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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May 17. 2020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

글이 모여 책이 되고, 말이 된다.

브런치 인기 작가인 ‘정태일’님의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https://brunch.co.kr/@30story


제목이 재미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딴 짓을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공감하게 된,

직장인의 기본 중의 기본.

글쓰기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 표현들을 적어본다.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_정태일 지음_천그루 숲 출판사]


1) 진정성

직장인의 삶을 글로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authenticity)’입니다. 재능, 트렌드, 마케팅, 이런 것들은 다 그다음 문제입니다.

 ‘이런 내용을 글로 써도 될까?’라는 당신의 고민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지만 멋진 이야기나 자랑스러운 성과만 쓰려고 하면 첫발을 뗄 수 없습니다. 부끄러운 일, 실패, 좌절, 불쌍한 피투성이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써보세요. 그런 것들을 쓰다 보면 반짝이는 내 생각과 이야기가 어떻게든 만들어집니다. 이야깃거리가 부족하면 지난 경험을 그러모으고, 책을 읽거나 자료를 검색하고, 남들이 써놓은 글도 참고해서 빈칸을 마저 채우면 됩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평범한 진짜 이야기’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선택받은 그들만의 도도한 A급보다는, 어딘가 친근하고 익숙하면서도 책 구석구석 통찰이 담긴 B급을 찾습니다. ‘후지고 수준이 낮다’며 조롱을 섞어 아무렇게나 내뱉던 ‘B급(삐급)’이라는 단어가 지금은 ‘쉽고 재밌고 생생하며 남다른 감동을 주는 리얼 스토리’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고 있습니다.


2) 사운드 바이트(Sound Bite)

 연설문에도 ‘한 방’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박수가 나오면 좋겠다’ ‘여기 이 표현만 기억에 남아도 괜찮겠다’ 하는 것들입니다. 언론에서 많이 쓰는 말로는 ‘한입 bite’에 쏙 들어가는 ‘소리 sound’ 뭉치라는 뜻으로 ‘사운드 바이트 Sound Bite’라고 합니다. 짧게 따서 쓸 만한 중요한 부분을 말하죠.


3) 건배사

 술자리를 술 먹는 자리라고만 생각하면 초보입니다. 고수들은 술자리의 진짜 목적이 ‘건배사’라는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왜 모였는지(모임 성격) why, 우리는 누구인지(구성원) who, 지금이 언제인지(시기) when, 무슨 이야기(소재) what를 어떻게(구성 방식) how 꺼내는 게 좋을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앞으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희망) wish를 고려해야 합니다. 일명 건배사의 육하원칙 5W 1H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회사에서는 일이 아니라 건배사를 잘해서 승진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회사 비전 슬로건이 ‘새로운 성공 신화를 향하여’였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두자”는 뜻입니다. 이때 누군가 건배사를 ‘카스 CASS’라고 했는데 삽시간에 확 퍼졌습니다.

 카스는 그냥 맥주 이름인데, 너무 평범한 거 아니냐고요. 다시 보세요. 카스는 ‘Creating Another Sucess Story’의 첫 글자입니다. 이런 건배사를 처음 생각해 낸 직원을 회사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비전의 의미를 곱씹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장까지 빠르게 승진한 그의 별명은 ‘미스터 건배사’입니다.


 건배사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철 지난 말장난이라고 외면하기보다는, 업무의 2부 리그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발언 기회’라고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대통령이, 장관이, 사장과 부장이 건배사를 따로 챙기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4) 사과문

 전문가들이 제대로 쓴 사과문으로 꼽는 것은 ‘삼성병원 메르스 사태’입니다. 메르스 사태가 한차이던 2015년 6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초사옥에서 허리를 굽히며 사과문을 직접 발표했습니다.

 위기관리 측면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문은 ‘사과문 쓰기 절대원칙’인 ‘C.A.P법칙(C.A.P. Rule)’이 대체로 잘 지켜진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C.A.P. 법칙의 첫 번째인 C는 ‘관심과 걱정 care&concern’입니다. 피해자를 신경 쓰고 걱정하고 있다는 진심이 담겨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무엇을 누구에게 왜 사과하는지 정확하게 밝히고, 관심과 우려의 마음을 먼저 전하는 겁니다.

 A는 ‘행동 조치 action’입니다. 발생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성실한 노력을 보여주고, 지금까지 확인된 사고 발생의 인과 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겁니다. 이때 회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인 고객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리콜이라든지 보상과 배상 대책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마지막으로 P는 ‘예방 또는 방지 prevention’입니다. 비슷한 일이 또다시 생기지 않도록 문제의 원인이 된 시스템이나 설비, 제도, 문화를 바꾸겠다는 공개적인 약속을 뜻합니다. 피해 규모에 따라 가해 당사자 또는 최고책임자가 거듭 사과하며 진정성을 전해야 합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표현들도 있습니다. 편의상 짧게 바이오(B.I.O.)라고 이름을 붙여 봤습니다.

 B는 ‘그러나 but’입니다. ‘그럴 뜻이 아니었지만(회피)’ ‘그 당시 관례였지만(억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I는 ‘만약에 if’입니다. ‘뉴스를  보고 많이 놀라셨다면(언론 공격)’ ‘피해를 입으셨다면(조건부)’ ‘외부 업체를 제대로 관리했더라면(책임 전가)’이라는 말투는 더 큰 위기의 씨앗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O는 ‘과장된 반응 over-action’입니다. ‘죽을 만큼 끔찍한 죄를 저질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과장되게 말하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를 조롱하는 것입니다. ‘이후 발생할 모든 책임을 제가 다 지고’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사과문을 써야 하는 상황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시나리오를 완벽히 짜서 미리 준비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럴수록 감정과 여론에 휘말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때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C.A.P.’와 ‘B.I.O.’만 기억하면 평생을 따라다니는 최악의 사과문만은 피할 수 있습니다.


