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복숭아

by 아영

"넌 물복파야, 딱복파야?"

여름이면 유행처럼 듣는 질문이다. 물기가 많아 부드러운 복숭아를 좋아하는지, 아삭하게 씹히는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대답하고 나면 그에 따른 분파가 나뉘어 장난과 과장이 곁들여진 논쟁을 나누게 된다. 이 복숭아를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복숭아는 당연히 물복(또는 딱복)이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들의 흥미를 끄는 대답을 해줄 수가 없다. 뚜렷한 취향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재미를 위해 빈말을 하기도 싫기 때문이다.

"나는... 달기만 하면 다 좋아."

여느 때의 나처럼 맹숭맹숭한 대답을 내놓고 나면 다들 김이 빠져서 나머지 사람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한다.

그게 내 문제라면 문제다. 어쩌면 사실 큰 문제다. 뚜렷한 취향이 없다는 것. 유별나게 좋아하는 게 없다는 것.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두루뭉술하게 살아가는 삶. 치열했던 입시와 취업 준비 시기를 거쳐 직장도, 집도 그럭저럭 되는대로 해내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직장에는 흥미가 없고 그렇다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튜브를 전전하며 대학원이나 기술직이나 전문직을 알아보다가 이내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그런 마음에서 오는 자괴감으로 또 밤늦게야 잠이 든다. 그래도.


"너 복숭아 좋아하잖아."

"내가?"

놀러 온다면서 갑자기 케이크를 사들고 온 친구는 뿌듯한 얼굴로 말한다.

"응, 너 복숭아 좋아한대서 시즌 한정판 케이크를 일부러 공수해 왔다고?"

내가 대체 언제 그런 말을 했을까. '달기만 하면 다 좋다'고 했던 말이 복숭아를 무지 좋아하는 것처럼 들렸을까. 물복이나 딱복을 구별해서 좋아하진 않지만 달면 먹을 만하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별안간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하나. 하지만 친구의 반짝거리는 눈과 한껏 올라간 입꼬리, 평소와 달리 당당하게 펴진 가슴과 당장 케이크를 먹고 싶어 들썩이는 어깨를 보고 있자니 그 순간 나는 응당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온 복숭아 케이크도 썩 싫지 않았다. 복숭아 케이크를 함께 해치우고 나면 말해줘야지. 나 사실 복숭아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아. 그래도 기억해서 사다 준 건 정말 고마워. 나는 아직 좋아하는 과일이 많지 않아서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아. 하지만 알게 되면 꼭 알려줄게. 그땐 그 과일들이랑 네가 좋아하는 과일들을 같이 잔뜩 먹자.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줘서 또 고마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무리 잘 지내기만 하는 사람 같아 보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