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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May 11. 2020

차별의 언어

인간의 조건을 읽으며 알게 된, '차별의 언어'.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다.

https://brunch.co.kr/@azafa/118


주변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나 자신조차도 '차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 내용들을 적어본다.


[차별의 언어_장한업 교수_아날로그 출판사]


1) 틀린 그림 찾기

 '틀린 그림 찾기'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놀이입니다. 그런데 이 놀이에 대해 한 가지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바로 '틀린'이라는 단어입니다. 과연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까요? 다시 말해, 이 놀이에 '틀린' 그림이 존재할까요? 사전에서는 '틀리다'를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라고 정의합니다. 즉 '틀리다'라는 단어는 '1+2=3'과 같은 셈이나 '서울은 한국의 수도'와 같은 사실에 쓰는 말입니다. '틀린'과 '다른'은 영어로 번역하면 그 차이가 더 잘 드러납니다. 영어로 '틀린'은 wrong이고 '다른'은 different입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wrong이 가치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면, different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한 쌍을 이루는 그림이나 사진은 다를 수는 있어도 틀릴 수는 없기 때문에 '틀린 그림 찾기'가 아니라 '다른 그림 찾기'라고 해야 하고, 아주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부분 찾기'라고 해야 합니다.

 한국인은 왜 '틀리다'와 '다르다'를 혼용할까요? 이 두 단어를 동의어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사고하고 존재합니다. 언어를 잘못 쓰면 잘못된 사고를 할 수 있지요. 즉 '틀리다'와 '다르다'를 동의어로 사용하면 차이를 다양성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틀린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자신과 피부색이나 종교가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2) 우리 주의

 우리라는 단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싸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과하게 사용하면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배척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언어는 사고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사고의 울타리도 함께 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울타리는 울타리 안의 사람과 울타리 밖의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이때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호막이 되지만 그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차단막이 됩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학국학과 교수 박노자는 이미 이런 점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한국인은 '우리 것'은 본래 좋고 우월한 것이며 우리 속에 사는 '나'는 별로 잘난 게 없어도 우리에 속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당히 잘난 것처럼 여긴다고 지적했지요. 그는 또 한국인이 우리와 관련이 있는 것은 모두 도덕적이라 여기는 반면에 '그들'의 도덕성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 박노자 지음, '당신들의 대한민국' 한겨레신문사(2002), 204쪽.


3) 집단주의

 주소를 쓰는 방식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집단주의가 드러납니다.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주소를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00도 00시 00구 00동 604번지 홍길동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국인들이 주소를 '내림차순'으로 쓴다는 점입니다. 맨 먼저 도를 적고, 그다음에 시를 적고, 구와 동을 적은 다음, 번지를 적지요.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을 적은 다음, 이름을 적습니다. 성이 홍이고, 이름이 길동이면 홍길동이라고 적지요. 홍 씨 가문에서 태어난 '길동'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길동이라는 이름은 도, 시, 구, 동, 번지라는 다섯 개의 지역 집단과 홍이라는 한 개의 혈연 집단을 거쳐야만 비로소 나타납니다.

 서양의 경우는 어떨까요? 서양에서는 이름을 가장 먼저 적은 다음, 성을 적습니다. 주소는 가장 작은 지역에서부터 가장 큰 지역 순으로 적지요. 이는 개인을 집단보다 우선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이를 근거로 서양은 한국보다 개인주의가 우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처럼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는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매우 중시하고 이 충성심은 대부분 사회 규칙과 통제를 능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강한 연대감도 가지고 있어 모든 사람이 집단 내 다른 구성원에게 책임감을 느끼지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이런 충성심이나 연대감을 외면하는 것은 곧 체면의 상실, 더 나아가 수치로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비합리적인 일도 충성심 때문에 묵과되고는 합니다.


