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라 Feb 22. 2023

인생은 언제나 지금부터

2023년 1월 일하고 공부하고 활동한 일기

2023년은 2022년보다 덜 게으르게 한 달 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제목과 부제의 위치를 바꿔보고, 일하고 공부한 2022년에서 '활동하는' 나를 추가해야지. 활동의 의미는 차차 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터. 자, 그럼 다시 1월 시시시이이-작!


#본가에서 보낸 신정과 구정

가족은 가끔 봐야 애틋하다. 떨어져 살아야 가족의 고마움을 깊이 느낄 수 있다. 나와 가족의 관계성은 그렇기에 이번 신정과 구정을 같이 보낸 것은 내가 생각해도 의외의 (내) 결정이었다. 신정에 갔다면 구정엔 안 가고, 연말연시 안 가면 구정에 갔던 패턴을 꽤(10년 이상) 지키고 있었는데 이번은 예외로 하였다. 대신 가족 구성원이 5명이니 연휴 기간 내내 붙어 있지 말고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지내면서 한 두 번 식사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별 탈 없이(!) 담백하게 큰소리 없이 보냈다. 근처 강변을 아버지와 여동생과 같이 산책하면서 고니도 보고 (고니가 백조의 우리말임을 이때 알았다) 엄마와 여동생과 목욕탕을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고 삼 남매는 운전을 돌아가면서 맡아 협동의 귀성, 귀경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 설에 내려간 이유는 다리가 아파 5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의 퇴사를 축하하는 의미로 연필선인장을 선물로 드렸다. 직장에서 청소와 요리 업무를 하며 하루 종일 서서 일한 탓에 퇴근 후에는 목욕탕과 병원을 오가며 피로를 풀기 바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유보시켰다. 퇴사도 했으니 자신의 몸을 보살피며 그녀가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려보시길 바란다.

#더퍼스트 슬램덩크

나의 어머니는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특히 액션 영화. 화면 속 휘황찬란한 물건들이 깨지고 부서지는 장면을 통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신다. 또한 주인공이 끝까지 살아남아 악을 무찌르는 권선징악 스토리를 한결같이 좋아한다. 조금이라도 주인공이 죽을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안돼, 주인공을 죽이면 안 돼'라고 읊조리시고, 그 긴장감을 뚫고 주인공이 살았을 때는 '그렇지, 주인공은 죽지 않지. 그럼 그럼' 하는 안도의 말을 세트로 자주 내뱉으신다. 뻔하디 뻔한, 그녀 자신도 수도 없이 봤을 장면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받으시는가 보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하는 명절맞이 영화관 나들이는 나에게 있어서는 순전히 효도성 관람이다. 하지만 이번 구정 때는 효도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버리고 내가 보고 싶은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만화영화 [더퍼스트 슬램덩크]를 보자고 했다. 긴박한 농구 경기 장면을 분명 엄마도 좋아하리라 싶었고, 마침 여동생도 보고 싶다고 하여 세 모녀가 오랜만에 함께 극장에서, 그것도 만화를 보았다.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엄마도 재밌었다고, 만화가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얘기하여 나도 즐기고 효도도 실천한 자식이 되었다. ^하하^ 이번에는 더빙판으로 보았는데 자막판으로 한번 더 보고 싶다. 그리고 다시 또 농구를 하고 싶어졌다. 동네에서 여자 농구모임을 찾아봐야겠다.

만화책도 다시 보았다

만화영화에 딱 맞는 [더퍼스트 슬램덩크]를 본 나의 소감은 기대 이상으로 작화가 멋있었고, 캐릭터의 움직임이 3D로 구현되어서 그런가 굉장한 생동감을 보여주었다. 아는 내용이지만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스토리라인도 충분히 설득되며 화면에 쏙 빠져들었다. 중학교 때 비가 와도 농구를 하게 만들었던 만화의 추억을 나 역시 가지고 있었기에 인트로 때 두구둑둑 쾅쾅스러운 록음악을 배경으로 캐릭터들이 그려지며 나타나는 장면에서 소름이 확 돋았다. '그렇지, 이거지!' 하는, 과거에 딱히 영광스러운 시절을 보내지 않았지만 마치 영광이었을 것만 같은 순간으로 미화하며 소리치는 그런 외마디 두 마디를 나도 내뿜을 뻔했다. 기억에 남는 대사로는 경기 중 부상을 입었지만 경기에 나가고 싶어 하는 강백호를 영감님(감독 애칭)이 말리는데, 강백호가 영감님을 바라보며 '영감님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국가대표 때였나요?' 묻는다. 대답이 없는 영감님의 얼굴을 잠시, 뒤이은 장면에 백호 특유의 자신감 있는 얼굴이 가득 찬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저는 지금이에요!'라고 하는데 영감님은 더 이상 말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쏟아내는 다섯 명의 열정을 응축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언제나 나의 인생은 지금부터다.'라는 메시지가 나의 머리와 가슴에 남았다.


