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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Feb 11. 2023

2022년 12월 일하고 공부한 일기

아쉬움을 앞(!)으로 하고 2022년을 보내줍시다! 

#호캉스에서 공동육아체험장으로 

또 돌아왔다. 친구와 연말시즌에 1박 2일 호캉스를 떠나는 날이. 7년 전에 간 호텔을 매년 가는 중이다. 정해진 곳에, 갔던 시기에 맞춰, 갔던 사람과 함께하면서 한 해 잘 살았다 격려하면서 정해진 음식(회)을 먹는 것이다. 처음 갔을 때부터 매년 오는 거다 하면서 친구와 약속을 했었고, 나름 오래가는데 역사성이 생기는 것 같고 한 해를 잘 보내줄 수 있는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올해는 특별한 이가 동행을 했다. 바로, 친구의 아기. 환상을 품고 떠난 호캉스였지만 세 명이 함께 마주한 시간은 1시간은 되었을까, 번갈아가면서 반복된 일을 하기 바빴다. 분유를 타서 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재우는 일을 하는 가운데 나도 친구도 밥을 돌아가면서 먹고, 씻고, 잤다. 아기는 원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기의 시간에 모든 것을 맞춰야 했다. 특히 잠자리가 바뀌니 아기의 잠투정이 엄청났다. 어찌어찌 아이디어를 모아 내어 아기 침대가 아닌 더블침대를 붙여서 아기가 떨어지지 않게 안전장치를 한 후 눕히니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훌쩍 넘었다. 자는 둥 마는 중 온 신경은 아기에 둔 밤을 보내고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면서 이건 호캉스가 아니라 육아체험장이었다며 친구와 나도 허탈한 웃음을 지었지만, 그래도 친구 아이와 종종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자라는 어린이들과 재밌게 놀 수 있는 '긍정의 이모'적 모먼트를 내비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나는 고생을 자청하는 스타일이 분명하다. 


#구례 여행 

이번 구례 여행은 우연과 충동이 만난 결과였다. 책방 오픈 때부터 자주 오는 손님이 구례에도 나와 이름이 같은 친구가 아웃도어 편집샵을 만들었다고 소개해줘서 SNS계정을 보았는데 업로드된 사진들만 보아도 여행기와 여행력이 어마어마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벽 없이 자신이 가고자 하면 남극이라도 갈 것 같은 아우라를 느껴 한번 보고 싶었다. 남원에 도공디공 모임 일정으로 갈 일이 있으니 그 전날 구례를 갔다가 가는 것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다행히 눈 예보가 없어 지난달 산 중고차 마크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무려 5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구례 화엄사 자락에 핑크색 페인트 테두리의 문이 사진에서 봤던 그곳이구나 하여 반가웠다. 통성명을 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 나와 이름이 같은 아라님의 공간을 소재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아직도 내 이름이 종종 낯설고 나와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나에게 주는 이름도 딱 떠오르지 않아서 그저 별칭 같은 이름이라 쓰고 있는데 내가 만난 아라님은 그 이름과 잘 어울렸다. 조금 안도감을 느끼는 이상하지만 편안한 기분을 마주하고 아라님께 행운을 빌며 반가운 만남을 뒤로했다. 구례 읍내로 나가 아라님이 소개해준 비건 카레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는데 카레집 사장님은 내가 아는 분의 아는 분이셔서 인연의 연결이 기뻤다. ^^ 숙소 역시 아는 분이 좋았다고 알려준 곳으로 가서 주인분이 내려주시는 보이차로 차담도 나누며 따뜻한 겨울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길을 마주했다. 100미터 앞도 안 보이는데 차도 사람도 동물도 보이지 않아 이 세상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늑한 감성에 젖은 것도 잠시, 이 길을 운전해야 된다는 생각에 아득해졌지만 차도 사람도 거의 없어 안전하게 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안개 꿈속 같은 구례 여행이었네. 

 


#아침책방_알아가는 책가게 

올해 소설을 못 읽은 것 같아 대학원 도서관에서 장편 소설을 빌려 양귀자 작가의 [희망],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죄의 궤적 1,2]를 읽었다. 번갈아가면서 읽는데 두 작가의 문체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소 냉소적인 것도 닮았고, 심리 묘사가 꽤 자세한 것도 그렇고 각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 주변 인물을 설명하는 문체도 똑 부러지고 것이 닮았다. 아마도 그러니 내가 두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겠지.. ^^; 

아침 책방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청소를 하고, 커피를 내린 후 바로 보는 것은 조간신문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읽는 목적이 있는 만큼, 스트레이트 기사 보다 후반에 나오는 오피니언, 칼럼을 꼬박 읽으려고 한다.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두 신문을 번갈아 읽는데 중앙일보에 요청드리고 싶은 점이 있다. 오피니언 저자들의 세계를 확장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나이 든 이들의 가르치는 글도 한, 두 개쯤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아무튼 관점이 다른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경향신문 12월 20일 자 신주백 역사학자가 쓴 '군사유산으로서 일본군 시설의 역사성과 장소성'이라는 칼럼에 아래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장소는 과거의 경험과 그에 따른 의미가 누적된 공간이 놓이게 된 터를 말한다. 맥락이 있고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오호 - 책방이 있는 이 지하동굴도, 장소라고 하겠는데?! 