4) 국기에 대한 맹세

 1972년 8월 9일 자 <동아일보>는 국기에 대한 맹세의 제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9일 문교부는 국기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제정, 앞으로 각급 학교의 모든 행사에서 학생과 교직원들이 암송, 국기에 대한 존경심을 높이도록 했다. 문교부는 이 '맹세'의 보급을 계몽 및 암송 단계(72년 8월부터 73년 2월까지)와 묵송 단계(73년 3월 이후)로 나누어 실시, 초중고교는 대표 학생 선창에 따라 부르고 대학은 대표 학생 선창에 따라 마음속으로 암송하도록 했다. 맹세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기사에서는 '국기에 대한 존경심'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복종,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권에 대한 복종을 강요한 의례였습니다.

 다행히도 이 무시무시한 맹세는 2007년에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당시 행정자치부에는 문법에 맞지 않는 '자랑스런'을 '자랑스러운'으로, 세계화의 흐름에 맞게 '조국과 민족'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바꿨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쳐'라는 문구는 애국심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아예 삭제했지요. 그래서 지금의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만들어졌습니다.


5) 상주의 옷 색깔

 한국은 지역에 따라 상주의 옷 색깔도 다릅니다. 아직도 보수적인 시골에서는 소복, 즉 흰색 한복을 입지만 도시에서는 검은색 양복을 입지요. 조문객도 검은색 옷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검은색 옷을 입으면 상주와 조문객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상주는 왼팔에 완장을 차는데, 이것은 일본의 풍습입니다. 서양 사람들도 장례를 치를 때 검은색 양복을 입지만 완장을 차지는 않아요. 서양에서 완장을 차면 히틀러의 추종자라고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답니다.

 영정 사진을 국화꽃으로 장식하는 것도 일본의 풍습입니다. 서양에서도 장례를 치를 때 국화꽃을 쓰지만 대개 관 위나 제단 위에 국화꽃을 올려놓을 뿐, 영정 사진을 장식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이 서양의 풍습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들만의 색채를 덧입힌 것이지요. 그런데 국화꽃은 일본과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로 여겨집니다. 일본에 공식적인 국화는 없지만 일본인들은 본에 피는 벚꽃과 가을에 피는 국화를 나라의 꽃으로 여기지요. 그러니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영정 사진을 국화로 장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6) 다문화가정

 다문화는 영어 단어 'multicultural'을 번역한 말입니다. 이 단어는 1941년 캐나다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미국 교육자들에 의해 널리 확산되었지요. 이 단어는 '한 사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문화적 또는 민족적 집단과 관련된'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영어 사전에서는 다문화라는 단어를 정의할 때 외국인이나 동남아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지요. 한국인의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한국인의 이런 독특한 인식은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말하는 '다문화가정'은 부모 중 적어도 한 사람이 외국인인 가정을 의미합니다. 유럽에서는 국제결혼가정을 부를 때 '이민자 가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행정상의 필요에 의해 굳이 특정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다문화가정보다는 이민자 가정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결혼 이민자는 글자 그대로 '결혼 이민자'이고, 외국인 근로자는 '경제 이민자'이며 탈북민이나 난민은 '정치 이민자'이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이 용어 속에 한국인 특유의 단일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한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정을 '단문화 가정'이라고 전제해야 하는데 이 전제 자체가 단일 의식의 산물인 것입니다.

 '다문화교육'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말하는 다문화교육은 대개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학업을 보충해 주는 교육'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전체 학생의 1.9퍼센트에 불과한 데다 한국어 교육이나 학업 보충 교육은 한국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므로 결국 한국에서 실시되는 다문화교육은 극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동화주의적 적응 교육인 셈입니다. 미국의 다문화교육이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인데 반해 한국의 다문화교육은 '극소수 학생'을 위한 교육인 것이지요. 사회 계층, 인종, 민족, 성 등의 다양한 범주가 '이민자'라는 단 하나의 범주로 축소된 것입니다.