#커피 학원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샷을 내리는 연습을 계속하면서 우유 스팀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대학교 휴학시절 서울에서 클래식 카페에서 일할 때 우유스팀기의 무서움(!)을 맛보고 이후로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자연스럽게 우유거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전에 기계 소음에 긴장을 너무 했나보다. 스팀한 우유가 맛있다는 것도 해보니 알았다. 카페에서 스팀우유 메뉴를 보고 굳이 여기서 이걸 시켜먹는 이유가 있을까 했는데 그 이유를 알았다. 아주 고소하고 단백한 맛이 났다. 그럼에도 카페에서 시켜 먹지는 않겠지만..^^;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조합으로 여러 음료를 만들어보았다. 카푸치노와 카페라떼를 집중 연습했는데 비율을 응용하면 더 다양한 음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열 두번의 수업, 알차게 보냈다. 훗날 커피 내리는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맛은 괜찮았다...

#책 코스모스 그리고 아버지

1월은 거대한 벽돌책 코스모스를 완독 하였다. 자연과학의 입문서로 대표되는 이유를   있는 책이었다. 지구 45 년의 (?) 밝힌 고대 과학자들부터  지구가 지구가 되었는지, 우주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과학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인간은  인간인지, 미생물은  미생물인지  아주 꼼꼼하게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읽은 것으로는 그저 이해하는 느낌을 가진  같아 다음에    읽어야지 싶다. 1월에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2023년은 이미 뿌듯하다. 남은 11개월은 조금 대충 살아도 되겠다 생각될 정도로 나에게 엄청난 지적 충만감을 안겨준 책이다. 질서, 코스모스의 의미를  인생에도 충분히 대입시키며 나의 우주를 나의 사회관계를 통해 만들어가야지.


 책이 본가에도 있었는데, 구정  아빠한테 읽어보았냐 물었는데   전에  번이나 읽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셨다.  속에 꽂혀있는 아빠의 필기체로 책의 내용이 메모된 종이를 보니  때문인지  끝이 찡해졌다. 20 초부터 38년을 섬유화학 공장에서 일한  잠시 쉬었다가 지금은 고층 주상복합 건물의 경비일을 하는 나의 아버지. 쉬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세계 여행 다큐 채널을 보며 티비  여행으로 여가를 보내는 나의 아버지. 자신이 꾸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에 충실한 생을 여전히 보내고 계신다. 나의 아버지도  코스모스의 저자  세이건처럼 밤하늘의  있는 별들을 보며 우주를 궁금해하고 과학사를 스스로 공부하셨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짠하다는 측은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재수 끝에 취업을 선택하지 않고 대학을 갔다면 아빠의 인생이 지금과 달라졌을까? 그랬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겠지만... 아빠의 과거를   있는 시간 여행도 조만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코스모스를 같이 읽은 동지로써 아빠에게 빚을  기분이다.  

#목포

본가에 가는 구정 전 주에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과 고양이들이 있는 사회적 관계의 고향 방문(?)으로 목포여행을 짧게 다녀왔다. 같이 밥을 먹고 동네 구경을 하고, 소소한 유머를 나누며 그동안 못 내뱉은 큰 숨을 쉬고 왔다. 동네 구경 중 바닷속에 가라앉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무역선을 1970년대 신안군 어부가 발견해서 그 배와 배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전시한 박물관을 같이 갔었는데 오랫동안 바닷속에 있었어도 배조각에서 향나무 냄새가 났다. 이렇게 가끔 동네 구경도, 밥도 같이 먹으면서 이들 곁에서 살아보고 싶다. 나의 다음 지역살이는 목포가 유력하다. (현재까지)  

목포에 사는 쩜이 또 만나러 갈게!

#아침책방_알아가는책가게

조간신문과 코스모스 읽기의 반복으로 1월의 아침을 가득 채웠다. 격렬히 추운 날은 나가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나갔다. 함께 읽는 '조아서' 북클럽 멤버들과 난로 곁에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눈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멤버 중 한 분은 2023년도 달력을 손수 그려서 만들어주셨는데 그림 중에 책가게 입구도 그려주셨다. 다정한 마음을 주고받은 1월의 지하동굴 아침생활, 뜻깊다.

난방비 폭탄에 깜짝 놀라며 전신운동인 버피 챌린지를 다시 해야겠다 움직인 1월, 인생은 언제나 지금부터다.


(2월에도 계속)  




작가의 이전글 2022년 12월 일하고 공부한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