5) 빈말

 빈말을 매끄럽게 잘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를 관찰하고 그 입장을 깊이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뭘까?’ ‘어떤 말을 해주면 관계가 더 좋아질까?’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는 뭘까?’를 오랫동안 고민해야 합니다. 딱 맞는 빈말을 착 꺼내면 왠지 껄끄러운 이야기를 해도 말문이 열립니다. 입술에 매달린 두꺼운 얼음을 깨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속이 꽉 찬 빈말’은 더 이상 빈말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속이 꽉 찼으니 ‘든말’입니다. 배려와 감사가 깃든 말이고, 사과의 말이며 축하하는 말입니다. 이런 든말을 편안하게 잘해 주면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사이가 좀 더 부드럽게 바뀝니다. 자칫 틀어지고 꽉 막혀버릴지 모를 고약한 관계에도 이런 든말들이 달려가 작은 숨구멍을 내줍니다.

 빈말은 실속 없는 허언이나 현실성 없는 공언과는 많이 다릅니다. 악의에 찬 거짓말도 아닙니다. 마음에 깊이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상대를 생각해서 굳이 말로 표현해준 고마운 말입니다. 아이들은 하지 못하는, 성숙한 어른들의 말이죠.


6) 아부와 충성

 우리 주변에는 얼핏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지 않은 단어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고집과 소신, 휴식과 나태, 오해와 불신, 그리고 ‘아부와 충성’입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둘을 구분하는 것은 크기나 방향이 아니라 ‘지속성’입니다.


 ‘아부(Flattery)’는 누군가의 기분을 맞추려고 목적을 가지고 알랑거리는 행동입니다. 상대의 마음에 들려고 자신을 망가뜨리면서까지 무슨 짓이든 하다가도, 얻어낼 것이 없어지면 그 즉시 멈춥니다. 외모나 패션을 과하게 칭찬한다거나, 별 볼 일 없는 능력을 지나치게 치켜세워 준다거나, 철 지난 참새 시리즈에도 미친 척 크게 웃어주는 것은 아부의 일종입니다.


 ‘충성(Loyalty)’은 지극한 마음에서 우러난 말과 행동입니다. 상대를 사랑하거나 존경해야 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딱히 더 얻을 것이 없는데도 예의 바른 언행을 유지합니다. 인품이나 능력을 배우고 싶어 한다거나 다른 것보다 상대를 우선시하는 마음이 바로 충성입니다.


7) 샐러라이터

 ‘샐러라이터’라는 이상한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월급을 뜻하는 ‘샐러리 salary’와 작가를 뜻하는 ‘라이터 writer’의 합성어입니다. 우리말로 풀면 월급 받는 작가, 글 쓰는 직장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샐러라이터들은 배신자가 아닙니다. 직장인과 작가의 안전한 거리를 지키면서 글쓰기의 지속가능성을 높여가는 새로운 유형의 월급쟁이입니다.


8) 직장인들이 책을 써야 하는 이유

 우리 같은 직장인들에게는 책을 써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회사가 삶의 울타리가 되어주던 평생직장의 개념이 이젠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디지털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모든 정보가 빠른 속도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마다 자기가 전문가라고 떠들어 댑니다. 이럴 때 손에 잡히는 내 책이 하나 있으면 확실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책 쓰기를 하면 오래 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직장생활에는 정년이란 게 있지만, 책 쓰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만 써낸 문장은 연륜이 만들어 낸 경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직장인은 내 책을 꼭 써야 합니다. 인생 전부를 회사에 쏟아붓겠다는 산업화 시대의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물론 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월급쟁이가 평가, 연봉, 승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순 없을 겁니다. 다만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회사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수단이자 과정이지,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9) 자기소개

 가끔은 자기소개를 자기 자랑으로 착각하는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 대기업 어디를 퇴사했고, 상무 출신이었고, MBA 나왔고, 명문 대학을 나왔다는 번쩍거리는 간판들을 가득 채워 넣습니다. 그러고선 책과 나와의 연결고리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자랑이 하고 싶어도, 자기소개는 책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만 골라 담아야 합니다. 작가의 자기소개도 책의 일부입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의 프로필은 너무나도 간명하고 단단해서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1948년 서울 출생. 2000년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 소설 <칼의 노래>, 산문 <풍경과 상처> 외 여럿.’ 짧고, 쉽고, 정확합니다.


10)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이유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와 책 쓰기의 진짜 이유는 그것들 이상입니다. ‘어제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씁니다. ‘부끄러운 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씁니다. ‘나를 이 세상에 표현하기 위해서’ 씁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이유로 쓰고 싶으신 건지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글을 쓰면 흐릿했던 삶이 선명해지고 책을 쓰면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삶이 단단하게 뭉쳐진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그리고 직장인이 책을 쓸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책장을 덮으며>

 ‘책을 좋아하는 인사담당자’라는 의미를 담아 ‘책인사’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필명이라고 하기 부끄러운 점은, 아직 내  대부분의 글을 내가 읽은 책에서  다시 보고 싶은 문구들을 필사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다짐한다. 좋은 책들에서 영감을 얻어 나만의 진정성이 담긴 책을 만들어 보겠다고.


 ‘글은 말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책 속의 문장이 떠오른다.  내 글들이 하나씩  모여, 책이 되어, 나의 직장생활들을 많은 이들과 나누어 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많은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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