#대학원 생활 

시험을 치고, 과제를 제출하는 것으로 두 과목, 2학기가 끝났다. 성적도 무난하게 잘 받았다. 대면수업으로 강의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눈앞에 보이는 교수한테 질문도 하며, 사각사각 펜으로 다 같이 시험도 치면서 보냈다. 1학기 비대면 수업 때와 완전히 다른 그러나 나에게는 더 맞는 수업이었다. 랜선, 무선 보다 아무 선이 없는 공간에 같이 있는 것이 공부는 더 잘되는 것 같다. 마치 카페에서 긴장감을 갖고 일을 하면 더 잘되는 느낌과 비슷하려나. 아무쪼록 이번 연도에 배운 것들을 총 복습하는 시간을 방학 중에 꼭 마련해야지 라는 계획을 세우면서 이번 학기 때 세운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책방을 마치고 바로 학교로 가서 도서관을 자주 애용해야지!'라는 다짐의 이행률은 몇 번 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3학기에도 이 다짐을 유효하게 끌고 가야겠다. 다짐은 누적될수록 그중 하나가 실행될 확률이 높아진다. 내 경험치에서 나오는 정의다. 

그나저나 논문 주제는 어찌 정할 수 있으려나... 그전에 나는 어떤 것을 궁금해하는지, 어떤 주제에 관심이 가는지,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내가 하는 공부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저 공부하는 내가 좋은 건가? 여기에 먼저 답을 해야 되겠다. 


#동거 생활 

막내 동생이 나의 작은 집에서 잠시 같이 살기로 했다. 일을 찾는 동생에게 맞을 것 같은 직장의 채용공고를 알려줬고 동생이 한번 지원해 보겠다고 했는데 덜컥 된 것이다. 동생은 갑작스레 서울생활이 시작되었고 나는 동거 생활이 급 시작되었다. 둘째 동생과는 어릴 때 같이 살다가 거의 파국을 맞았었는데 이번 막내동생과는 어찌 되려나.. 그 어린 시절보다는 성숙해졌을까, 내가. 일단 계속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잠시라는 것에 희망의 여지를 두는 거다. 동생과도 동거생활의 룰이나 각자 어떻게 할지 얘기를 하다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대원칙 하나만 정했다. 그것은 좋은 것을 해주기보다 싫은 것을 안 하는 것으로 했다. 과연, 이번 동거인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까지는 티격태격, 하하호호 재밌네 ㅎㅎ 


#도공디공 모임활동 

구례를 짧게 여행하고 안개를 뚫고 도착한 곳은 남원 산내. 올해 도공디공 모임의 활동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어서 왔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임지원사업을 받은 덕분에 도시생활과 도서관의 관계, 도서관의 지역 사회의 역할을 면밀히, 즐겁게 돌아보며 공부할 수 있었다. 우리 모임 외에도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한 이야기도 듣고 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순희네흙집 사장님이 요리한 점심도 먹으면서 2022년 도공디공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잘해주셔서 감사하다. 들썩이라는 코워킹 공간도 아주 멋있게 만드셔서 이 공간에서 다 모여 인사를 나누며 행사를 마쳤다. 도공디공 멤버들 올해도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는 무엇을 공부할지 모르겠지만 즐겁게 나눕시다! 

 


#커피공부 

커피를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든 건 올여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옛날 옛적(!) 카페 알바를 1년 정도 하기도 했고, 매일 아침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기 시작한 건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금연, 금주는 해도 금커피는 절대 못하는 나의 마음가짐으로 커피는 내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고, 노후에 커피 내리는 할머니가 되어 카페를 해도 좋겠다는 막연한 연금 보장성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올해가 가기 2주 전에 집에서 가까운 커피 학원에 4주짜리 과정을 등록을 했다. 여러 가지 과정을 한꺼번에 등록시키려는 학원 직원의 영업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자격증을 목표로 하고 싶지 않았고, 에스프레소 머신과 우유 거품을 내는 스팀기와 친해지고 싶었다. 커피를 맛보는 미각과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실력을 키우는 것은 이 교육 후에 내가 그리고 내가 아닌 사람들에게 많이 만들어 맛보게 하고 좋은 평가가 쌓여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론 수업을 아주 간단히 가진 후 실습을 바로 진행했다. 에스프레소 머신 작동법이랑 청소하는 법을 알았다. 커피 기계들과 조금 친해지고 나니 이후에도 커피 공부는 스스로 꾸준히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커피 공부에 좋은 책을 샀다. ㅎㅎ 



#막간 내가 주는 2022년 어워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영화 [성덕] 여행 [제주도 자전거 종주] 책 [원미동 사람들] 음식 [내가 만든 그때그때 냉털 요리] 


크리스마스에는 친구와 설경을 품은 계룡산을 등산하고, 2022년의 마지막 밤은 가족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보냈다. 해야 할 일을 잘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지만, 나중에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미래의 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뭐, 괜찮다. 이만하게 보낸 것도 어디랴!  



(2023년에도 일기는 계속 써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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