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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Mar 31. 2023

짧고 슬픈 달

2023년 2월 일하고 공부하고 활동한 일기


#아픔과 죽음

2월 2일. 슬픈 소식이 왔다.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한 동료가 돌아가셨다고, 무빈소 화장식이라 조문은 어렵다는 메시지를 받고 한동안 같은 글자를 계속 읽고 또 읽었다. 함께 일할 때 같이 많이 웃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1년 전인가 암투병 중이라는 얘기도 듣고, 그 소식 이후 완치되었다는 근황도 들었었다. '다행이다' 생각하고는 이내 거기까지,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가 남원에 책방을 시작했을 때 그 분은 용기내어 와주셨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네. 나, 못났다. 장례식장은 없지만 화장터는 가야겠다 싶어 내게 소식을 전해준 동료에게 함께 가겠냐 물어 같이 그 분을 보낸 연기라도 추모하기로 했다. 발인 이후 간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화장터 주차장에는 대형 장례 버스를 비롯해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가신 길 혼자는 아니셨겠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그마저도 살아있는 이의 제멋대로 추측이겠지. 아무튼, 직원에게 물어물어 화장터를 찾아 이미 떠난 동료를 향해 인사를 했다. 잘 가시길, 남아있는 가족 걱정은 많이 하지 마시길... 아니다, 내가 뭐라고 그런 바람을 빌까.. 그저 함께 한 인연 감사하다고, 가신 그 길 평안하시길...


#사소한 인터뷰  

카톡으로 비보를 받은 2월 2일, 나의 메일함에는 또 다른 전 직장 동료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자신이 인터뷰어로 활동하는 모임에서 '퇴사'라는 주제로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2일 이후에 메일을 읽어 보낸 날짜를 몰랐다가 지금 이 일기를 쓰면서 알았다. 흠.. 2월 2일 내 주변으로 무슨 기운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인터뷰 이야기로 돌아가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파트너십으로 일했던 동료가 정성으로 작성하여 요청한 인터뷰라 기꺼이 하겠다 답변을 보냈다. 퇴사와 관련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버렸네 -_-;; 잘 정리해준 메이에게 고마운 마음. 혹시나 내가 한 (두서없지만 메이가 잘 정리해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읽어주시길!


https://m.blog.naver.com/talktalktv/223028061319


#알아가는 책가게

이번달 지하동굴에는 기념할 만한 날이 종종 있었다. 공간에 있는 책상 5개(큰 테이블 포함ㅎㅎ)에 독서인으로 가득 찬 날도 있었고, 북클럼 멤버의 반려견 바다도 처음 만났다. 14일 발렌타인데이를 명분으로 인생 첫 바크 초콜릿을 만들어 나눠먹기도 하고, 2월 책거리를 멤버들과 기념하기 위해 채식 스프를 해먹기도 했다. 2009년 친구에게 선물받은 책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를 드디어, 여기서 완독했다. 왜 유시민이 작가인지 또 알았고, 경제를 보는 눈을 확실히 키운 한 달이었다.    

2월이 끝나갈 즈음 날씨도 점점 따뜻해져 등유 난로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이번 겨울에도 따뜻하게 공간을 데워준 난로가 고마웠다. 온기 뿐만 아니라 요리도 가능하게 해주었다. 나는야 난로 요리사! ㅎㅎ 다음 겨울에는 이 난로를 쓰지 않을 것 같아 연희동에 채식 식당을 준비하는 북클럽 멤버에게 난로가 필요하면 주겠다 했고, 필요할 것 같다 하여 선물로 드렸다.


#도공디공

올해는 어떤 주제로 공부를 해볼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충청남도 공주시에 모였다. 모임 이름에 공이 두 번이나 들어가서 공주를 간 건 아니었다(??) 순전히 내 기호로 의견을 내어 모였는데, 작년 친구와 아주 잠깐 여행삼아 들렀던 공주의 구도심 분위기가 좋아서 또 가고 싶어서였다. 다시 간 공주를 멤버들과 돌아보며 올해는 '건물을 알아가는 17가지 방법'을 주제로 정했다. 길이 마음에 든다는 것은 그 길에 세워진 건물과 거리에 심미안이 끌리는 것일테다. 왜 내 눈에 그 건물이 들어오는지, 그런 인상적인 건물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건물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주변의 분위기와 맞아서 내게 좋은 건물로 보여지는지, 그렇다면 좋은 건물로 보여지는 주변의 구성 요소는 무엇인지, 그런 좋은 건물은 어떻게 짓고 살 수 있는지 등 마지막 궁금증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두루두루 건축물을 알아보는 다양한 방법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고양이는 총 몇 마리일까요?


도시-공간-디자인-공부, 올해도 재밌겠다 :)


#재-취업

몇 번의 '재'를 붙여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달 동안 알아본 취업 활동의 마침표를 찍었다. 결과는 2월 중순에 나왔는데, 일정 조율을 통해 3월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나의 관심분야, 적성, 학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는 기대도 있지만, 지금까지 다녔던 직장 출퇴근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게 될 것 같아 다른 의미로 기대가 크다. 과연 나는 그 직장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 나는 또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내가 기대한 것들과 다른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 명심하자.


#크고 하얀, 태백산

2016 1 한라산 눈꽃 등산 이후 오랜만에 홀로 등산 여행을 떠났다.  2 달력 그림에 끌려 태백산으로 정했다. 눈꽃 트래킹으로 유명해 예전부터 알았는데  계기가 없다가 순간 떠올라 봄이 오기  가야지 계획을 세웠다. 내가 가기 전날 눈은 왔지만 날이 따뜻해 기대했던 설산의 풍광은 못봤지만 청명  자체인 하늘과 바람 덕분에 상쾌한 미니 눈꽃 등산을 하였다.  길이 많아 아이젠은 필수였지만 생각보다 오르막 길도 적었고 비교적 순탄하게, 예상보다 빨리 하산할  있었다.  걸음이 빠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산을 내려와 태백역 근처 산책하며 들른 도서관에서 읽은 소설 '순례주택'  기억에 남는다.

이 2월의 그림 덕에 태백산을 갔지!


부드러운 겨울산의 능선과 나무, 눈을 원없이 보며, 새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에 집중한 덕분에 내가 보낸 슬픈 이번 겨울을 밝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부고를 듣고, 튀르키예-시리아 지원물품을 보내고, 아침 책과 신문을 보러 지하동굴로 가고, 저녁 슬로우버피와 다리 찢기를 매일 한 2월

짧고 슬픈 달을 보냈다.


(3월에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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