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난중일기 (고니시의 주둔지 이동)

2022년 12월 11일, 음력 11월 18일(4회차)

by 이순신서점

* 읽기 어려운 난중일기, 1회독을 목표로, 오늘자에 해당하는 일기만 발췌하여 소개하고, 짧은 생각을 덧붙여 연재 하고 있습니다. 매일 이순신과 하루를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은 팔로우 또는 구독 바랍니다.


1594년 11월 18일

맑음. 바람이 저녁 내내 세게 불더니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1595년 11월 18일

맑음. 어응린이 와서, "소서행장이 그 부하를 거느리고 바다로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다."고 전했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전령하여 이를 바다와 육지를 정탐하게 했다. 늦게 하응문이 와서 군량을 대는 일에 대하여 보고 했다. 조금 있으니 경상수사와 응천현감 등이 와서 의논하고 갔다.


1597년 11월 18일

맑음.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윤영현이 와서 만났다. 정한기도 왔다. 몸에서 땀이 났다.


1. 1595년은 명나라와 일본이 강화협상 중이었다.


2. 일측 대표는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였는데, 그는 1595년 4월에 일본에 가서 6월에 부산으로 돌아온다. 이때 히데요시는 강화조건을 제시했다. (아래 화평조목 참고)


3. 명과의 강화협상에 따라 왜 진영의 소각과 철수가 진행되었다. 웅천에 주둔한 유키나가 부대도 이동했다. (이때 조선 잔류 왜군은 2만명 정도로 줄어 있었다.)


4. 95년 11월 18일자 일기에서 소서행장 부대의 이동은 명과의 강화협상에 따른 철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의 원문: 대명•조선과 일본의 화평조목


1. 심 유격이 조선의 웅천에 도착하여 대명의 조목을 말했다. 운운. 대명의 명령에 의거하여 조선국을 용서하는데 있어서는 조선 왕자 한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와 태합의 막하에서 시중한다.


2. 그러면 조선 8도 가운데 4도는 일본에 속해야 한다고 비록 전년부터 의사를 밝히기는 했으나, 왕자가 본조에 와서 근시한다면 그것을 돌려준다. 조선 대신 두 사람이 번갈아 왕자를 보좌한다.

3. 심 유격과 조선 왕자가 함께 마차를 타고 웅천에 도착하면, 일본이 축조한 15개 군영의 성 가운데 10개 성을 즉시 파괴한다.


4. 대명황제가 조선과 화평을 간구함에 의거하여, 용서한다. 그러면 의례를 위해서 조서를 지참한 대명의 칙사가 일본으로 건너온다. 앞으로 대명과 일본 관선과 상선의 왕래는 서로 금인이 찍힌 감합을 증명서로 삼는다.


1595년 5월 22일

히데요시 도장


이해를 돕기 위한 사건일지

1593년 1월 8일 조명연합군 평양 수복

1593년 4월 18일 왜군 서울 철수

1594년 10월 10일 명, 일본과 강화재개 조선에 통보

1597년 1월 28일 이순신 파직, 원균 삼도수군통제사(2월)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 승리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전사


오늘의 인물 :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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