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난중일기 (이순신은 면사첩을 받았다?)
2022년 12월 10일, 음력 11월 17일(3회차)
* 읽기 어려운 난중일기, 1회독을 목표로, 오늘자에 해당하는 일기만 발췌하여 소개하고, 짧은 생각을 덧붙여 연재 하고 있습니다. 매일 이순신과 하루를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은 팔로우 또는 구독 바랍니다.
1594년 11월 17일
맑고 따뜻했다. 서리가 눈처럼 쌓였는데,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늦게 산들바람이 종일 불었다. 밤 10시경에 조카 뇌와 아들 울이 들어왔다. 자정쯤에 거센바람이 크게 불었다.
1595년 11월 17일
맑음.
1597년 11월 17일
비가 계속 내렸다. 양경리의 차관이 초유문과 면사첩을 가지고 왔다.
1598년 11월 17일
어제 복병장 발포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이 왜의 중간 배 1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하였다. 왜적은 한산도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고, 잡은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와서 보고했다.
1. 1598년 11월 17일자 일기가 난중일기 마지막 기록이다. 이틀 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전선에서 하룻밤을 보냈으니 사실상 죽기 직전까지 일기를 쓴 것이다.
2. 이순신은 명량대첩 이후 선조로부터 면사첩을 받았다?
제가 좋아하는 유튜버인 황현필 선생님도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습니다. 면사첩을 받은 이순신이 자살했을리 없다고. 그런데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3. 양경리의 차관이 초유문과 면사첩을 가지고 왔다는 11월 17일자 일기가 근거인 것 같은데요. 면사첩은 명나라 경리 양호가 준 것이고, 면사첩을 준 목적은 어쩔수없이 일본군을 도운 조선인들을 면사첩을 줘서 용서하고, 다시 조선을 도울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본군도 면사첩을 발행했는데, 조선 사람들의 목숨값을 받고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관련자료는 아래
1.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영웅적인 행보를 그려 큰 인기를 얻은 한 드라마에 장군이 선조로부터 면사첩(免死帖)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에게 품계를 올려주는 대신 줬다고 하는 이 면사첩은 사실 조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충무공연구부에 따르면 면사첩의 유래는 명나라 원군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명나라 군은 전쟁 당시 어쩔 수 없이 왜군에 부역한 민초들이 처벌을 피해 은둔하자 이들을 불러내기 위해 죄를 면해주겠다는 증서인 면사첩을 돌렸다. 면사첩은 일종의 삐라처럼 뿌려졌는데 이순신 장군에게 온 면사첩도 명나라 장수 양경리가 그에게 백성들을 다독이라는 의미로 다량을 건넨 것이라는 게 충무공연구부의 설명이다.
*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m/20160428/4/BBSMSTR_000000010024/view.do
2. 사형을 면하게 해주는 증명서. 선조실록 선조30년 1597년 10월 기록에 보면 면사첩은 왜인들이 만든 것으로 조선인을 붙잡아 남자는 쌀 5말, 여자는 쌀 3말을 받고 이 첩을 주었는데, 여기에 소서행장의 병영에서 부역하니 죽이지 말라고 쓰도 그들의 이름도 써넣었다고 한다.
* 이순신의 난중읽기 완역본, 노승석 옮김, 480p
이해를 돕기 위한 사건일지
158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 승리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전사
오늘의 인물 : 오늘은 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