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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연맨 Apr 11. 2024

불안형 애착-3. 내면양육자

제시카 바움의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를 읽고

치유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이제 자신이 더는 ‘불안형’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애착 유형 가운데 ‘획득된 안정형’이라고 불리는 유형에 속하게 되는 거죠. ‘획득’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내면의 안정은 어린 시절 양육자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된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손에 넣는 것입니다.
제시카 바움,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


제시카 바움은 ‘내면양육자의 내면화‘라는 치유과정을 통해 모든 불안정 애착유형이 안정형 애착유형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안정 애착유형을 가진 어른들이 노력을 통해 안정형 애착유형으로 거듭나게 되면 이를 ‘획득된 안정형‘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내면양육자란 실제로 어린 시절 나를 양육을 해준 대상(부모)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다양한 인연 중 나에게 사랑을 비롯한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대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늘 나를 응원해 주는 가까운 친구들, 내 마음을 알아주었던 선생님, 언제나 따스한 품으로 안아주는 할머니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나와 같은 경우는 내면양육자를 떠올리라는 말에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들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친구들’만’ 떠올랐다. 어린 시절 친구라는 존재로 인해 겪었던 고통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친구라는 존재가 나에게는 늘 믿음을 주고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연이 끊기지 않은 두 명의 친구들을 비롯해, 대학 이후부터 만난 친구들,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까지. 내가 나만의 입장에서 온갖 문제로 힘들어할 때, 그들은 늘 나와 같은 선에 서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건네주었다. 그들은 곧 내 삶의 버팀목이었다.


내면양육자는 이처럼 나에게 따뜻하고 충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당연히, 모든 순간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에서 이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기만 해도 충분하다. 이들을 내면화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그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을 한 장의 사진처럼 이미지화해서 늘 내 안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꼈던 장소에서 나에게 사랑과 지지를 느끼게 해 주었던 사람과 함께 있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내면양육자의 내면화에 한걸음 가까워진 것이다.


내가 힘들어할 때 기꺼이 달려와 나를 안아줬던 친구들, 내면의 어둠 속에서 홀로 가라앉고 있을 때 들여다봐주고 꺼내주려 노력했던 친구들, 내 고통에 기꺼이 함께 울어준 친구들.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 일어날 힘을 얻는 기분이 든다. 그들이 내게 표현해 준 애정, 웃음, 관심들은 내 자신이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느끼게 해 주며, 언제나 지지받고 있고 혼자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되어준다.


올라오는 해묵은 감정에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치유에 접어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는 그 상처의 뿌리를 이해하고 더는 예전처럼 절박하게 자신을 방어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시카 바움,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


내면양육자의 내면화는 분명 하루아침에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느리더라도 반드시 나 자신에 대한 존중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의 상처를 내가 들여다봐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타인 또한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으로 봐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타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줄 수 있는 능력은 불안에 휩싸인 내가 방어기제를 뻗기 전에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을 멈출 일시정지 버튼 역할을 해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라는 영국 드라마가 생각났다. 주인공인 레이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와의 교류가 끊어지면서 낮아진 자존감과 불안증세로 폭식을 멈추지 못하는 인물이다. 급기야 자해까지 하게 되어 결국 정신병원에도 입원하게 되는데, 퇴원 후에는 캐스터라는 심리 상담가와 주기적으로 상담을 갖게 된다. 하루는 상담 시간에 레이가 자신의 주변 상황이 망가진 것에 대해 계속 자기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을 한다. 이때 캐스터가 레이에게 했던 말이 참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대화를 소개하며 글을 줄이겠다.


“전 정말 끔찍한 사람이에요, 선생님.”

“왜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제가 다가가려고 하는 곳마다 모든 게 망가져요. 그리고 제가 그것을 바로 잡으려 하면 할수록 더 악화되기만 해요.”

“네가 다른 사람들을 바로 잡을 수는 없단다. 너 자신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는걸요. 왜냐면 저는 미쳤으니까요. 저도 제 자신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해 왔어요.”

“넌 미치지 않았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너 자신에게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노력했다고? 그런데 넌 방금 네가 얼마나 끔찍한 사람인지 말하고 있잖아. 넌 너 주변의 사람과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을 항상 너 자신을 싫어할 근거로 삼으려고 하잖아.”


“눈을 감아봐. 너 자신이 왜 싫은지 얘기해 봐. 화내지 말고 솔직하게.”

“난 뚱뚱해요. 그리고 못생겼죠. 그리고 항상 일을 망쳐요.”

“언제부터 그렇게 느끼게 된 건지 생각해 봐라.”

“모르겠어요. 한 9살이나 10살 즈음?“

“그러면 그런 생각들은 정말 오래전부터 만들어졌던 거구나. 이제 눈을 떠보거라.“


“10살 정도 된 너를 상상해 봐라. 바로 저 소파에 앉아있는 모습을. 그 어린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뚱뚱하고 창피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기 앉아있는 그 애를 지금 당장 상상하도록 해. 저 어린애에게 뚱뚱하다고 말해봐라.”

“전 못해요.”

”저 어린애에게 못생겼다고 말해봐라.“

”하고 싶지 않아요.”

“저 애한테 넌 수치스럽고 가치 없고 쓸모없다고 말해봐라. 바로 그게 네가 매일 같이 하는 말이야. 네가 너 자신을 수치스럽고 짐짝 같다고 설득하잖아. 그럼 저 애가 못생겼니?”

“아니요.”

“아니라고? 그럼 뚱뚱하니?”

“아니요.“

”아니라고? 그럼 창피하니? 끔찍하고 쓸모없어?“

”제발 그만해요!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그럼 저 어린애에게 뭐라고 해주고 싶으냐? 만약 저 애가 어떻게 자신을 느끼는지 말한다면 뭐라고 해줄래?”

“완벽해요.“


“네가 불안과 공포를 느낄 때마다 네 자신을 달래야 한다. 네가 저 어린애를 달랬던 것처럼. 알겠니?“

“알겠어요.”

“너 자신에게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말해줘야 한다. 네가 그러길 약속한다면 내가 보증하마. 넌 어떤 것과도 맞닥뜨릴 수 있을 거다.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해. 모든 걸 지금 바로 시작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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