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어려운 난중일기, 1회독을 목표로, 오늘자에 해당하는 일기만 발췌하여 소개하고, 짧은 생각을 덧붙여 연재 하고 있습니다. 매일 이순신과 하루를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은 팔로우 또는 구독 바랍니다.
1594년 11월 24일
맑음. 따뜻하기가 확실히 봄날 같다. 대청으로 나가서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1595년 11월 24일
맑음. 순라선이 나갔다가 밤 10시경에 진으로 돌아왔다. 변익성이 곡포권관이 되어 왔다.
1597년 11월 24일
비와 눈이 내렸다. 서북풍이 계속 불었다.
1. 오늘자 난중일기는 평온하네요. 그런 날도 있어야지요.
2. 1594년 11월 24일, 이순신이 따뜻한 봄날에 대청에 나간 날, 울산에서는 사명당과 기요마사가 3차 담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3. 조선이 사명당을 보낸 목적은 기요마사와 유키나가를 이간질하고, 기요마사가 히데요시에 반기를 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4. 유성룡은 기요마사와 유키나가간 이간질을 반대했는데, 이유는 히데요시가 이를 알게 되면 직접 군사를 끌고 나올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5. 기요마사에 대한 이간/반간계는 실패했습니다. 이간질을 시키기 위해 명과 조선이 기요마사에게 한 말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래 보시지요.
오늘의 지식 : 반간계를 꾸미는 명과 조선
(기요마사에게 보낸 서신 등)
사명당 -> 기요마사
그가 조선을 점령해도 히데요시의 소유가 될 것이고, 오히려 히데요시는 그가 조선에서 죽어서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기요마사를 지지하고 있다. 다른 장수들과 함께 유키나가를 제거한 다음 일본으로 돌아가 히데요시를 멸망시킬수 있다.
기요마사 -> 사명당
관백의 친병 및 훌륭한 장수들과 함께 살고 죽을 뿐이며, 어찌 그들을 의심하겠는가?
사명당 -> 기요마사
기요마사는 대대로 지방관의 후예이자, 호걸로서, 다른 나라 같으면 평범한 히데요시 아래 있지 않고, 최고의 위치에 올랐을 것이다.
기요마사 -> 사명당
나는 관백의 신하가 아니라 국왕의 신하다. 관백은 악인으로 지금 무력에 의지하여 서국에 살고 있다.
사명당 -> 기하치(기요마사의 부하)
무릇 관백은 촌사람의 종이었는데, 요행이 뜻을 얻어 그 임금을 찬탈했으니, 그 죄는 죽이는 것으로 충분치 않소. (중략) 기요마사는 대대로 작록을 받았고 인민을 사랑하여 왕자의 기상이 있소. 지금 기요마사가 관백을 도모한다면, 독부가 힘껏 책임질 것이니 손바닥 뒤집기와 같소
사명당 -> 기요마사
유정이 천문을 잘 보는데, 기요마사가 전에 함경도에 머물렀을 때 그곳에 정기가 모여있음을 보았다며, 일본 국왕이 되도록 돕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