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상차림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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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면 빠질 수 없는 메뉴가 탕국이고 육전일텐데, 올 설에는 탕국끓이기를 생략하였다.
처음에는 시도해볼 요량으로 쿠*을 뒤지고 다녔다. 우선 오징어 값에 너무 놀라 다른 해산물들을 장바구니에 담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탕국이라고 끓여두면 남편도 아들아이도 잘 먹는데, 후루룩 쩝쩝 그들이 맛있게 탕국을 먹는 모습을 보면 내가 행복한데, 그래서 명절이 돌아오면 커다란 곰솥에 끓여두곤 하였는데, 올 설에는 할 수가 없다.
수입이 가난하니 당연히 참고 지나가야할 일들도 많은 법이다.
육전은 명절이라고 집에 자러오는 딸 아이를 위한 특식이다. 육전을 너무 좋아하니 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쿠*에서 홍두깨살 육전용 400g을 \14,400(원)에 구입하였다. 육전 21장 분량이다.
태어나 두번째 만들어보는 육전이다. 아프기전까지는 별로 음식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일을 하고 있었고, 음식을 만드는 일에 그렇게 재미를 붙이지도 못하였다. 쌀과 김치와 제철재료로 만들어진 반찬들은 시골에서 끊임없이 도착하였다. 친정어머니 음식 만드는 솜씨는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으므로 나는 일 핑계를 대고, 하지 못한다 게으름을 부리며 엄마반찬을 가족들에게 먹이며 주부 노릇을 했었다.
시어머니와 오랜세월 함께 살았다. 명절이 돌아오면 어머니 솜씨가 온 집안을 가득 메웠다. 마침 명절 차례도 모시고 있었으므로 차레에 올리는 모든 음식을 어머니 혼자 감당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끼어들 자리는 별로 없었다.
그렇게 저렇게 시어머니가 끓여주신 국에 밥을 말아 친정엄마 김장김치를 얹어먹으며 우리는 자라고 살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아프면서, 우리집에는 라면 냄새가 오래오래 진동하였다.
하루들이 더해가면서 손가락 뼈마디마디, 등 뼈들은 여전히 아프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손수 음식을 만든다.
언제 죽을지 알수 없어 한끼라도 더 후루룩 쩝쩝 그들이 먹어대는 모습들을 보고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지난번 육전에는 밑간이 되어 있지 않았어요. 육전 위에 홍고추로 장식을 하면 예쁠 것 같아요. 육전을 찍어먹을 양념장도 만들어 주세요." 하나 고객의 요구가 참 까다롭기만 하다.
가뜩이나 해본적 없는 육전인데 고객클레임이 저리도 벅차니 육전을 밑간하려는 손부터 더디기 시작한다.
우리들 두분 어머니도 나와 같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음식이 짤까 싱거울까 차가울까 뜨거울까 노심초사하시며 음식 하나하나를 만들어 우리를 먹이셨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젓가락 툭툭 튕겨가며 먹어댄 나의 지난 시간들을 어찌할까 싶다.
2박3일 꿈같은 시간을 함께 하고 딸 아이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명절 식탁위 풍경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생선, 전, 산적등으로 푸짐하게 채워진 명절 식탁위에 저마다 먹고 싶은 것을 해달라 말해준다.
딸 아이 육전이 그러하고, 아들아이 베이컨 햄 말이가 그러하고 남편의 푸짐한 마음 삼겹한판이 그러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는 그들의 후루룩 쩝쩝 표정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잘 만들었군. 안도하고
5일간의 명절연휴가 끝이 났다. 예전 회사에 다닐때는 나도 사람인지라 연휴 마지막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쉬워 하곤 하였는데, 이튿날 회사에 출근하고 보면 다시금 나름 열심히 일을 해보려 애쓰곤 했었다.
차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작업복에 맞춰 직업인이 되곤 하였는데, 이제는 더이상 그럴 수가 없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통신판매업 신고를 오늘 하려고 한다.
면허세 \40,500(원)이 부족해서 미루었는데, 쿠*, 올*** 등 플랫폼 입점하는데 제약이 따른다. 여전히 아직도 첫매출이 발생하지 않는데 플랫폼 입점마저 제한적이라 과감하게 -40,500(원)을 더 추가하자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