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일하고 공부하고 활동한 일기
#아픔과 죽음
2월 2일. 슬픈 소식이 왔다.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한 동료가 돌아가셨다고, 무빈소 화장식이라 조문은 어렵다는 메시지를 받고 한동안 같은 글자를 계속 읽고 또 읽었다. 함께 일할 때 같이 많이 웃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1년 전인가 암투병 중이라는 얘기도 듣고, 그 소식 이후 완치되었다는 근황도 들었었다. '다행이다' 생각하고는 이내 거기까지,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가 남원에 책방을 시작했을 때 그 분은 용기내어 와주셨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네. 나, 못났다. 장례식장은 없지만 화장터는 가야겠다 싶어 내게 소식을 전해준 동료에게 함께 가겠냐 물어 같이 그 분을 보낸 연기라도 추모하기로 했다. 발인 이후 간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화장터 주차장에는 대형 장례 버스를 비롯해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가신 길 혼자는 아니셨겠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그마저도 살아있는 이의 제멋대로 추측이겠지. 아무튼, 직원에게 물어물어 화장터를 찾아 이미 떠난 동료를 향해 인사를 했다. 잘 가시길, 남아있는 가족 걱정은 많이 하지 마시길... 아니다, 내가 뭐라고 그런 바람을 빌까.. 그저 함께 한 인연 감사하다고, 가신 그 길 평안하시길...
#사소한 인터뷰
카톡으로 비보를 받은 2월 2일, 나의 메일함에는 또 다른 전 직장 동료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자신이 인터뷰어로 활동하는 모임에서 '퇴사'라는 주제로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2일 이후에 메일을 읽어 보낸 날짜를 몰랐다가 지금 이 일기를 쓰면서 알았다. 흠.. 2월 2일 내 주변으로 무슨 기운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인터뷰 이야기로 돌아가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파트너십으로 일했던 동료가 정성으로 작성하여 요청한 인터뷰라 기꺼이 하겠다 답변을 보냈다. 퇴사와 관련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버렸네 -_-;; 잘 정리해준 메이에게 고마운 마음. 혹시나 내가 한 (두서없지만 메이가 잘 정리해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읽어주시길!
https://m.blog.naver.com/talktalktv/223028061319
#알아가는 책가게
이번달 지하동굴에는 기념할 만한 날이 종종 있었다. 공간에 있는 책상 5개(큰 테이블 포함ㅎㅎ)에 독서인으로 가득 찬 날도 있었고, 북클럼 멤버의 반려견 바다도 처음 만났다. 14일 발렌타인데이를 명분으로 인생 첫 바크 초콜릿을 만들어 나눠먹기도 하고, 2월 책거리를 멤버들과 기념하기 위해 채식 스프를 해먹기도 했다. 2009년 친구에게 선물받은 책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를 드디어, 여기서 완독했다. 왜 유시민이 작가인지 또 알았고, 경제를 보는 눈을 확실히 키운 한 달이었다.
2월이 끝나갈 즈음 날씨도 점점 따뜻해져 등유 난로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이번 겨울에도 따뜻하게 공간을 데워준 난로가 고마웠다. 온기 뿐만 아니라 요리도 가능하게 해주었다. 나는야 난로 요리사! ㅎㅎ 다음 겨울에는 이 난로를 쓰지 않을 것 같아 연희동에 채식 식당을 준비하는 북클럽 멤버에게 난로가 필요하면 주겠다 했고, 필요할 것 같다 하여 선물로 드렸다.
#도공디공
올해는 어떤 주제로 공부를 해볼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충청남도 공주시에 모였다. 모임 이름에 공이 두 번이나 들어가서 공주를 간 건 아니었다(??) 순전히 내 기호로 의견을 내어 모였는데, 작년 친구와 아주 잠깐 여행삼아 들렀던 공주의 구도심 분위기가 좋아서 또 가고 싶어서였다. 다시 간 공주를 멤버들과 돌아보며 올해는 '건물을 알아가는 17가지 방법'을 주제로 정했다. 길이 마음에 든다는 것은 그 길에 세워진 건물과 거리에 심미안이 끌리는 것일테다. 왜 내 눈에 그 건물이 들어오는지, 그런 인상적인 건물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건물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주변의 분위기와 맞아서 내게 좋은 건물로 보여지는지, 그렇다면 좋은 건물로 보여지는 주변의 구성 요소는 무엇인지, 그런 좋은 건물은 어떻게 짓고 살 수 있는지 등 마지막 궁금증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두루두루 건축물을 알아보는 다양한 방법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도시-공간-디자인-공부, 올해도 재밌겠다 :)
#재-취업
몇 번의 '재'를 붙여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달 동안 알아본 취업 활동의 마침표를 찍었다. 결과는 2월 중순에 나왔는데, 일정 조율을 통해 3월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나의 관심분야, 적성, 학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는 기대도 있지만, 지금까지 다녔던 직장 출퇴근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게 될 것 같아 다른 의미로 기대가 크다. 과연 나는 그 직장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 나는 또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내가 기대한 것들과 다른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 명심하자.
#크고 하얀, 태백산
2016년 1월 한라산 눈꽃 등산 이후 오랜만에 홀로 등산 여행을 떠났다. 이 2월 달력 그림에 끌려 태백산으로 정했다. 눈꽃 트래킹으로 유명해 예전부터 알았는데 갈 계기가 없다가 순간 떠올라 봄이 오기 전 가야지 계획을 세웠다. 내가 가기 전날 눈은 왔지만 날이 따뜻해 기대했던 설산의 풍광은 못봤지만 청명 그 자체인 하늘과 바람 덕분에 상쾌한 미니 눈꽃 등산을 하였다. 언 길이 많아 아이젠은 필수였지만 생각보다 오르막 길도 적었고 비교적 순탄하게, 예상보다 빨리 하산할 수 있었다. 내 걸음이 빠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산을 내려와 태백역 근처 산책하며 들른 도서관에서 읽은 소설 '순례주택' 도 기억에 남는다.
부드러운 겨울산의 능선과 나무, 눈을 원없이 보며, 새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에 집중한 덕분에 내가 보낸 슬픈 이번 겨울을 밝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부고를 듣고, 튀르키예-시리아 지원물품을 보내고, 아침 책과 신문을 보러 지하동굴로 가고, 저녁 슬로우버피와 다리 찢기를 매일 한 2월
짧고 슬픈 달을 보냈다.
(3월에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