1년 살아보고 싶은 동네 
월정리 태국식당에서 먹은 쏨땀과 공심채 못 잃어!
야자수 있는 절에서 world peace - inner peace - musahi 


#폭우 

제주 여행 마지막 밤, 숙소에서 티비 속 뉴스를 보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엄청난 폭우로 수도권이 난리가 난 것이다. 같은 시각 제주의 밤은 이렇게나 맑고 밝은데 다른 지역에서는 물난리가 나서 생사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니...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연 속에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이렇게, 많이 무력해진다. 복잡한 생각과 함께 서울로 돌아가는 날, 여러 변수를 떠올리며 어떻게 집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를 계속 시물레이션 했다. 배를 타고,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온 서울역에서의 풍경은 혼란스러웠다. 세차게 비는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비가 오고 있었고, 택시는 예상대로 없었고 자전거와 2개의 짐을 끌고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플랫폼까지 가기는 엄두가 안 나서 서울역 주차장에 있는 그린카를 빌려 집까지 운전하려는데 서울역에서 나오는 순간 비가 그야말로 쎄게 - 너무 쎄게 (세게로는 표현이 안된다) 내리는 것이다. 빌린 차의 와이퍼를 가장 세게 움직여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찰나의 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엑셀을 밟았다. 아주 살살, 비상등과 함께 핸들에 얼굴을 박고 앞 유리를 뚫어져라, 앞차 꽁무니만 좇아 가는데 손에 땀이 나고 목에서 등으로 땀이 흘렀다. 설상가상 차선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로에 물이 고였다. '살아서 집에 갈 수 있을까'라는 공포에 절은 생각과 '침착하자, 심호흡하자'를 수없이 되뇌며 사직터널을 통과하고 나오는데 하늘이 보우하사 비가 약하게 내려주었다. 비로소 앞이 보였고 천천히 운전하여 집까지 무사히 도착. 살았다... 


나의 운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이 날의 기억,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분리수거 잘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야지, 많이 걷고 자전거 많이 타야지, 비건을 계속 지향하고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지, 내가 살아갈 환경을 더 생각해야지 그런 다짐을 하고 또 했다.   


#영어시험 

폭우를 뚫고 집에 도착한 다음날 짐 정리를 하자마자 다가오는 대학원 영어 시험을 대비하고자 벼락공부를 쳤다. 제주 여행에서도 좀 신경이 쓰여 문제도 풀었지만 공부를 못한 죄책감을 조금 덜어줄 뿐이지, 시험을 제대로 보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학습량이었다. 그래도 시험료를 냈으니 내가 수업 듣고 공부한 만큼만 점수가 나오길 바랐는데 정말 딱 그만큼 나왔다. 학과에서 인정하는 졸업 인증 점수를 가까스로 넘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인가... 이를 교훈 삼아 이후엔 매일 10분이라도 알파벳을 보고 읽는 거다. 알았느냐, 나여!  


시험치고 나와서 본 사인물 - 교정을 걷다보면 종종 옛 간판을 발견한다. 보물찾는 기분


#풋살

모임에서 다른 팀과의 연습경기가 있다고 일정을 알려주었다. 경기를 뛸 수 있는 사람을 사전에 알아보았는데 나도 참여할 수 있는 날이 선뜻 손을 들었다. 모임 내 연습경기와 다르게 다른 레벨의 팀과의 경기라고 하니 신나고 설레고 긴장되고 불안하고 두렵고 재밌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며 한 주를 보낼 수 있었다. 잘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바람에 얼떨결에 첫 경기 수비수로 뛰었는데 너무너무 재밌었다. 심장이 쫄깃- 상대팀이 우리보다 잘하는 팀이구나를 같이 뛰면서 느꼈고, 그렇기에 배울 수 있었다. 비록 다섯 경기 내리 졌지만 아쉬운 마음은 적었고, 열심히 뛰고 응원하는 재미를 크게 느낀 날이었다. 풋살 모임의 감독님이 너무 진지하게 긴장을 하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심장이 터질 만큼 뛰면서 나오는 아드레날린을 느끼며 내 몸의 에너지를 다 쓴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마음으로 함께 뛴 멤버들과 처음으로 점심 회식을 가졌는데 맥주가 정말 달고 달았다. MBTI는 빠질 수 없는 술안주였고 아이스크림 먹으며 음악 얘기도 하며 즐거운 여름날을 보냈다. 따릉이 타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잠시 눕는다는 게 다음날까지 이어진 것은 그만큼 몸 에너지를 다 썼다는 거겠지... ^^;;   