7) 고려의 쌍기와 조선의 하멜

 고려는 고구려의 전통 일부를 계승한 국가답게 중국, 일본, 거란, 여진, 위구르 출신의 수많은 귀화인을 환대했습니다. 이 중에는 후주에서 온 쌍기라는 사람도 있었지요. 쌍기는 후주의 관리로 고려에 왔다가 광종의 눈에 띄어 고려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956년에는 노비안검법을, 958년에는 과거 제도를 제안해 당시 고려가 선진적인 제도를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려의 광종은 외국인이라도 재능이 뛰어나면 자국의 관리로 삼을 정도로 매우 개방적인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는 달리 조선 사람들은 외국인을 많이 의심하고 경계했습니다. 1653년에 하멜이 제주도에 표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하멜은 본래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려고 했는데 도중에 태풍을 만나 일행 서른여섯 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했습니다. 그는 포를 다루는 기술 등의 선진 기술을 알고 있었지만 조선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그를 전라도 강진으로 보내 잡역에 종사하게 했습니다. 고된 노역과 생활고에 지쳐 가던 하멜은 결국 1666년에 일본으로 탈출해 1668년 네덜란드로 돌아갔지요. 이로써 조선은 당시 세계 최고의 선진국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기술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고, 그 결과 국가를 근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8) 마누라

 사전에서 '마누라'를 찾아보면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아무리 내외하던 부부라도 수십 년 같이 살다 보면 허물없는 사이가 되고 이에 따라 호칭도 허물없어집니다. 문제는 '허물없이'가 체면을 돌보거나 조심할 필요가 없이'를 넘어 '함부로'가 될 때입니다.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요.

 아내를 함부로 하는 사람들에게 마누라의 어원에 대해 설명해 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마누라는 몽골어 '마눌'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13세기 원 간섭기에는 고려 왕실에서 몽골어를 종종 사용했는데, 당시 마눌은 왕비를 가리키던 몽골어였답니다. 원 강점기의 고려 왕들은 원나라 마눌 앞에서 꼼짝 못 했다고 합니다. 당시 전 세계를 호령하던 칭기즈 칸 가문의 공주들이었기 때문이지요.


9) 상호 존중

 오늘날 한국에는 200개가 넘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가난한 나라에서 오다 보니 한국 사람들 중에는 이들을 그냥 무시하고 차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 사람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팔 사람들은 순수한 불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고, 필리핀 사람들은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몽골 사람들은 인간을 존중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지요. 중국과 러시아에서 살다 온 한인들 역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인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특성들은 단색적인 한국 사회를 좀 더 다채롭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서 배운다(learn from each other)는 자세입니다. 박노자 교수 역시 고구려와 신라, 고려와 조선을 대조한 후 "민족의 미래는 분명히 종족적,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과 여러 집단 간의 상호 존중에 있다."라고 강조했지요.* 우리 모두는 반드시 서로에게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을 오직 경제적 잣대로만 평가하고 차별한다면, 17세기 중엽에 하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선조들과 똑같은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폐쇄적인 조선이 아니라 개방적인 고려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고려라는 이름에서 나온 코리아(Korea)로 진정 거듭날 수 있습니다.

* 박노자 지금, '당신들의 대한민국'. 한겨레신문사(2001), 121~124쪽.


10) 조선족

 조선적이라는 말은 중국 정부가 소수 민족 중 하나의 이름으로 쓰는 것입니다.

 1990년 이후 한국으로 오는 조선족이 늘어나면서 중국 연변과 한국 간의 사회 경제적 교류는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국 정부가 쓰는 조선적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은 재미동포 또는 재미한인, 일본에 사는 한인은 재일동포 또는 재일한인이라고 부르면서 유독 중국에 사는 한민족만 조선족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그들을 만나면 이들이 왜 만주로 갔고,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지금은 왜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재중동포나 재중 한인 등으로 바꿔 불러 보는 건 어떨까요?


[책장을 덮으며]

 학교 폭력은 '왕따'에서 시작한다. 본인이 속한 무리에 함께하지 않는 이를 배척하고 괴롭히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본인이 그 괴롭힘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따돌림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행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조직 간 알력으로 나타난다. 함께 힘을 합쳐도 부족한 상황에, 우리는 편을 나누고 서로를 시기한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마음이 함께할 때,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차별의 언어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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