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어려운 난중일기, 1회독을 목표로, 오늘자에 해당하는 일기만 발췌하여 소개하고, 짧은 생각을 덧붙여 연재 하고 있습니다. 매일 이순신과 하루를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은 팔로우 또는 구독 바랍니다.
1595년 11월 27일
맑음. 김응겸이 2년생 나무를 베어 올 일로 목수 5명을 데리고 갔다.
1597년 11월 27일
맑음. 이날 장흥의 승첩 장계를 수정했다.
1. 오늘자 일기는 두 편입니다.
2. 1595년 11월은 명나라의 책봉사절이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명왜간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던 시절이지요. 다음해 책봉이 파탄나면서 1597년 일본은 대규모 병력을 재차 보냅니다. (정유재란) 이순신 장군은 이를 예견하신 것인지 목재를 구하고, 전선을 재정비하고 계셨네요.
3. 1597년 9월 16일 명량대첩 이후 이순신은 군사를 목포까지 물렸습니다. 그리곤 임준형과 같은 정탐꾼들을 보내 적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왜군은 해남을 넘어 완도에서도 자취를 감췄고, 11월 20일에는 장흥에서 한판 싸워 적들을 장흥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전라 우수영 관할 해역을 장악했고, 수군 재건의 시간을 번 것입니다.
4. 장흥 싸움은 안타깝게도 전황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습니다. 20일에 싸움이 있었고, 22일에 이순신은 승전 기록을 보고 받았고, 23일에 승첩 보고서를 썻습니다. 오늘자 일기에서 보듯이 27일에는 이 보고서를 고쳐 썼습니다. 4일 정도 글을 묵혀뒀다가 퇴고를 하셨네요.
5. 저도 글을 쓰고 몇일 숙성을 시켰다가 다시 고쳐 씁니다. 그러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내 글을 마무리할수 있거든요. 이순신 장군은 공적을 일부러 부풀려 썼다는 모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날 장흥전투의 장계를 퇴고하신 것은 그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