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난중일기 (이순신의 눈과 귀)
2022년 12월 13일, 음력 11월 20일 (5회차)
* 읽기 어려운 난중일기, 1회독을 목표로, 오늘자에 해당하는 일기만 발췌하여 소개하고, 짧은 생각을 덧붙여 연재 하고 있습니다. 매일 이순신과 하루를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은 팔로우 또는 구독 바랍니다.
1594년 11월 20일
맑음. 아침에 바람이 잤다. 대청으로 나가니 얼마 후 원수사가 와서 만나고 돌아갔다. 저녁에 일던 큰 바람이 밤새 불었다.
1595년 11월 20일
맑음. 거제현령과 영등포만호가 와서 만났다.
1597년 11월 20일
맑음. 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도 계속 불었다. 임준영이 와서 완도를 정탐해보니, 적의 배가 없다고 했다.
1. 임준영(또는 임준형)은 정탐꾼으로 자주 등장한다.
2. 완도를 정탐한 이유는 명량대첩(9월 16일) 이후 왜 수군이 어디까지 물러났는지 살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3. 이순신은 명량 싸움 이후 수군을 목포 인근 고금도까지 물렸다. 13척으로 한번 싸움에는 이겼으나,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기 때문에 수군 재건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산강을 따라 전라도 내륙의 물자와 인력을 끌어올수 있고, 적과도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고금도를 선택한 것이다.
4. 이순신은 명량을 비워둔 상태였기 때문에, 언제 왜군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준영과 같은 정탐꾼들을 풀어 왜군의 움직임을 파악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왜 수군은 해남보다 더 동쪽인 완도에서도 물러난 것이 확인됐다. 그런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임준영의 보고를 일기에 적었을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건일지
1593년 1월 8일 조명연합군 평양 수복
1593년 4월 18일 왜군 서울 철수
1594년 10월 10일 명, 일본과 강화재개 조선에 통보
1597년 1월 28일 이순신 파직, 원균 삼도수군통제사(2월)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 승리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전사
오늘의 인물 : 임준영(任俊英, ?~?)
탐방 군관으로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크게 패하고 조선 수군의 병력이 대부분 궤멸되자 이순신은 조정으로부터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복귀했는데, 앞 포구가 좁아서 이진 아래에 있는 창사로 진을 옮겼고 1597년 음력 8월 26일에 임준영은 말을 타고 와서 이순신에게 왜군이 이진까지 온 것을 알렸다.
명량 해전이 일어나기 2일 전인 음력 9월 14일에는 육로를 정탐하고 와서 왜군의 배 200여 척 중에서 55척이 먼저 어란 앞바다에게 온 것이라고 보고했으며, 동시에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김중걸이 왜군에 있던 김해 사람으로부터 들은 왜군의 계획에 대해 보고했다.
음력 10월 13일에는 정찰선을 통해 귀환하면서 왜군이 10일에 우리 수군이 내려오는 것을 알면서 11일에 모두 도망쳤다가 송언봉, 신용 등이 적진 속에 들어가 왜군을 꾀어내어 지방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 것을 알렸으며, 18일에는 임계형과 함께 진중에 왔고 음력 11월 20일에는 완도를 정탐해 적이 없다고 전했다.
자료: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