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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신서점 Jan 23. 2023

난중일기 속 도요토미 히데요시(오늘자 난중일기 번외편)

1. 난중일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관한 기록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2.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에 진전이 없자 직접 바다를 건너올 것 같다는 1595년 일기와 그가 죽었다는 소문을 적은 1596년 일기 정도가 다 입니다. 히데요시의 용모, 성격 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3. 그가 죽었다는 소문은 거짓이었는데, 이순신 역시 그의 죽음 소식이 기쁘기는 하나, 믿을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 1595년에 히데요시가 양자인 히데츠구를 죽인 사건이 와전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4. 류성룡은 이순신과는 달리 히데요시에 대해 더 상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징비록에서는 통신사의 말을 빌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얼굴이 못생겼으며 얼굴빛 또한 거무스름하고,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으나 오직 눈썹 속에서 빛나는 눈빛만은 사람을 꿰뚫어보는 느낌을 주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5. 이순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몰랐을리 없습니다. 전쟁의 향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에 관한 일기를 지 않았을까요? 그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일부러 쓰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 부탁 합니다.


참고: 난중일기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련 기록


1595년 3월 11일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사도시 주부 조형도가 와서, 좌도에 있는 적의 형세와 항복한 왜적이 보고한 내용을 전하였다. 내용은 풍신수길이 침략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가 없으므로, 군사를 더 끌어 모아 부산포에 진영을 설치하려고 3월 11일에 바다를 건너오기로 이미 정했다고 한다.


1596년 4월 19일

맑다. 습열 때문에 침을 20여 군데나 맞았다. 속에서 마치 신열이 난 것처럼 가슴속이 답답하고 괴로워서 하루 내내 방에 들어앉아 나가지 않았다. 어둘 녘에 영등포 만호가 왔다가 돌아갔다. 종 목년과 금화, 풍진 등이 와서 인사를 하였다. 아침에 남여문을 통하여 풍신수길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기쁘기 그지없었으나 다만 믿기 어려웠다. 이 소문이 일찍부터 퍼졌는데 아직 정확한 기별은 오지 않았다.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 중에서


이해를 돕기 위한 사건일지


1593년 1월 8일 조명연합군 평양 수복

1593년 4월 18일 왜군 서울 철수

1594년 10월 10일 명, 일본과 강화재개 조선에 통보

1597년 1월 28일 이순신 파직, 원균 삼도수군통제사(2월)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 승리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전사


참고: 히데쓰구 축출사건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4년에는 요도기미로부터 또 한 명의 아들인 히데요리(秀賴)가 태어났다. 이를 계기로 새로 태어난 아들에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주고 싶었던 히데요시와 이미 간파쿠 직을 물려받았던 조카 히데쓰구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결국 히데요시는 이듬해 1595년 히데쓰구와 그 일족을 처형하였으며, 이후 휘하의 다이묘들로 하여금 어린 히데요리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였다. 이어서 히데요시는 자신이 사망한 뒤의 권력 체제를 정비하고자 행정을 전담하는 측근들을 고부교(五奉行)로, 그리고 유력 다이묘들을 고다이로(五大老)로 편성하였다. 그러나 1598년에 히데요시가 죽은 뒤 고다이로의 필두였던 이에야스의 대두, 그리고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던 유력 무장들과 고부교 사이에서 시작된 분쟁은 결국 도요토미 정권 의 붕괴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의 인물: 남여문

남여문(난에몬)은 항왜입니다. 난중일기에 4번 그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아래 참조


29일 맑다. 저녁에 목욕을 한 차례 하였다. 남여문으로 하여금 항복한 왜인 사고여음沙古汝音의 목을 베게 하였다.


18일 맑다. 여러 지역의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충청 우후와 홍주 판관이 와서 충청도 도적에 관한 일을 보고하였다. 항복한 왜적 연은기戀隱己, 사이여문沙耳汝文 등이 흉악한 음모를 꾸며서 남여문을 죽이고자 했다는 이야기를 저녁 무렵에 들었다.


19일 맑았으나 하루 내내 바람이 세게 불었다. 남여문이 연은기, 사이여문 등의 목을 잘랐다. 우수사가 보러 왔다가 돌아갔다. 경상 우후 이의득, 충청 우후, 다경포 만호 윤승남尹承男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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