여름 풋살 즐거웠다! 가을에도 화이팅 :) 



#공부모임_도공디공(aka. 도시, 공간, 디자인, 공부) 

이번 모임 지역은 대전. 지난달까지 이어진 도서관을 탐방하는 건 잠시 멈추고, 상반기 회고의 목적으로 모임 멤버들의 거주 지역인 서울, 남원의 중간 지점을 찾아 대전으로 잡았다. 시민들의 공유 정신을 함양하여 사회 활동을 도모하는 지원기관인 커먼즈필드 대전이 오픈했다길래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옛 우체국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아담한 공유 공간을 여럿 만들어 놓았다. 이 건물 뒤편에 넓은 광장 같은 주차장을 지나면 일제강점기에 충남도청으로 쓰인 건물도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이란 이름으로 구경할 수 있다. 분홍, 민트, 황금의 색깔이 묻은 내부의 모습이 아치형 기둥으로 예쁘기도 하고, 아직도 여러 공간은 행정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멋있게 느낄 수 있는 건물은 지금도 사용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유럽의 건물이 멋있고 역사가 있다고 느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다. 보호해야 하는 유적지라 울타리 쳐놓고 입장료 받고 구경시키는 절대적 보호를 위한 건축물이 다 개방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 사용하는 오랜 건물이 많아야 공간을, 건축을, 지역을, 도시를 보는 관점이 입체적으로 생겨 내 삶에 할 이야기가 풍성해지지 않을까. 내 삶에 이야기가 풍성하면 내가 있는 공간, 지역, 사회에 참여, 기여도도 높아질 것 같다. 내 이야기가 곧 나의 도시의 이야기가 되는 재미를 알아가는 것. 내가 이 공부모임을 계속하는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겠다. 


도공디공은 2018년에 만들어져서 횟수로 치면 벌써 5년 차 모임이다. 모임을 만들고 꽤 시간이 지났다. 오래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지나고 보니 벌써 이렇게 됐구나 하는 감각이 크다. 알아가는 책가게에 찾아온 손님과 인연이 되어 이 모임을 만들어 독서모임으로 시작했고 2019년에는 남원 곳곳을 돌아보며 몰랐던 소도시의 매력을 보는 방법을 찾았다. 2020년에는 그 매력 중 하나인 남원 시민들의 생활교통으로 자리 잡은 자전거를 좀 더 안전하고 즐겁게 타기 위한 도시 계획은 어땠으면 좋은지 탐구해보고 2021년은 남원뿐만 아니라 가보고 싶은 다른 지역의 돌아보고, 2022년에는 내가 살고 싶은 도시에서 필요한 공공기관인 도서관을 주제로 잡아 지역을 돌아보며 아카이브하고 있는데 이다음을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할지도 잠시 얘기를 나눴다. 사업을 해볼까,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지역으로 잡으면 좋을까, 수익은 필요할 것 같은데, 이대로 더 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해볼까, 멤버 구성과 역할분담은 어떻게 해야 하나 등 하나 쉬운 것 없는 질문에 뜬구름 잡는 얘기도 해보고 현실적으로 고민도 해보면서 상상을 해보았다. 계속할지 안 할지는 무엇보다 나에게 달려있겠지만. 아무튼 대전 구도심인 소제동 길가 힙한 카페에서 오래되지 않을 미래까지 얘기하면서 8월의 도공디공 모임을 마쳤다.   


누가 대전을 노잼도시라고 하는가! 잼잼 도시임 ^^


이렇게 8월은 이직 전 백수에게 선물 같은 여름방학이었다. 여행으로 시작해 익숙한 이들과 반가운 만남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여행으로 끝났다. 한 달 꽉 차게 즐거운 한편, 슬슬 이직과 책방 시즌 3 오픈을 준비할 생각에 나는 무슨 일을 새로이 해볼 것인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을 안 할 것인가, 세 번째 책방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머리 한편에서 계속 생각과 고민과 아이디어가 맴돌기도 했다. 9월은 맴돈 것들을 하나씩 꺼내 정리를 하고 선택을 해야지. 편한 티셔츠를 벗고 사각사각 소리나는 셔츠의 꺼내 첫 단추를 채우는 기분. 마침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9월에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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