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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Feb 29. 2024

아무리 잘 지내기만 하는 사람 같아 보여도

까짓 분유 뚜껑 때문에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그만의 고충과 외로움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다 그렇다. 나만 괴로운 건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삶은 고통이고 윤회는 업보를 청산하는 일이고 덕을 쌓으면 소멸하는 거겠지.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게 축복인 거지. 마음 한 톨 어지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보살일 거야. 그리고 항상 물건과 욕심을 버리고 비우면서도 보살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버릴 수가 없다. 요 며칠 깔깔대면서 함께 점심을 먹는 스스로와 사무실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다. 단순하고 싶으면 단순하면 되고, 누군가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다면 그를 해결하면 되는 건데, 해결이 안 되면 놓으면 되는 건데 늘 욕심 때문에 괴롭다.


어릴 때 아기였던 동생이 비디오테이프 재생 기기에 손을 넣은 채로 빼지 못하고 집이 떠나가라 울어서, 난생처음으로 119를 불러본 적이 있다. 비탈이 심하고 폭이 좁아 옆이 바로 낭떠러지인 길을 119는 커다란 소방차를 끌고 올라왔고, 전문 장비를 이용해 비디오 기기를 부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 관리 소방대원들은 동생을 타일러 손을 펴게 만들어서 동생의 손을 빼냈다. 알고 보니 기기 어느 부분에 손이 끼인 게 아니라 테이프를 넣는 입구에 들어간 분유 뚜껑을 동생이 꼬옥 잡고 주먹을 쥐고 있어서 납작한 입구를 통해서는 손이 빠져나오지 못했던 거였다. 그럴 수가 있나 황망했다. 까짓 분유 뚜껑 때문에, 그렇지만 그 시절의 아기에겐 더없이 소중했을 분유 뚜껑 때문에 주먹을 꼭 쥐고 있던 그 모습이 몇십 년이 지나도 종종 떠오른다. 아무래도 내가 분유 뚜껑을 꼭 쥐고 있는 모양인가 싶을 때마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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