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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연맨 Mar 20. 2024

우울의 끝

가끔은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갑티슈 속 휴지가 나보다 더 생동감 있어 보일 때가 있다.


가슴 어딘가가 무너진 천장에 짓눌리는 기분으로, 코로는 도저히 숨을 들이쉬지도 내쉬지도 못할 만큼 울고 나면, 그런 날을 하루, 일주일, 한 달 가까이 겪어내다 보면 그 끝은 늘 “내가 졌소. 세상 네가 이겼네.” 라며 두 손 두 발 다 든 내가 되어있다.


다음 날 거울 앞에서 본 내 모습은 한 장의 종이 같다. 누군가가 힘껏 구겼다가, 손으로 폈다가, 물에 푹 적셨다가, 말린 그런 누런 종이.


어젯밤엔 내가 살아갈 이유란 무엇일까 고민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 그뿐인데, 사랑 없는 내 미래를 그려보니 한 개도 기대가 안되더라.


그러고 나니 다 하기 싫었다.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아름다운 끝일까 고민했다. 허공에 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편지도 읊조렸다. 더 울고 싶지 않은데, 목과 입술은 바싹 말라 몸에 더 나올 물이 있을까 싶은데도 희한하게 눈물은 난다.


그렇게 눈은 퉁퉁 붓고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르니 문득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작가는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좋은 글감이 생겼다고, 고통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 얼마나 자조적이겠냐마는, 이 시점에서야 내가 글을 쓰는 걸 보니 그 마음을 알 것 도 같다.


무교인 내가 힘들 때 신을 찾는 것처럼, 이젠 글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글에 전하고자 하는 바나 멋들어진 철학이 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고통, 내 시선, 내 마음이 기록으로 남고 자조적일지언정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우울의 끝에서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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